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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추억
03/15/21  

새 학년 새 학기 우리 아이들 학교도 선거철이다. 선거 출마 선언과 함께 준비에 한창인 딸을 바라보며 잠시 어릴 적 추억에 잠겨본다. 나도 초등학교 시절 매년 반장 선거에 출마했었다. 그 시작은 2학년 때 뜻밖에 부반장으로 당선되면서부터였다. 1학년 2학기 때 전학 와서 아는 친구도 몇 명 없었던 터라 당연히 조금의 기대도 없었다. 그래서 나 자신조차도 소중한 한 표를 다른 친구에게 기꺼이 투표했는데 생각보다 내 이름이 많이 호명되었고 덜컥 부반장이 되었다. 그때 선생님은 반장과 남녀 부반장들에게 분필을 쥐어주며 떠들거나 말을 안 듣는 아이들의 이름을 적을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때부터 알게 되었나 보다. 감투에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애초에 반장은 꿈꾸지 않았다. 첫 시작이 부반장이기도 했지만 반장은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반장은 반에서 성적으로 1, 2등 하는 모범적이고 얌전한 친구가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나는 목소리가 컸고 나서기 좋아했고 말 하나는 제법 잘하는 편이라 부반장 노릇을 하기에 적격이었다. "반장 나와!" 수시로 선생님께 불려 다니고 시시때때로 아이들의 원망과 미움까지 받게 되는 반장의 자리보다 부반장이 마음에 쏙 들었다. 떠드는 아이들 이름을 적을 수 있을 정도의 권력. 그걸로 딱 좋았다.

 

3학년, 4학년 때도 무난히 부반장에 당선되었다. 그런데 5학년에 들어서 제동이 걸렸다. 그동안은 그리 어렵지 않게 당연히 되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만 떨어진 것이다. 아슬아슬한 결과도 아닌 형편없이 뒤진 표 차이였다. 며칠간 아니 꽤 오래 진지하게 고민에 빠져었다. 아…... 내가 이토록 민심을 잃었던가…...  그러고 보니 2, 3, 4학년 학급 임원으로 집권하며 가차없이 떠드는 친구들 이름을 적어대고 큰소리를 친 것이 마음에 걸렸다.

 

5학년 선거의 설욕을 갚기 위해 6학년 때는 새 학년이 되자마자 부반장으로 나설 준비를 했다. 무조건 1학기 때 승부를 봐야 한다고 생각하며 친구들에게도 늘 웃는 낯으로 대했다. 여자 부반장 후보로 나설 아이가 나 말고도 여럿 있었는데 그 중 A가 마음에 걸렸다. 나처럼 부반장 후보로 자주 입후보하는 아이였고 성격도 꽤 비슷해서 나와 죽이 잘 맞는 반면 잘 부딪히기도 하는 친구였다. 이 친구와 나란히 후보로 올라가면 표가 분산되어 엉뚱하게 제삼자가 당선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불안했다. 이제 마지막인데…... 5학년 때도 낙선의 고배를 마셨는데 또 그렇게 될 순 없었다. 그때 그 쓰라린 패배를 생각하니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를 것만 같았다.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집에서는 내가 출마하는지조차 몰랐지만 내 마음은 그랬다.

 

나는 또 떨어질 수 없었다. 뭔가를 해야만 했다. 그래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그 친구를 조용히 불러 화장실로 갔다. "A야, 우리 표를 모으자. 여자 모두 힘을 합쳐서 B를 반장으로 뽑고 1학기 부반장으로는 나를, 2학기 부반장으로는 너를 뽑도록 하자." 우리가 표를 모으지 않고 흩어지면 결국 반장을 남자한테 뺏기고 부반장도 우리 둘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요지였고 그 친구는 선뜻 동의했다. 그날 선거 결과는 나의 계획대로 여학생 전원이 B를 반장으로, 나를 부반장으로 뽑았다. 내가 A를 설득하고 우리 두 명이 여자 아이들을 선동해서 이룬 쾌거였다. 이제 나는 욕심나는 감투도 없고 오히려 타이틀이 거추장스럽고 귀찮은 중년 아줌마가 되었지만 그때는 그랬다. 60명의 아이들 중 세 명만 갖게 된다는 학급 임원의 감투가 세상의 전부이고 그랬다.

 

입후보 소견문 작성 중이던 딸에게 “친구들이 너를 뽑아야만 하는 너만의 장점이  뭐야?” 하고 물었다. 올해 5학년이 된 딸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난 착해.” 그러며 환하게 웃는다. 맞다. 우리 딸 착한 것은 엄마인 내가 보증하고말고. 딸의 눈부신 미소가 부럽다.

 

선거 중 제일 유쾌한 선거는 초등학교 선거이다. 이제 곧 2021년 재보궐선거인데 실제 선거판은 전혀 재미있지 않고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하니 이것 참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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