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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몽(異床異夢)
03/15/21  

 

‘기(機)가 무르익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어떠한 일을 하는 데 적절한 시기나 경우 즉, 기회(機會)가 무르익었다는 뜻으로 달리 표현하면 ‘때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최근 한국에서는 임기 내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며 몸집을 키우고 지명도를 높여 온 한 사람이 ‘기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듯 사표를 던졌다. 이 사람의 재직 중 언행과 사퇴 과정, 사퇴 후의 언행에 대해 언론은 언론대로, 정당은 정당대로, 개인은 개인대로 저마다 다른 평가를 하고 있다. 한쪽은 올바른 행동이라며 칭찬하고 다른 편에서는 잘못된 행동이라고 맹비난 하고 있다. 똑같은 행위를 두고 어떻게 이렇게 다른 평가가 가능할까?

 

그 까닭은 그 사람의 행동을 보면서 각자 갖고 있는 지식과 상식, 감정과 경험 등에 의해 판단하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개인적으로 혹은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 등 자기가 속한 집단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이해타산도 한몫할 것이다. 또 행동의 당사자가 의도적으로 그 어느 쪽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도록 모호하게 행동을 했을 수도 있다. 즉 본래의 의도를 숨긴 채 겉으로는 다른 모습으로 포장할 수도 있기 때문에 진실을 찾기 어려울 때도 있다는 말이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그렇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황당무계한 일이다.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이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상식과 정의가 무너지는 것을 이대로 지켜 볼 수 없다’며,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과 집권 여당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사의를 표명했다. 아니 전격 사퇴했고 대통령은 곧 바로 사의를 수락했다.

 

이에 대한 언론보도는 사퇴한 검찰총장을 옹호하는 쪽과 비판하는 쪽으로 극명하게 나뉘었다. ‘검찰총장이 사퇴했다’라고만 보도하면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어려운 점도 없지 않아 있기는 하겠다. 그렇다보니 그의 행동을 지지하는 입장의 언론들은 아주 대놓고 잘했다 하고 앞으로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적절한 시기에 사퇴했다며 그의 인맥에 대해서까지 친절하게 소개했다. 그리고 대통령과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전 검찰총장은 퇴직한 이후 몇몇 언론들과 전화 인터뷰 형식을 통해 행정부와 여당을 향해 날카로운 비판의 화살을 날렸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검찰총장이 사퇴하면서 정계 진출을 시사했다고 비판했다. 그들은 현직 검찰총장이 정부와 극심하게 갈등하다가 임기를 채우지 못했고, 정치입문을 위한 사퇴라는 점에서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큰 상처를 남긴 나쁜 선례로 남게 됐다고 혹평했다.

또 검찰총장 재직 시 중대범죄수사청 신설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노골적으로 대국민 여론전을 펼쳤고 검사들에게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지 말라’고 했다며 이는 중립성과 독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검찰조직의 총수답지 않은 정치색 짙은 언동이었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검찰총장 사퇴를 두고 상반된 평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해 보이는 것은 그가 명분과 실리를 다 챙겼다는 사실이다. 검찰의 기능을 무력화 시키려는 여당의 움직임에 저항했다는 명분, 그러면서 정권과 여당을 자기 세력을 옹호하기 위해 검찰을 핍박하는 집단으로 규정함으로써 사퇴 후 자신이 설 자리까지 확실히 하는 실리까지 챙긴 것으로 보인다. 대선을 1년여 앞둔 시점에서 그가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가 사표를 던진 행위는 차기 대권 레이스를 염두에 두고 명분과 실리 즉, 정치적인 입지를 마련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기성 정치인들보다도 한 수 위의 정치적 행보로 해석되는 것이다.

 

그가 검찰총창 재직 시 틈만 나면 그의 사퇴를 요구했던 여당의 스타일은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현 정권에서 임명한 검찰총장이 정권에 등을 돌리고 사퇴했으니 어찌 안 그럴 수 있겠는가. 그래서 검찰총장 사퇴와 관련해 내놓은 ‘오만방자하고 기고만장하게’ 큰소리치며 나갔다는 논평은 검찰총장의 사퇴가 앞으로 그들에게 결코 정치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을 것임을 우려하고 있다는 목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다.

 

야당의 입장에서도 그의 사퇴가 마냥 박수칠 일만은 아니다. 검찰총장 재직 시절부터 줄곧 야당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던 그였기 때문이다. 아직은 제도권 야당 소속이 아닌 그가 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거론된다는 사실 자체가 야당의 입장에서는 마땅치 않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를 야권 대통령 후보로 인정하는 순간 그들이 안고 있는 인물난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니 문자 그대로 진퇴양난에 처한 셈이다. 또 반대하는 세력에 대항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아무런 검증 없이 같은 편이라고 인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이래저래 그의 사퇴가 진심으로 반가울 수만은 없는 것이다.

 

검찰총장의 사퇴가 향후 한국 정국을 요동칠 거대한 태풍으로 세력을 키울지, 아님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치고 말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리고 어떤 결과이든지 그것이 진정으로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좋은 기회가 되기를 기원한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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