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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마주하는 자세
05/03/21  

 

나는 블로거다. 뭐 대단한 영향력은 없지만 맛집 리뷰며 상품 리뷰, 소소한 이야기들을 블로그에 남긴 지 꽤 오래되었다. 요즘엔 내가 올린 맛집 리뷰와 호텔 리뷰 게시글들이 꽤 조회수가 높은 편이라 소소하게 커피값 정도 수익이 생기기도 한다. 

 

작년 가을, 우연히 방문했던 강남의 어떤 식당이 있다. 일부러 찾아갔던 식당 문 앞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휴업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사인이 붙어있었고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배가 고팠던 나는 많이 고민하지 않고 바로 옆 식당으로 들어갔다. 메뉴는 편백찜 요리로 식당이 크지는 않지만 젊은 요리사와 젊은 직원들이 운영하는 조금 트렌디한 식당인 듯했다. 손님은 우리 빼고 한 테이블 더 있었는데 웬일인지 우리가 들어갔을 때 조금도 반가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는 생략되고 뭔가 쌀쌀맞게 예약했냐는 질문부터 했고 예약 없이 왔다고 하니 더 싸늘해지는 느낌이었다. 예약 필수 식당인 걸까? 단체 예약이라도 잡혀있나 싶었지만 꽤 이른 저녁 시간이었고 결국 우리가 나갈 때까지 총 세 테이블밖에 없었다.  

 

메뉴는 차돌박이와 야채 편백찜이었는데 맛은 양호했다. 개인적으로 샤부샤부 같은 류의 요리는 식재료만 괜찮으면 무조건 맛이 괜찮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리뷰 게시글에도 맛없을 수 없는 요리였고 무난했다고 적었다. 위치도 좋고 분위기와 가성비도 보통이나 서비스만은 별로라 재방문 의사는 없다고 남겼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참 묘하게 불친절하고 차갑게 느껴지는 식당이었다. 특히 서빙하는 여성 분이 틈날 때마다 휴대폰을 보고 계셨는데 아무리 휴대폰 보는 것도 업무의 연장일지 모르지만 좁은 공간에 이 모든 게 너무 잘 보이니 솔직히 좋아 보이진 않았다. 전반적으로 직원들이 다 손님에게는 무뚝뚝하고 자기들끼리는 뭔가 또 즐거워 보였다. 그래서 내가 느낀 그대로 솔직하게 리뷰를 작성해서 올렸다. 

 

그랬더니 3일 만에 "맛만 좋던데요? 미슐랭을 기대하고 가신 건가 의심되네요. 주관적인 포스팅은 좋으나 내용이 너무 편파성이 많이 띄네요."라는 덧글이 달렸다. 대가 없이 내 돈 내고 내 밥 먹으며 쓰는 리뷰에 편파성을 운운하는 게 황당했고 누가 이런 덧글을 남겼는지 너무 뻔했지만 뭐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같은 날 4분 후에 "저는 엄청 맛있게 먹어서 단골인데. 저는 담백하고 건강식이어서 자주 먹어요 ㅎㅎ"라는 덧글도 연이어 올라왔다. 그 후에도 한두 개 더 식당을 옹호하는 덧글들이 올라왔다. 누가 봐도 식당 관계자의 덧글이 분명했다.

 

​그러자 눈치 없이 티 나게 올린 식당 관계자들의 덧글에 꼬리를 물고 다른 덧글들도 올라오기 시작했다. 주로 "식당 관계자가 올린 덧글 너무 티 나네요. 이 식당은 주의해야겠다, 알아서 걸러야겠다"는 내용이었다. 식당 측에서 섣부르게 올린 덧글이 더 안 좋게 작용한 것이다. 당연했다. 나는 파워 블로거도 아니지만 갑질을 행사하려 한 것도 아니고 그저 그 식당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한 손님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게다가 가혹할 정도의 혹평을 남긴 것도 아니었다. 평소에도 블로그를 쓸 때 내가 무심코 쓴 글 때문에 해당 업소가 억울하게 불이익을 당하면 안 되기에 솔직에 앞서 늘 조심하는 편이다. 

 

그리고 또 다른 식당이 있는데 이 곳은 유명 맛집이라 찾아갔지만 명성만큼 맛있지는 않았고 내가 먹었던 시그니처 메뉴였던 아보카도 샌드위치는 빵은 축축했고 아보카도가 너무 조금 들어있어서 아쉬웠다고 리뷰했다. 그리고 몇 달 후 식당 관계자가 직접 덧글을 남겼다. 나의 의견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아보카도가 너무 비싸서 충분히 넣지 못했다며 솔직 리뷰에 대해 감사한다고 덧글을 남긴 것이다. 이 덧글로 나는 이 식당이 왜 유명한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고 앞으로도 이 식당의 미래 또한 매우 밝다고 느껴졌다. 위에 두 식당 모두 내가 그리 후하게 평가하지 않았는데 내 글은 본 후 두 식당의 반응은 판이하게 엇갈렸다. 

 

똑같은 음식이라 해도 먹는 사람에 따라서 그 평가는 다를 수 있다. 대박 난 베스트셀러 책이 내게는 따분할 수 있고, 흥행 1위라는 영화도 내 취향이 아닐 수 있다. 늘 평가받는 자리에 놓여있는 요식업자의 경우 긍정적인 리뷰만큼 부정적인 리뷰도 마주할 수 있는 담대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올린 리뷰에 지나가는 블로그 이웃인 척하며 자기 식당을 옹호하는 덧글을 남기는 대신 "그날 서비스가 불편하셨다니 대단히 죄송합니다. 다시 방문하실 때 개선된 서비스로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덧글을 남겼다면 얼마나 멋있었을까? 그렇다면 나는 식당에서 요청하지 않더라도 자발적으로 서비스가 별로였다는 후기 내용만큼은 정정했을 것이다. 손님들의 리뷰 하나하나 그냥 지나치지 않고 눈여겨보는 그 뜨거운 열정만큼은 응원하지만 리뷰를 더 크게 활용하지 못하고 옹졸하게 반응한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리고 나도 고객의 리뷰에 목을 매는 자영업자이기에 이런 일이 생기면 생각이 참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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