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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님의 변신
05/10/21  

 

가든그로브에 있는 어느 빵집 앞을 지나다가 C장로님 생각이 났다. 지난해 그 근처로 사무실을 이전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아직 찾아가 보지 못했다. 인사차 방문하기로 했다. 언제나 C장로님 사무실에 갈 때는 그 빵집에서 빵을 사 갖고 갔었다. 빵집 문이 닫혀 있었다. 월요일은 영업을 안 한다는 팻말이 보였다. 할 수 없이 빈손으로 가기로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멋쟁이 C장로님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단정히 매고 조끼까지 입고 있었다. 손을 대면 베일 것 같이 주름을 세운 바지를 입고 악어가죽 무늬 구두를 신고 있었다. 숱 많은 머리카락은 반백이기는 하지만 올백으로 반듯하게 빗겨져 있었다. 반갑게 맞이 해주었다. 약간 기운이 없어 보였으나 70대 중반의 연세를 생각하면 크게 이상할 것도 없었다.

 

사무실을 둘러보니 무언가 달라진 느낌이 들었다. 그의 테이블에 곱게 차려 입은 여인의 사진이 담긴 액자가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물었다가 예상하지 못한 답이 나올 수도 있어 조심하기로 했다.

 

만날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그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당신의 생각을 펼치기 시작했다. 한국 정치, 미국 정치에 이어 경제로 화제가 이어지면서 가속도가 붙은 기관차처럼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그의 모든 이야기는 종교로 귀결된다. 신의 뜻과 그분의 의지가 세상을 지배하는 힘이라는 논리다. 얘기하는 동안 달라진 것들이 또 눈에 띄었다. 손짓을 할 때마다 그의 팔목에서 금장 시계가 번쩍이고 있었다. 꽤 비싸 보이는 시계인데 그가 예전에 찼던 심플하면서 고급스러워 보이던 시계와는 전혀 다른 유형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의 손가락에는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가 번쩍이고 있었다. 반지가 헐거운지 반지 둘레에 흰 테이프를 붙인 것이 어울려 보이지 않았지만 값나가는 보석 반지임에는 틀림없었다.

 

왜?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사람들은 가끔 달라지고 싶을 때가 있다. 살다보면 생활에 변화를 주고 싶을 때도 있지 않은가. 종횡무진 이야기 열차는 달린다. 갑자기 속력을 줄이면서 방향을 틀려는 듯 그가 내게 물었다. 우리 집사람 본 적이 있어요? 예, 몇 해 전에 사무실에 들렀을 때 사모님이 맞아 주셨지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아내가 지난해 12월에 세상을 떠났어요. 뭐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 주춤하는데 장로님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우리는 교회에서 만났어요. 내가 아내와 만났을 때 아내는 학생이었고, 나는 교리교사였지요. 두 분의 연애사가 시작되었다. 아름다운 그들의 봄, 연애의 끝은 결혼 아닌가. 얘기 듣다가 잠시 자동차로 갔다. 봉투를 찾아 근조라 쓰고 조의금 봉투로 만들었다. 그리고 봉투를 건넸다.

 

다시 이야기는 이어졌다. 아내가 떠나고 나서 그녀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에 보석함을 열어보니 아끼느라고 차지 않고 장롱 깊숙이 보관해 왔던 각종 보석들이 반짝이는 거예요. 다이아몬드 반지, 결혼반지 등, 여러 개의 반지들, 그밖에 목걸이, 팔찌, 귀걸이 등등. 이 모든 게 무슨 소용인가요. 죽으면 그만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그날부터 저는 소중히 모셔 두었던 시계를 차기로 했지요. 반지도 그렇고요. 살이 빠져서 반지는 헐겁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테이프를 안쪽에 두르고 끼고 다니는 겁니다. 다 소용없어요. 소중한 물건이라고 절대로 아낄 필요 없어요.

 

이제 상황 파악이 끝났다. 그의 변화는 아내와의 이별을 통한 깨달음에서 연유한 것이었다.

 

 

부인과 사별하며 일어난 변화이지만, 나이든 분이 사별 후 움츠리거나 외모가 추레하게 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단장함으로써 도리어 나이든 남자의 기품이 돋보여서 좋았다.

 

나흘 뒤 가든그로브 갈 일이 있어 그 빵집에 가서 빵을 샀다. 팥빵 4개와 곰보빵 4개, 장로님이 좋아하는 빵이다. 예전에는 같은 돈에 10개였는데 이제는 두 개가 줄었다.

 

장로님은 그날 입었던 옷과 전혀 다른 컬러의 와이셔츠, 넥타이, 양복, 그리고 구두까지 갖춰 입고 맞아 주었다. 빵을 무엇하러 사왔냐면서도 고마워했다. 그의 이야기 열차가 또 출발을 위해 워밍업을 하는데 전화가 왔다. 급히 가야할 곳이 생겼다. 좀 더 그와 시간을 함께하면서 이야기를 듣고 싶었으나 서둘러 나와야 했다. 작별인사를 하고 나와 자동차를 타려는 데 장로님이 따라 나왔다. 빵 8개가 든 봉지를 흔들며 큰 소리로 말했다. 빵 잘 먹을게요. 고마워요.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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