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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떡
05/10/21  

 

나는 남매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이다. 남매는 이제 8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수컷 고양이 에이가 얼마 전 심장 기형 판정을 받고 약을 먹기 시작했다. 사람에게는 고혈압, 협심증, 공황장애와 같은 질병에 처방되는 약이라고 하는데 에이의 심장이 안정적으로 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모양이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가루약을 습식 사료에 섞어 주는데 이 녀석이 처음 일주일은 평소처럼 잘 먹었는데 열흘쯤 지나면서 뭔가 눈치를 챘는지 약 탄 사료를 주면 냄새만 몇 번 맡다가 가버리곤 한다.



그런데 신기한 건 암컷 고양이인 엘이 에이의 밥을 탐낸다는 것이다. 엘은 습식 사료를 먹으면 자주 구토를 해서 요즘에는 건식 사료만 배식하고 있는데 참 희한하게 얘네들이 자기 밥보다 남의 밥에 관심이 더 있는 것이다. 따로따로 각자의 식기에 사료를 담아 주면 엘은 아예 자기 밥은 본척만척 눈길도 안 주고 에이 밥그릇 앞에 와서 에이가 먹다가 사라져 주기만을 기다린다. 그래도 고양이는 제법 교양 있는 동물이라 없어 보이게 남의 밥그릇에 고개부터 들이밀고 그러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쨌든 배가 고플 텐데 꼭 그러고 있다. 에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자기 밥그릇은 먹는 시늉 몇 번 하다가 어느새 엘 밥그릇 앞으로 자리를 옮긴다. 아예 분리되게 각방에 넣고 먹여도 봤지만 문 앞을 지키고 문이 열리기만 기다릴 뿐 본인 밥그릇에는 관심이 없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것은 고양이나 사람이나 참 비슷하구나 싶다. 원래 사람 심리 또한 상향식이라 가지지 못한 것이나 가질 수 없는 것을 더 원하지 않던가? 예를 들어 매일 일 안 하고 백수처럼 살 때는 온몸이 부서져라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고 느끼지만 막상 일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는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노래를 부르게 된다. 



특히 경제적으로 궁핍할 때는 내 떡에 대한 불만이 하늘을 찌른다. 남들은 다 뭐해서 돈을 벌길래 저렇게들 잘 살까? 저 높은 빌딩 주인들, 저 돈 많은 재벌들도 과연 더 갖고 싶은 게 있긴 한 걸까 하면서...... 재벌은 애초에 범접 불가한 영역이라 치지만 내 주변을 둘러봐도 다 나보다 잘 사는 사람들뿐인 것 같다. 나보다 젊은 나이에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사람들과 내 자신을 비교하며 쓸데없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씁쓸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것뿐이랴? 왜 남의 집 애들은 다 그리 잘나고 똑똑한 걸까? 공부 못 하고 말 안 듣는 애들이 있긴 한 걸까? 택시 기다릴 때마다 왜 빈 택시는 반대 방향에서 먼저 나타나는가? 이상하다 싶어서 차길 건너면 이젠 또 반대쪽에 빈 택시가...... 뷔페에서는 남편 접시에 담겨 있는 음식이 늘 더 맛있어 보이고 운전할 때면 항상 내가 가는 차선보다 옆 차선이 빠른 것 같고.... 하아…... 지긋지긋한 남의 떡......



그럼 내 떡은?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여수에 와있다. 이십대 초반에 친구와 둘이 와보고 꼬박 20년 만이다. 그때 나는 세상에 무서울 게 없는 아가씨였는데 지금은 토끼 같은 막내가 내 옆에서 쌕쌕 잘 자고 그 옆에는 하루 종일 대여섯 시간 동안 운전대를 잡느라 힘들었을 남편이 쿨쿨 잘 자고 있다. 여기서 끝나면 재미없지. 거실에는 왜 자기는 침대가 없냐고 툴툴거리던 셋째가 소파에 누워 자고 있고 건넌방에는 오늘 코로나 백신 사전 예약을 마친 친정엄마와 할머니와 같이 자는 게 신난 딸내미가 누워 있다. 그리고 오늘 하루는 완벽하진 않았지만 꽤 괜찮은 하루였다. 그래, 그러고 보면 늘 남의 떡보다 작은 것 같지만 내 떡도 썩 나쁘진 않다. 맛도 이만하면 먹을 만하다. 그러니 너무 애끓지 말자. 남의 것이 부러울 땐 내 것이 안 보이는 법이니 이제 그만 내 떡이나 잘 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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