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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절 일기
04/05/21  

만우절 아침, 조심스럽게 하루를 시작했다. 혹시 있을 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조크 공격(?)에 대비하는 자세라고나 할까. 마침 친구와 공원에서 만나 산책하는 날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공원 게이트를 통과하기 위해 출입카드를 내밀면서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굿모닝하고 환하게 웃었다. 공원 관리인은 확인을 마친 후 카드를 건네주면서 한마디 했다. “네 웃음이 참 좋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고맙다.” 만우절 조크 아닌가 의심하면서도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가 건네준 한마디가 나를 하루 종일 웃음 짓게 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한 사람의 무심코 건넨 한마디가 이렇게 오래 갈 줄 몰랐다.

 

내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찾는 이 공원은 한국 사람들이 꽤 많이 이용하는 편이다. 한인들의 비중이 적어도 70%는 되리라 짐작한다. 공원 가장자리의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의 80%, 테니스 코트의 90% 이상이 한인이다.

 

친구와 나는 오고가는 사람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려고 애쓰는 편이다. 외국인들의 경우는 처음 보는 사람이든 몇 번 마주친 사람이든 관계없이 가볍게 “하이” 하거나 손을 흔들면서 지나간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인들은 서로 눈을 마주 치지 않고 지나치려고 의식적으로 피하는 경향이 있다.

 

4~5년 전에 레인저들의 모임에서 몇 사람들과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한 사람은 랜초쿠카몽가에 산다면서 그곳에 제법 많은 한인들이 사는데 자기가 만난 모든 한국 사람들은 가까이 다가가면 모두 영어를 할 줄 모른다면서 대화하기를 기피한다며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러자 곁에 있던 다른 한 사람이 트레일에서 무리를 지어 산행하는 한국인들을 만나서 말을 걸면 웃기만 하고 말을 하지 않는다고 정말 이상하다고 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라미라다시 최초의 아시안계 시장 Ed Ing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홍콩계인 에드는 2015년 시의원이 되었고, 부시장, 시장을 지낸 바 있으며 현재도 시의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시정 참여에 관해 얘기하면서 한국인들은 각종 시의 행사나 주민들의 모임 등에 전혀 참석하지 않는다고 했다. 라미라다시에는 월남, 중국, 필리핀, 에티오피아 모임까지 시정 참여를 위해 조직됐고 활성화 되어 있는데 한국인들의 모임만 없다고도 했다. 그는 한인들 가운데 시정에 관심 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으며 시의원에 입후보해서 가가호호 방문하며 선거 운동을 할 때도 한국 사람들은 모두 대화하기를 꺼려했다며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왜 그럴까? 한국인들의 교육 수준은 그 어떤 나라 출신들보다 높다. 그러나 대부분 영어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높은 학력에 비해 자기가 사용하는 영어는 초등학교 학생이나 유치원생 정도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말할 엄두를 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영어 울렁증은 더욱 심해지고, 그 결과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을 만나면 우선 피하려는 생각부터 한다. 게다가 한국마켓에서 장보고, 한국 텔레비전에서 한국 드라마, 한국 뉴스, 한국 쇼를 하루 종일 볼 수 있고, 한국 신문도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가 넘쳐난다. 아침에 일어나서 잘 때까지 영어를 한 마디도 하지 않고도 큰 불편 없이 살 수 있으니 구태여 힘들여 영어를 배우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오히려 한국에서 올 때 보다 더 영어 실력이 줄었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이웃, 지역사회, 시의 각종 행사 등에 참여하고 시나 커뮤니티에서 펼치는 행사나 봉사활동에 참여하며 다양한 인종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영어 구사력은 매우 중요한 요인임에 틀림없다. 영어에 자신이 없다고 고개를 돌리고 피하려고만 든다면 영원히 이 사회의 일원이 아닌 이방인, 주변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영어를 못 한다고 부끄러워하고만 있지 말고, 손짓 발짓을 해서라도 의사소통을 하려는 당당함이 필요하다. 부딪혀 찾으면 길이 보인다.

 

머리도 식힐 겸 회사 앞뜰에 심은 화초에 물을 주면서 매일 뽑아도 쉬지 않고 자라는 잡초를 뽑고 있었다. 그때 길 건너 차도에서 한 사람이 자동차를 밀고 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키가 큰 흑인이었다. 한 손으로 핸들을 조정하면서 다른 한 손과 어깨로 차를 밀어 주유소 쪽으로 올리려고 하는데 약간 경사가 져서 차가 자꾸 뒷걸음치고 있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에게 내가 간다고 소리쳐 알리고 손짓으로 기다리라고 말했다. 차도를 가로 질러 달려가려고 하다가 질주하는 차들을 보고 횡단보도로 건너기로 했다.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렸다가 달려가니 차에 브레이크를 걸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열심히 밀어 자동차의 가스 주입구를 주유 밸브에 닿도록 차를 정차시켜 놓았다. 운전자는 내게 고맙다며 손을 내밀었다. 아주 커다란 손이었다. 손을 잡고 열심히 흔들었다. 뭐 더 도와줄 것이 없는가 물으니 고맙다는 말만 계속 했다. ‘당신을 도와줄 수 있어서 기쁘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서는 내 뒤통수에 그 사람은 여전히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 하고 있었다. ‘고맙다 친구야!’ 앞으로는 만우절(萬愚節)이 아니라 만우절(萬友節)로 바꾸어야 할까 보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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