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04/23/18  
우리 집 문 앞에 낯선 차가 있었다. 늘 필자가 차를 세워두는 곳이다. 좀 떨어진 곳에 주차하고 걸어 올 수밖에 없었다. 차 안을 들여다보니 파킹 퍼밋은 걸려 있다.
 
 
누구 차일까? 잠시 골목의 어느 집을 방문한 차라면 파킹 퍼밋이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최근에 이사 온 앞집 차다. 그 집은 차가 네 대나 된다. 차고는 물건들로 가득 채워져 있고 차 네 대를 모두 밖에 세워 두는데 자기 차고 앞에 두 대를 세우고 두 대는 길가에 세워야 한다. 그 중 한 대를 우리 집 문 앞에 세워둔 것이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두고 걷기 싫어 남의 집 문 앞에 주차한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화가 났다. 내 집 앞을 남에게 내어주고 걸어야 한다니.
 
 
바로 앞집으로 뛰어 가려다가 멈췄다. 가뜩이나 목소리가 커서 가만히 얘기해도 싸우는 것처럼 보이는데 동네 시끄러워질까 염려되어서다. 일단 그 차 앞창에 내 집 앞이니 주차하지 말라고 종이에 써서 붙여 놓았다. 운전석과 조수석 앞 창 유리에 각각 한 장씩. 커다란 글씨로.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도 차는 그대로 있었다. 우리 집 문 앞에 서서 큰소리로 말했다. 누가 남의 집 문 앞에다 밤새 주차했을까? 참 뻔뻔하군.
 
 
그날 저녁 그 차는 없었다. 어디에 있는가 살펴보니 골목 밖의 큰길에 세워져 있었다.
 
 
본래 앞집에는 젊은 한국인 부부가 자녀 셋과 살고 있었다. 목사인 남편이 시무하는 교회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면서 집을 세주었는데 계속 필리핀 사람들이 들어와 2-3년 살다가 이사 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부동산 업자가 필리핀 사람인 탓이리라. 가만히 보니 우리 앞집과 그 좌우 양 옆집도 필리핀 사람들이다.
 
 
그뿐이 아니다 우리 오른쪽 옆집은 한국 사람이지만 그 옆집도 필리핀계 사람들이다. 골목 일곱 집 가운데 네 집이 필리핀 사람들이다. 집집마다 자동차가 네 대씩이나 되니 주차가 문제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2001년 우리가 이사 올 때만 해도 일곱 집중에 다섯 집이 미국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 동양인들이다. 필리핀계가 네 집, 한국계 두 집, 나머지 한 집은 스리랑카에서 온 이민자 가정이다.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살다 보니 이웃끼리도 서로 대화할 일이 별로 없다. 이웃들과 나누는 대화가 고작 ‘좋은 아침’,‘잘 지내냐?’정도에 그치고 만다.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이불에 실례한 날 아침이면 부모님이 옆집에 소금을 얻어 오라 보내기도 했고 쌀이 떨어지면 옆집에서 빌려다 먹기도 했다.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지 않았지만 서로 흉허물 없이 지냈고 얼굴을 쳐다보기만 해도 그 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서로 알 정도였다.
그런데 요즘 이웃은 어떠한가? 과연 미국이라 서로 인종이 다르고 문화가 달라서 이웃끼리 교류가 없는 것인가?
 
 
앞집 사람이 우리 집 문 앞에 주차했다고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왜냐하면 내가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 대면되니까. 그런데 발끈해서 주차시키지 말라는 문구를 써서 자동차에 붙여 놓지 않았는가? 옛날의 이웃의 개념에서 본다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한 것이다.
 
 
사실 이웃보다는 인터넷 카페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더 많이 얘기를 나눈다. 속내를 터놓기도 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다방면에 걸쳐 폭넓은 대화를 한다. 그들이 과거 이웃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이웃의 개념이 바뀐 것이다.
 
 
지난 주말에 여러 가지 정보를 얻기 위해 드나들던 인터넷 카페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임이 있었다. 멀리 피닉스에서도 오고, 새크라멘토, 중가주의 프레즈노에서도 왔다. 도처에서 온 사람들이 어울려 저녁 먹고 늦게까지 얘기했다. 다음날은 바닷가에서 식사하면서 정담을 나누었다. 온라인상의 이웃이 진정한 이웃으로 바뀌고 있었다.
 
 
옆집에 산다고 이웃이 아니다. 멀리 떨어져 살더라도 자주 대화하는 사람들이 이웃이다. 그러나 우리 집에 불이 났을 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옆집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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