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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영사관 방문기
03/22/21  

 

지난해(2020년) 2월, 한국여행을 몇 개월 앞두고 여권을 챙겨 두려고 했다. 평소에 여권을 넣어두는 여행용 가방을 뒤졌으나 찾을 수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두었음직한 곳을 구석구석 살펴보았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LA총영사관 웹사이트에서 여권 재발급을 신청하려 하니 회원등록을 요구했다. 그런데 회원 등록을 위해서는 본인 인증이 필요하다며 한국 셀폰 번호를 입력하라고 했다. 한국 셀폰이 없으면 인터넷으로 신청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총영사관에 전화했다. 전화가 연결되면 기다리라고 해놓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끊긴다. 계속 전화를 걸어야 했다. 오후 3시부터 1시간여를 시도했지만 통화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오전 9시에 다시 전화를 걸기 시작해서 30여분이 지나서야 통화가 가능했다. 어렵사리 통화되었음을 알리자 그 직원은 하루에 1,000통 이상 걸려온다면서 용건을 재촉했다.

 

직원의 안내대로 여권 발급을 위한 구비서류와 증명서 등을 지참하고 LA 총영사관을 찾았다. 여권 재발급 신청서를 작성하고 준비해간 서류와 함께 접수하니 4주 후에 찾아가라고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해외여행이 어렵게 되었다.

부득이 항공권을 무기한 연기 했으며, 여권 신청 사실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해가 바뀌고 2021년 2월초에 갑자기 여권을 재발급 신청했던 일이 떠올랐다. 총영사관에 전화했다. 역시나 어렵게 연결된 전화에서 영사관 직원은 왜 이렇게 오랫동안 찾아가지 않았냐고 하면서 아무 때나 와서 찾아가라고 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2021년 3월 3일(수) 총영사관을 찾았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이다.

 

총영사관 문 앞에 서너 사람이 비를 맞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내 차례가 되었다. 경비원이 주머니에 있는 것을 모두 꺼내 넣으라며 플라스틱 통을 내밀었다. 911 이후에 관공서 들어 갈 때마다 겪는 일이기에 당연한 절차라고 생각하지만 경비원의 태도가 무언가 주눅이 들게 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총영사관 직원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서있었다. 민원인들이 출입할 수 없는 오른편 입구였다. 그때 옷을 잘 차려 입은 50대에서 60대로 추정되는 부부 한 쌍이 들어섰다. 총영사관 직원은 누구냐고 확인하더니 두 사람에게 90도 절하며 맞이했다. 그 부부는 줄도 안 서고 검사대도 거치지 않고 그대로 입구로 들어와 직원의 환대를 받으며 오른쪽 문을 통해 들어갔다. 누가 무슨 일로 총영사관을 방문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비 맞으며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온몸이 다 눅눅하게 젖은 상태로 검사대를 거쳐 들어선 사람입장에서는 별로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다.

 

안내창구 여직원이 내게 접수증을 달라고 했다. 지참하지 않았다고 하니 종이를 건네며 성명과 주민등록번호를 써달라고 했다. 요구사항을 기재해서 건네주자 직원은 재발급 후 6개월이 지나도 찾아가지 않으면 폐기처분한다고 했다. 내가 한 달 쯤 전에 전화로 문의하니까 빨리 와서 찾아가라고 했다고 하자 아무튼 지금은 폐기된 상태라고 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굳은 표정으로 응대하는 직원을 보고 더 이상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2021년 3월 8일(월) 오후 1시 30분에 여권 재발급 신청을 위해 다시 총영사관을 찾았다. 입구에서 그 경비원이 친절하게 맞아 주었다. 비오던 날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창구의 여직원도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지금 사진 찍는 기계가 고장이 나서 밖에서 찍어 와야 한다”면서 윌셔 길 건너편에 사진 찍는 곳이 있다고 알려줬다. 경비원에게 사진 찍는 곳이 어디인가 물으니 따라오라면서 밖으로 나와 사진관을 손가락으로 가리켜주었다.

 

사진을 찾아 다시 총영사관으로 돌아와 번호표를 뽑아 들었다. 잠시 기다리자 내 차례가 되었다. 해당 창구 앞에서 한 사람이 총영사를 불러 달라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었다. 직원은 총영사가 나올 때까지 저쪽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 나를 맞이했다. 직원과 얘기하고 있는데 아까 크게 소리쳤던 사람이 다시 와서 또 소리치며 총영사를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고 다시 연락을 하라고 했다. 직원은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그리고 다시 저쪽에서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리고 나와 대화를 이어가는데 이번에는 창구 안에서 나이든 직원이 나타나 나를 도와주고 있는 직원에게 무어라고 했다. 직원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이든 직원이 창구 밖으로 나와 그 사람을 데리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여권 재발급 신청서를 접수했다. 4주 후에 와서 찾아가라는 얘기를 듣고 나왔다.

 

오늘은 대체적으로 직원들이 친절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입은 옷 때문이 아닐까? 지난번에는 히말라야에 갈 때 입었던 점퍼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이번에는 양복을 입었고 구두를 신었다. 혹시 방문자가 어떤 옷을 입었는가에 따라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아는 사람이나 큰소리치는 사람, 힘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친절하게 대하고, 일반 서민들에게는 군림하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럴 리 없다. 대한민국 총영사관 직원들이 아는 사람이라고 봐주고, 큰소리친다고 고개 숙이고, 일반 소시민들에게는 마구 대할 리가 없다고 믿는다. 비 오는 날의 잿빛 하늘과 검은 구름이 내 마음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 마음이 문제다. 4월초 총영사관에 여권 찾으러 가는 날, 내 마음이 어떨까 기대된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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