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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 이야기
04/19/21  

코로나 펜데믹으로 1년 이상 어렵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가운데 우리 한인사회에 널리 알리고 싶은 소식이 있어 전한다. 부인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병을 고쳐주기 위해 세 자녀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한 한인 이민자의 감동 스토리이기도 하다.

 

미주 은행권 최초로 한인 형제 은행장이 탄생했다. 지난 12일 조지아 주 애틀랜타 프로미스원뱅크는 신임 행장으로 김동준 전 뱅크오브호프 동부지역 본부장을 선임했다. 5월 중순부터 김 신임 행장은 업무를 시작한다.

2008년 설립된 프로미스원뱅크는 2020년 말 자산 5억2,000만 달러, 대출 3억6,000만 달러, 예금 4억6,000만 달러, 순이익 930만7,000달러(세전)를 기록하고 있으며, 현재 조지아와 텍사스 주에 6개의 지점을 두고 있다.

 

김 신임 행장은 고려대 재학 중 가족이민으로 LA로 이주했으며, UCLA 졸업 후 1994년 한국 제일은행 오렌지카운티지점 커머셜 렌더로 은행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99년에는 우리아메리카 은행에서 크레딧 관리자를 역임했으며, 2000년부터 뱅크오브호프의 전신인 나라은행과 BBCN에서 21년간 근무했다. 특히 김동준 행장은 대학 진학 시 UC버클리와 UCLA 모두 합격했고 본인은 버클리로 가고 싶었으나 당시 LA에서 햄버거 가게를 운영하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 UCLA로 진학했을 정도로 효심이 지극하다. 김 신임행장의 부친인 김진해 씨는 이 점을 평생 미안해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김 신임 행장의 형인 김동욱 씨도 조지아주애틀랜타에 본점이 있는 제일IC은행의 행장으로 재직 중에 있어 형제가 같은 지역에서 은행장으로 근무하게 됐다. 두 사람 모두 LA와 OC에서 은행원 생활을 시작한 남가주 출신이다. 특히 두 행장은 모두 한국 보이스카우트 대원 출신으로 초·중·고교 시절 활발히 활동하여 범스카우트(미국의 이글스카우트에 해당) 진급 직전에 무궁화 스카우트로 활동을 접었다. 부친 김진해 씨에 의하면 큰아들인 김 행장이 고교 재학 시절 ‘서울대 경제학과 진학을 목표로 공부에 집중하기위해서 스카우트 활동을 포기하려고 한다’면서 이에 대한 아버지의 생각을 물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뜻대로 하라며 허락했더니 자신의 목표대로 서울대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김진해 씨는 48년째 한국과 미국에서 보이스카우트 지도자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남가주 한인 보이스카우트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몇 년 전 한국보이스카우트 연맹으로부터 보이스카우트 최고 훈장인 무궁화 금장을 받았으며 80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한인 보이스카우트 111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진해 씨는 매주 월요일 마켓 앞에서 기다렸다가 신문을 픽업할 정도로 타운뉴스 애독자이며 한 달에 한 번은 박카스나 케잌 등을 준비해서 직접 타운뉴스를 방문해 좋은 신문을 만들도록 격려해주고 있다. 필자와는 1970년대 말부터 보이스카우트 서울연맹에서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사실 두 김 행장의 탄생은 김진해 씨의 지극한 가족사랑이 바탕이 됐다. 김진해 씨는 1986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가 미국 이주를 결심한 것은 부인 때문이었다. 그의 부인은 1978년 혈압으로 쓰러져 한국에서 두 차례나 뇌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차도가 없자 미국에서 다시 수술을 받아보고자 미국행을 선택했다. 김진해 씨의 부인은 미국 이주 후 23년 동안 무려 세 차례나 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병을 고치지 못한 채 2009년 세상을 떠났다.

 

김진해 씨는 집 근처 공원묘지에 부인을 안장하고 매일 그곳을 찾아 아침인사를 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한국 방문이나 애틀란타와 뉴욕에 사는 두 아들 방문 등 부득이 집을 비워야 하는 경우를 빼고는 지금껏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타운뉴스를 찾았던 4월 14일에도 부인 산소에 들렸다 오는 길이라고 했다.

 

김진해 씨는 부인 살아생전에는 부인 병수발은 물론이고 세 자녀 양육까지 도맡아하면서도 보이스카우트 지도자 활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특히 보이스카우트의 야외활동에도 거동이 불편한 부인을 동반하고 참여해 부인 간병을 하면서도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했던 일화는 당시 자리를 함께 했던 보이스카우트 지도자와 대원들 사이에서 아직도 회자될 정도로 유명하다. LA 한인가정상담소와 OC 한마음봉사회는 이런 김진해 씨의 타의 모범이 되는 삶을 높이 기려 장한 어버이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지금도 고난과 고통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가정이 하나 둘이 아닐 것이다. 김진해씨와 은행장이 된 두 아들의 이야기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온 가족이 똘똘 뭉쳐 한 마음 한 뜻으로 헤쳐 나간다면 그 어떤 고난이나 고통도 이겨낼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으면 한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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