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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18  
사방을 둘러봐도 구름뿐이다.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구름바다 위를 몇 시간째 날고 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구름 위를 나는 비행기 안에 있다. 막내아들이 학교로 떠났다. 학교에 데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어제 공항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숲과 호수, 강과 바다가 함께 어우러져 아름답게 펼쳐지는 길을 1시간 쯤 달렸다. 기숙사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거실이 오른쪽에 있고 왼쪽으로 방 두 개가 있었다. 방 하나에 두 명씩 잔다. 거실에는 책상 네 개가 사방으로 나뉘어 배치되어 있다. 룸메이트가 될 친구들과 그 가족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도착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짐을 풀기 시작했다. 아들은 제일 먼저 신주단지 모시듯이 여자 친구와 찍은 사진이 담긴 액자를 책상 위에 놓았다. 지난 18세 생일에 여자 친구가 줬다고 자랑하던 거다.
 
 
스피커에서 일정을 말해 주었다. 점심식사 후 2시 30분에 총장의 환영사가 있다. 내일 부터 시작되는 3박 4일 야영에 대한 사전 오리엔테이션이 있으니 야영장비들을 지참하고 4시에 어떤 장소로 모이라고도 했다. 학부모들은 4시 30분까지 학교에서 나가야 한다. 그때 아들이 말했다. 침낭을 준비해오지 않았다며 밖에 나가 사와야 한다고. 선배들에게 물어 보니 야외활동 클럽에 가면 빌릴 수 있다고 했다. 침낭과 매트리스를 빌렸다. 입학과 동시에 하이킹을 하고 야영을 하다니 좋은 생각이다. 야영생활을 하면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협동심이 생기고 우정이 싹틀 것이다.
 
 
점심시간이다. 학생들은 무료, 학부모들은 1인당 $7.50이다. 음식이 웬만한 식당보다 훨씬 맛있고 무엇보다도 건강식이었다. 아들이 말했다. 이 학교를 선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작년에 이어 올해도 기숙사 밥이 제일 맛있는 학교 1위에 뽑혔다고 한다.
 
 
총장이 신입생 환영사를 하는 곳으로 갔다. 아들은 농구 연습을 하겠다며 사양했다. 나중에 보니 많은 학생들이 참석하지 않고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 40여 년 전 아이들하고는 다른 모습이다.
 
 
식이 끝나고 교정을 순회하고 있는 총장을 만났다. 아들이 필자를 소개했다. 총장도 캘리포니아에서 왔다고 했다. 북가주라고 했다. 작은 딸이 그곳에서 대학에 다닌다고 하자 자기 동생도 거기 나왔다며 반가워한다.
 
 
아들이 램프가 필요하다고 해서 월마트에서 사 갖고 왔다.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4시, 아들은 야영에 필요한 짐을 챙겨 사전 모임에 참여하러 떠나고 우린 학교 밖으로 나가야 한다. 밖으로 나가던 아들이 말했다. 선풍기가 필요하다고. 선풍기가 왜 필요할까? 룸메이트가 작은 선풍기를 갖고 있는 것을 본 모양이다. 다시 월마트에 다녀왔다. 끝까지 부려 먹는다. 선풍기를 사면서 병물 한 박스를 샀다. 아들이 떠난 방문 앞에 놓았다. 메모와 함께.‘Have a good time!’
 
 
이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으로 향하는 아침이다. 계속 비가 내린다. 도착해서 떠날 때까지 비가 내린다. 낮밤 구별 없이.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가장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세네카의 말이다. 정말 우리는 많은 짐을 짊어지고 힘들게 살아간다. 경중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저마다 땀 흘리며 걸어간다. 오늘 그 짐 가운데 하나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멀리서도 계속 힘들게 어깨를 누를 것임에 틀림없다.
 
 
세네카의 말처럼 자신이 가장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그 삶은 힘들고 괴로울 것이다. 비행기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괴로워하며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그러나 어차피 내가 거기 있어야 한다면 즐겁게 가야 하지 않을까. 잠이 온다면 다행이지만 안 오는 잠을 억지로 청하기 위해 몸부림치기보다 책을 읽는다든지 아니면 게임을 한다든지 이도저도 아니면 공상이라도 즐긴다면 나름 그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창가에 앉아 어쩔 줄 모르고 힘들어 하는 한 청년을 보면서 생각했다. 누군가가 계속 가스를 살포하고 있다. 아주 독하다. 이것도 즐겨야 할까?
 
 
활주로에 착륙한 비행기가 브레이크를 심하게 밟는다. 거대한 비행기는 굉음을 내며 속력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긴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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