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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반성문
03/08/21  

가끔 남편이 아이들에게 눈을 부릅뜨고 "야! 너 그만 까불고 가만히 있어. 진짜 그러다 혼난다."는 식으로 화를 내면 흠칫 놀라곤 한다. 아이들은 딱히 큰 잘못을 한 것 같지 않은데 혹시 나 들으라고 한 말인가 싶어서. 보통 이런 경우 남편은 뭔가 일을 많이 하고 있고 나는 폰을 보고 있거나 누워서 탱자탱자 하고 있는데 우연의 일치라기에는 꽤 자주 있는 일이다. 

 

그러고 보면 나야말로 아이를 키우며 가끔씩 어른답지 못하게 아이들에게 화를 낼 때가 있다. 화를 내고 돌아서는 순간 '아! 이건 완전 오버였다. 내가 심했군.' 하면서 후회를 해보지만 그런 실수를 자주 하는 편이다. 아이들이 기분이 너무 좋으면 지나치게 흥분하고 주목을 끌어보려고 엉뚱한 행동을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내 기분이 따라주지 않으면 잘 받아주지 못한다. 아이들이 악의 없이 한 말에 삐져서 기분 상한 적도 많고 '나는 엄마니까, 나는 어른이니까'하는 진부한 이유를 대며 부모의 권위를 앞세워 무리한 요구나 부당한 약속 변경 등을 감행하기도 한다. 

 

‘아이를 양육하며 적당한 훈육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의지만 가끔은 이게 정말 순수한 훈육인지 확신이 없다. 어렵게 따져볼 것도 없이 판단 기준은 딱 하나, '정말 오직 아이를 위해서 그랬는가?'를 생각해보면 된다. 장난 그만 치고 밥 빨리 먹으라고 호통친 게 정말 아이가 잘 먹고 건강해지기만을 바래서였나? 아니면 시끄러운 소음이 짜증스럽고 빨리 가사에서 탈출하고 싶어서였나? 

 

몇 달 전 16개월 정인이가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소식에 많은 이들이 충격을 금치 못했고 분노와 울분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인이는 고작 16개월이었다. 16개월 무렵의 아이는 유난히 예쁘다. 말을 배워 따라 하기도 하고 곧잘 애교도 부린다. 아장아장 걷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음식을 오물오물 씹어 삼키는 것도 기특하고 윙크를 하고 이쁜 짓을 하면 마음이 살살 녹아내리는 그런 시기란 말이다. 그런데 정인이는 뱃속에 장기가 터져 피가 가득 찼고 쇄골, 뒷머리, 갈비뼈, 허벅지가 골절되어 세상을 떠났다. 성인도 참기 힘든 고통에도 아이가 사망 전날까지도 무덤덤했고 그 이유가 정서 박탈에 의한 무감정 상태였다는 사실은 더욱 가슴 아플 뿐이다. 

 

요즘 뉴스를 보면 자식을 학대하고 죽이는 부모는 또 왜 이리 많은 걸까? 사회적 충격이 큰 반인륜적 사건이 터지면 우리 사회는 마치 양은냄비처럼 팔팔 끓어올라 이를 정치에 이용하고 언론은 자극적인 유사 사건을 집중 전달하며 조회수 올리기에 열중한다. 사람들은 정인이 양모가 얼마나 소시오패스이고 괴물 같은 사람인지 신상을 탈탈 털며 혐오를 내뿜지만 사실 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 그 누구도 몰랐다. 정인이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본인의 친딸이 있음에도 입양을 실천한 멋진 모범 부모, 교회에서 아이들을 위한 봉사도 서슴지 않았던 선량한 기독교인으로만 기억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람들은 이런 끔찍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나와 다른 철저한 괴물, 전형적인 범죄자이길 바란다. 내가 너 그럴 줄 알았지. 원래부터 지독한 사람이었어. 어릴 때부터 이상했을 거야. 부모가 이상하다며? 불우한 가정이었겠지? 등등 어떻게든 나와 다른 범죄자의 범주를 만들어 버리고 나는 아니라고, 내 가족은 다르다고 선을 그어버린다. 하지만 자녀를 학대하는 부모의 경우 그들의 겉모습은 그저 조용히 세상을 살아가는 보통 시민이고 평범한 사회생활과 경제활동을 하는 평소 우리가 만나는 흔한 이웃과 다르지 않다.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가까운 이웃이나 지인들도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런데 왜 괴물이 되었을까? 도무지 애를 써도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들은 타고난 범죄자나 학대범이 아니라 매우 불안하고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부모의 불행이 자녀 학대나 살인에 있어서 면죄부가 될 수 없지만 부모의 불행이 얼마나 심각한 일을 초래할 수 있는지 모두가 진지하게 생각해볼 문제이다. 좋은 부모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쁜 부모가 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자신을 돌봐야 한다. 부모도 감정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면 무력해지고 한순간 무너질 수 있으며 이는 당연히 아이한테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그래서 운동이나 취미생활을 갖고 양육과 병행할 수 있는 현실적인 나의 꿈을 키우며 건강과 스트레스를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 나 자신뿐 아니라 내 가족의 안위를 위해서 꼭 나 자신을 돌보고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 

 

정인이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꺼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정인이의 이름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렸고 정인이를 소재로 정리되지 않은 내 생각을 써 내려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다르지 않지만 하늘로 간 정인이의 평안을 기원하며 조용히 부모로서의 나 자신을 돌아본다. TV에 나오는 자녀 학대범들만 나쁜 부모일까? 나는 결단코 아이들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학대한 적이 없다고 얼마나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아이들을 대리만족의 도구, 내 소유물,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보고 있지는 않은가? 작고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함부로 대한적은 없었던가?  

평생 좋은 부모라는 타이틀은 넘보기 힘들겠지만 행복한 부모라는 타이틀은 한 번쯤 노려볼만하지 않을까? 조금 더 웃고 조금 덜 화내는 걸로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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