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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싫어한다
03/22/21  

 

나는 곤충을 싫어한다.  머리, 가슴, 배 그리고 3쌍의 다리가 달린 모든 생물들이 애석하게도 내게는 너무나 징그럽다. 벌레는 싫어해도 메뚜기, 여치, 나비, 잠자리 같은 곤충은 그나마 괜찮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내게는 나방이나 나비나 "쌤쌤" 다 거기서 거기로 맨 손으로 만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고 근처로 다가오기만 해도 식은땀이 날 정도로 극도의 긴장감을 느낀다. 곤충의 아버지 파브르나 곤충 책을 인생의 바이블처럼 생각하는 곤충학도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건 내가 노력한다고 달라질 수 있는 일이 아닌 듯하다. 그 작고 가냘픈 존재가 뭐 그리 무섭냐며 한심한 눈길을 숱하게 받아봤지만 아닌 것은 아닌 것으로 이제는 체념한 체 살아가고 있다. 

 

내가 마흔이 넘은 이날 이때까지도 곤충이라면 벌벌 떨게 된 데는 나름의 사건이나 트라우마가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없었어도 있었던 걸로 해두자. 안 그러고는 설명이 안된다. 학교에 들어가기 훨씬 전에는 오빠를 따라 곤충 채집을 한다며 뒷산으로 잘도 뛰어다녔으니 아마도 후천적인 게 아닐까 싶다. 아무튼 벌레와 관련된 에피소드나 악몽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그 중 몇 가지만 이야기해볼까 한다.  

 

어릴 때 나는 버스로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성당을 걸어 다녔었는데 그 해 여름 6학년이었던 나는 첫 영성체반 수업을 듣고 있어 한 달간 매일같이 성당에 갔다. 보통은 친구들과 오가는 길이었는데 그날은 무슨 일인지 혼자 매우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었고 나무에서 뭔가가 툭 하고 내 치마폭에 떨어졌다. 나뭇잎이나 나뭇가지이길 빌고 또 빌었지만 내 두 눈에 들어온 것은 거무티티한 몸체에 소름 끼치는 하얀 털이 숭숭 난 송충이가 분명했다. 화들짝 놀라 치마를 마구 흔들며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송충이가 떨어졌는지 어쨌는지 확인할 정신도 없이 그냥 마구 내달렸다. 지금 그 가로수길은 벚꽃나무 길로 싹 바뀌어 동네 명소로 자리 잡았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10학년 생물학 시간에 채집한 곤충들을 표본 해서 가져가는 과제가 있었다. 워낙 곤충을 싫어하다 보니 난항이 예상되었지만 지인들의 도움으로 한 마리 두 마리 모아지고 있었다. 과제 제출 하루 전날 오빠가 중국인 친구네 개 밥그릇에서 매미만큼 큰 바퀴벌레 한 마리를 공수해왔고 나는 생물시간에 배운 대로 독약 성분이 든 유리병에 곤충들을 담아 더듬이 하나 망가지지 않게 몸을 표본 하는 섬세한 작업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귀뚜라미에 이어 마지막으로 바퀴벌레, 녀석의 명이 다하길 기다렸다. 그런데 이 녀석 당최 숨을 거두지 않고 조금만 있으면 다시 움직이고 또다시 움직이는 것이었다. 밤은 깊어가고 나는 무서웠다. 식구들은 모두 잠자리에 들고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녀석이 죽기만을 기다리는데 그 시간이 그렇게 길고 끔찍할 수 없었다. 숙제를 제출해야만 했고 어쩔 수 없이 나는 그 다음 날까지도 명이 다하지 않은 바퀴벌레를 핀에 꽂아 산 채로 제출했다. 핀에 꽂힌 채로 빙글빙글 도는 바퀴벌레를 보며 반 아이들도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학교 다니랴, 파트타임으로 일하랴, 틈틈이 술 마시며 놀기까지 하느라 바빴던 이십 대 초반 밤늦게 집에 돌아와 부엌 불을 켜는데 왠지 바닥에 뭔가가 있을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엄지발가락 크기의 검정 바퀴벌레가 고작 1미터 떨어진 바닥에 있었다. 어둠 속을 헤매다가 별안간 밝아지자 그대로 멈춰 선 모양이었다. '이놈!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네 놈을 우리 집 부엌 바닥에서 다시 만날 줄이야…...' 거하게 취해있던 나는 술이 확 깨버렸다. 그리고 닌자처럼 살금살금 날렵하고 조용히 움직여 근처에 있던 옐로 페이지 전화번호부 책을 손에 들고 그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놈의 몸뚱이 위에 두꺼운 옐로 페이지 책을 내려치듯 떨어트리고는 2층 내방으로 뛰어올라갔다. 하지만 아침에 용기 내어 책을 들춰봤을 때 녀석은 그곳에 없었다. 끈질기고 지독한 사람을 가리켜 바퀴벌레 같은 놈이라고 욕하는 이유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개미는 괜찮은가? 전혀! 개미도 한두 마리 있을 때나 괜찮지, 얘네들이 떼를 지어 다니는 모습을 보면 역시나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한다. 미국에 살 때는 1년에 한두 번씩 화장실이나 현관문 앞에 개미떼가 행렬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었는데 어쩔 수 없이 걸레질하듯 개미떼를 몰살시키다가 '어찌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하면서 눈물을 훔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무튼 곤충을 극도로 무서워하는 나 자신이 싫어서 우리 아이들에게 이를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다. 이게 뭐라고 이것만은 닮지 않았으면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 앞에서 벌레를 보며 호들갑 떠는 것만큼은 입을 틀어막아가며 나름 최대한 자제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집 사 남매는 모두 곤충을 싫어한다. 화장실 하수도 근처에 날파리가 날아다녀도 무섭다며 화장실에 못 들어가니 내 자식이 분명하다. "야! 네 몸집에 반의 반의 반의 반도 안 되는 저 날파리가 뭐가 무섭다고 야단이야?"라고 말하지만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고 허세이다.  암 무섭고말고…... 그 작은 게 있는 힘껏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게 그렇게 더 무서울 수 없다. 어쩌다가 내쪽으로 방향이라도 틀어 움직이면 온몸에 털이 곤두서고 비명이 절로 새어 나온다. 내 이성에서는 '곤충을 혐오 생물이 아닌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고 작은 생명에도 관심을 갖고 공존해야지'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나는 무서워서 파리 한 마리도 못 잡으니 이번 생에는 아무래도 그른 것 같다. 이제 슬슬 날이 따뜻해지니 벌써부터 걱정이다. 서울 하늘 밑 14층 아파트에 살지만 여름이 되면 이상한 벌레들이 잘도 들어온단 말이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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