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었다 가자
04/23/18  
2007년, 성인 농구 클럽에 가입했다. 25달러를 내면 일 년 동안 일주일에 3일(화, 목, 토) 오전 6시부터 8시까지 농구를 할 수 있다. 코트가 2개 있는데 한 쪽에서는 풀코트 경기를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코트를 둘로 나누어 경기를 한다. 연령층은 50대부터 80대초까지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모르긴 몰라도 필자가 막내임에 틀림없었다. 풀코트에서 뛸 자신이 없어 하프코트에서 뛰었다. 한 게임을 뛰고 나니 너무 힘이 들었다. 제일 나이도 어린 것이 힘든 내색을 할 수 없었다. 이를 악물고 기회가 될 때마다 뛰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나갔다.
 
 
어느 날, 다섯 경기를 정신없이 치루고 신을 갈아 신는데 양말이 뻘겋게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양말을 벗고 보니 엄지발톱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거의 다 빠진 상태였다. 며칠 뒤에는 정말 발톱이 빠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발톱이 새로 돋아났지만 농구 코트로 돌아가지 않았다.
 
 
8년이 지난 올해 다시 농구팀에 가입했다. 가입비는 10달러가 인상되어 35달러가 되었다. 경기 룰도 약간 바뀌었다. 과거에는 두 팀 중에 한 팀이 먼저 15점을 얻으면 경기가 끝나는 식이었는데 바뀐 룰은 10분간 경기를 해서 득점이 높은 팀이 이기는 것으로 시간제한을 두고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것은 사람들이었다. 예전에 뛰던 사람들이 여전히 거기 있었다. 그들은 별로 힘들여 뛰지 않고 슛 찬스만 나면 볼을 던진다. 살살 한다고나 할까. 그러나 젊은 이 몸은 공 쫒아 사람 쫓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힘들게 뛰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늘 선글라스를 끼고 경기를 한다. 2007년에도 그랬다. 그는 학창시절 농구 선수였을 거다. 코트의 흐름을 빠르게 읽고 슛과 패스를 적절하게 한다. 몸도 살이 찌지 않았고 날렵하다. 그러나 빨리 뛰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사람을 마크하는 사람이나 이 사람이 마크하는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늘‘반칙이다 아니다’로 말다툼을 벌이기 때문이다. 한 손으로 다른 한 손을 잡고 시커먼 선그라스를 낀 눈으로 상대방을 똑바로 쳐다보며 큰 목소리로 말한다. 어찌나 말을 빨리 하는 지 잘 알아듣기 힘들다. 짐작컨대 상대방의 실수를 분명히 확인시켜주기 위한 노력이리라. 상대방도 처음에는 그 사람에게 자기주장을 늘어놓다가 나중에는 지쳐서 그의 소리를 듣고 있게 마련이다.‘잘못했다’하고 그냥 넘어가려는 사람에게도 끝까지 무엇이 잘못인가를 인지시키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은 매 번 같은 상황이 반복되니까 고개를 설래설래 흔든다.
 
 
2007년에는 벤이라는 한국인이 있었다. 처음에 우린 서로를 중국인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영어로 말했다. 두어 차례 경기를 하고 난 뒤에 서로가 한국인임을 알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궁금했지만 사람들에게 묻지는 않았다.
벤이 보이지 않는 대신에 다른 한국인이 있었다. 그 사람과 토요일 경기가 끝나고 아침식사를 함께 하면서 사는 얘기를 나누었다. 농구 클럽에서 활동한지 1년이 되었다면서 친절하게 여러 가지를 설명해주었다.
 
 
지난 주 토요일 드디어 일이 벌어졌다. 한 경기를 마치고 이어서 두 번째 경기 중이었다. 상대방이 놓친 공을 잡아 재빨리 턴하려는 순간 다리에 쥐가 났다. 예전에 마라톤 뛸 때, 몇 차례 쥐가 났지만 잠시 쉬었다가 뛰던 생각이 나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살살 뛰려고 했다. 그러나 통증이 심해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경기 중간에 코트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한의원을 찾았다.
졸지에 다리를 절름거리며 생활하고 있다. 다리를 절며 농구 코트에 설 수는 없는 노릇이고 빨리 낫기를 빌고 있다. 어쩌면 2007년처럼 흐지부지 될까 걱정된다.
 
 
주말에 꼼짝 못하고 누워 있었다. 비까지 쉬지 않고 내렸다. 하염없이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옛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날이 사진들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사진으로 남겨두지 않았더라면 잊혀졌을 옛일들이 바로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눈앞에 선하다. 사진 속에서 1970년대와 80년대를 넘나들었다. 1984년 스웨덴 코바르보 야영장, 1987년 여름 알라스카 고르서치 야영장, 1987년 겨울 오스트레일리아의 잼버리 장으로 부지런히 다니다보니 통증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옛 추억에 젖어 있는데 서울 사는 친구가 전화했다. 아파서 쉬고 있다고 하니 친구가 말했다.“쉬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다. 큰일할 사람은 쉬어갈 줄 알아야 한다.” 그동안 착각에 사로 잡혀 있었다. 나이를 잊고 살았다. 젊어서는 갑자기 몸을 뒤로 돌린다고 다리 근육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조금 다쳤다고 여러 날 다리 절며 다니지도 않을 것이다. 자신의 나이를 잊고 젊어서처럼 몸 부리기를 예사롭게 생각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친구에게 답했다.“그래, 쉬었다 가자.”
깨달음이 깊어지는 주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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