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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이야기
04/23/18  
승무원이 라면을 쏟아 화상을 입었다고 주장하는 승객이 항공사와 승무원을 상대로 2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라면은 식사대용으로 즐기기에 좋은 음식이다. 무엇보다도 휴대와 보관이 편하고 물만 끓일 수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치가 있으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없어도 큰 지장은 없다. 뜨거운 물만 부우면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컵라면의 등장으로 한결 더 간편해졌다. 라면에 파나 달걀을 넣으면 그 맛이 더해진다. 달걀을 끓는 도중에 넣느냐 다 끓인 후에 넣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도 한다. 김치를 넣고 끓이면 김치라면이 되고 밥을 넣고 끓이면 라면죽이 된다.
 
 
라면은 일본에서 개발하여 1950년대 말부터 시판되었다. 한국에서는 1963년 삼양식품이 최초로 생산을 시작했다. 1960년대 한국 정부는 쌀이 부족해서 혼식이나 분식을 장려하였다. 덕분에 라면은 잘 팔릴 수밖에 없었다. 라면이 한국인의 식생활에 기여한 공로는 지대하다. 그 때는 각 가정에서 라면을 박스째로 사다 놓고 먹었다. 라면이 비싸 국수와 함께 끓여 먹기도 하고 이마저도 용의치 않은 가정에서는 많은 양의 물에 밥을 넣고 끓이다가 라면과 스프를 넣은 후 탱탱 불려 먹기도 했다. 우리 한국인들에게 라면은 잊지 못할 추억의 음식이다. 저마다 얽힌 이야기를 풀어 놓을라치면 밤을 새도 모자랄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독서실에서 라면을 많이 끓여 먹었다. 남녀 좌석이 별도의 공간에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학생들도 라면을 끓여 먹었는지 여부는 알 길이 없지만 뜨거운 국물에 밥까지 말아 먹으면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었다. 필자의 경우 중고등학교 시절 주 식사원이 라면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학교 3학년 고교 입시 준비를 하던 때, 별로 친하지 않은 녀석이 라면을 먹고 있는데 젓가락을 들고 덤볐다. 안된다고 했더니 라면에다 침을 탁 뱉는 것이었다. 냄비째 들어서 녀석의 얼굴에 부어 버렸다. 몇 젓가락 먹은 뒤였으니까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겁지는 않았을 거다. 이름도 성도 기억나지 않는데 라면이 덕지덕지 묻은 녀석의 붉게 달궈진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교사로 근무하던 1970년대 말 숙직할 때 이야기이다. 당시 필자가 근무하던 학교재단에는 고등학교와 중학교가 있었다. 각 학교에서 한 사람씩 두 사람이 함께 숙직을 했다. 중학교 음악 선생님과 숙직을 하게 되었다. 무지무지하게 체격이(배가) 큰 사람이었다.
 
 
음악선생님이 밤 10시쯤 라면을 끓이는데 커다란 주전자에 5개를 넣고 끓였다. 함께 먹으려고 다섯 개를 끓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먹어 보란 말도 하지 않고 혼자 다 먹었다. 땀까지 뻘뻘 흘려가면서 맛있게 먹었다.
 
 
1980년대 초 3학년 담임을 할 때의 일이다. 학급 반장을 사고뭉치로 뽑도록 유도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착실하게 3학년을 마치고 졸업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학년 초에 사건이 벌어졌다. 녀석이 친구와 구내식당에서 라면을 함께 먹다가 서로 많이 먹으려고 다툼을 벌이다가 라면을 엎지르게 되었다. 그러자 엎지른 학생이 도망가고 다른 학생이 잡으러 쫒아가다가 국어 선생님에게 적발되면서 일이 커지게 되었다. 선생님은 두 학생이 평소에 문제아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던 지라 또 사고를 쳤다면서 뺨을 때리고 심하게 야단을 쳤다. 그러자 녀석들은 모든 교실의 유리창을 깨버렸다. 다음날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교장, 교감도 난리를 치고 해당 교사는 더 펄쩍 뛰었다. 필자는 모두 용서해주고 싶었다. 사람을 다치게 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그 선생님은 막무가내였다.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두 학생은 퇴학을 당했다. 그리고 여러 해가 지난 뒤에 우연히 거리에서 만났다. 다방에서 차를 마시면서 지나온 얘기를 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잘 살고 있음을 알고 마음을 놓았다. 30년도 지난 얘기지만 라면 얘기를 하면 저절로 떠오른다.
 
 
필자는 겨울철에 산에서 라면을 자주 끓여 먹는다. 콩나물을 넣고 끓이면 그 맛이 정말 기가 막히다. 평소에 라면을 잘 먹지 않던 사람도 콩나물 라면을 먹고는 이렇게 맛있는 라면은 처음이라며 입이 마르고 닳도록 칭찬했다.
 
 
라면은 어디서 먹느냐가 맛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하얗게 눈 덮인 산에서 버너 위에 코펠을 얹어 놓고 끓여 먹는 라면 맛을 어디다 비교하겠는가? 반면에 비행기 안에서의 라면 먹기는 잘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가 주는, 라면 맛 이외의 또 다른 맛을 즐기는 것이다.
 
 
하반신의 중요한 부위까지 심한 화상을 입어 고생하고 있는 승객이 빨리 회복되어 건강한 생활을 하기 바라며 아울러 양측이 원만하게 타협하여 이번 송사가 해피앤딩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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