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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나쯤이야
04/26/21  

 

아프리카의 한 족장이 생일 파티를 열기로 했다. 그는 파티에 초대한 손님들에게 자기 집에서 담근 포도주를 조금씩 가져와 파티 당일 문 앞에 놓아둔 작은 항아리에 부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파티에 초대 받은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잔꾀를 부렸다. ‘내가 포도주 대신 물을 담아가서 붓는다 해도 아무도 모르겠지’ 그는 포도주 대신 담아온 물을 항아리에 부었다. 잔치가 시작되었다. 족장이 항아리의 포도주를 손님들 잔에 일일이 따라 주었다. 손님들은 족장의 생일을 축하하며 포도주 잔을 들어 건배를 외쳤다. 그리고 포도주를 한 모금 마신 후 서로를 쳐다보고 실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마신 건 약간의 물이 섞인 포도주가 아니라 약간의 포도주가 섞인 물이었던 것이다.

 

자동차를 마켓 앞 차도에 세운 채 사람을 내려주거나 좀 더 심한 경우는 세워놓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목격할 때가 있다. 잠시 세워 둔다고 무슨 큰 일이 생기겠는가. 다른 차들이나 보행자들은 주차된 차를 피해 다니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하고 많은 사람들이 잠시나마 차를 지정된 장소가 아닌 곳에 세운다면 질서가 사라진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혼잡으로 인한 불편함과 위험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마켓이 어느 동네에 있는가에 따라 마켓을 찾는 사람들의 시민의식에 많은 차이가 난다고 한다. 어느 특정 동네에 사는가에 따라 시민의식이 달라진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가끔씩 특정 동네에서만 시민의식이나 문화의식이 실종된 무질서를 목격할 때면 사람들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공원이나 산책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공원이나 동네 근처 산책로를 걷다보면 사람들이 무심코 버린 휴지나 패트병 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길가에 버려두고 간 강아지 배설물이 담긴 비닐봉지가 눈에 띌 때도 있다. 자신의 애완견이 실례한 것을 비닐봉지에 옮기긴 했는데 냄새나고 불결한 배설물이 담긴 봉지를 들고 다니기 싫어서 길가에 던져두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런데 산책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버린 휴지나 컵, 물이나 음료수를 마시고 버린 페트병 등은 물론 개똥이 담긴 봉지까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쓰레기들까지 마다않고 주워다가 지정된 곳에 버리는 일을 계속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에게 왜 쓰레기 수거를 하면서 걷냐고 묻자 그는 '코로나 19로 활동에 여러 가지 제약이 주어져 매일 아침 혼자 걷기 시작했는데 그냥 걷는 것보다 무언가 보람 있는 일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쓰레기 줍기를 시작했으며 지난 일 년여 동안 계속해오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기 혼자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쓰레기 줍기 운동을 함께하자며 쓰레기 줍기 편하게 끝을 뾰족하게 만든 꼬챙이를 만들어서 전달하고 있다. 필자도 두 개를 받았으나 아직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다.

 

한 달여 전부터 그 사람과 매주 수요일 만나서 걷기 시작했는데 그는 시종일관 쓰레기 수거를 하면서 걸었다. 그는 쓰레기를 주우며 걷다 보면 걷는 게 힘이 하나도 들지 않는다고 했다.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이 고맙다고 인사할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도 했다. ‘나 하나쯤’이야 하고 버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부터 주워야지 하고 줍는 사람이 있어 세상이 둥글둥글 잘 돌아가는가 보다.

 

지금 고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일부 상류층 자녀들의 입시 관련 사건이나 LH 사건도 ‘나 하나쯤이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한 사람이 ‘나 하나쯤이야’ 하고 시작하다 보니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너도 나도 따라 하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 하나쯤이야’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것이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나 하나쯤이야’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었고, 오히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바보 취급당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사람들에게 법을 내세워서 잘못되었다고 하면 도덕과 법에는 어긋날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관행이었기에 용서가 되어야 한다는 식의 억지 논리를 편다.

 

모든 비행과 악행의 시작이 ‘나 하나쯤이야’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밝고 명랑한 사회, 도덕과 법이 존중되는 사회는 바로 이 ‘나 하나쯤이야’ 의식을 버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족장의 생일잔치에서 마신 포도주가 맹물이 아니고 약간의 포도주가 섞여 있는 물이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상징하는 이야기인 것 같아 가슴이 아프기는 하지만 그나마 포도주를 갖고 온 손님이 있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쓰레기를 주우며 산책로를 걷는 사람의 모습도 바로 우리가 희망하는 세상 풍경의 한 조각이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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