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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현실
05/24/21  

 

5월 6일 새벽 5시 한국에 도착해 보름간의 격리생활을 끝내고 20일 정오에 자유의 몸이 되었다. 14박 15일 동안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내가 이 기간 중에 겪은 일들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내게는 엄청나게 큰일이며 충격으로 남아있다. 내가 그동안 갖고 있었던 공공 윤리의식이 얼마나 허위이고 위선이였던가를 깨달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도착한 날(5/6)과 퇴소 하루 전 날(5/19) 송파구청 보건소에 가서 PCR 테스트를 해야 했다. 격리시설에 입소할 때는 음성인가 양성인가에 따라 조처가 달라지기 때문이고, 퇴소 하루 전날 검사는 그 결과에 따라 퇴소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양성 판정이 나온 사람을 세상 속으로 내보낼 수는 없기 때문이리라.

 

5월 6일 내 거주지인 송파구청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격리기간 머물고 있는 숙소측이 제공한 차량으로 이동한다. 기사는 하얀 방역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내게 얇은 고무장갑을 내밀면서 끼고 타라고 했다. 내가 앉은 자리를 제외하고는 온통 비닐로 커텐을 쳐놓았다. 운전석과도 비닐로 단단히 막아 놓았다. 앉자마자 습관적으로 벨트를 착용하려고 하는데 채워지지 않았다. 기사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자기가 운전을 안전하게 할 테니까 편하게 계시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안전하게 운전하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만 가려고 했다. 남산터널을 지나 한남동을 거쳐 한남대교를 건너면서 계속 끼어들기, 앞지르기를 반복했고, 올림픽대로로 강변을 달리는 차량 물결을 따라 가다가 다시 다리를 건너 가서 또 다시 다리를 건너왔다. 악전고투 끝에 송파구청에 도착했다.

 

그는 차에서 내리라 하더니 자기에게 바짝 붙어서 따라 오라고 했다. 그를 놓칠세라 바짝 붙어서 건물과 건물 사이에 마련한 검사소로 갔다. 그가 서있으라는 곳에 서있었다. 잠시 후 검사신청서를 제출하니 면봉과 검사한 것을 보관할 작은 유리관을 주었다. 그걸 들고 옆의 검사창구로 가니 면봉으로 무자비하게 콧구멍을 쑤셨다. 그리고 다른 쪽으로 입안을 샅샅이 훑었다.

 

검사를 마치고 다시 차로 돌아오는데 불과 5분 정도 걸렸다. 그때 알았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검사한 사람들이 나오는 출구였다. 출구로 들어가서 건물안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차례를 기다리지 않고 멋대로 검사를 받고 나온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항의하지 않은 것은 하얀 방역복을 입고 있었던 기사를 의료진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그 뒤를 따라 갔기 때문에 새치기인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5월 19일에는 운전기사가 구청으로 들어가는 게이트를 지나자마자 차도에 차를 세우더니 오늘은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 내려서 입구로 들어오라고 했다.

 

내려서 건물 정면에 있는 입구를 통해 들어갔다. 사람들은 많지 않았으나 십여 명이 중고등학교 교실에 있는 걸상 같이 생긴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건소 직원이 차례가 되면 한 사람씩 검사장 안으로 들어가도록 안내하고 있었다.

 

그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의자에 앉으려고 하는데 하얀 방역복을 입은 운전기사가 나타나 따라 오라고 했다. 엄연한 새치기였다. 기사는 보건소 직원인 것처럼 행동했다. 하얀 방역복은 위장복인 셈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새치기구나 하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눈들이 레이저를 내 뒤통수에 쏘아대고 있었을까. 차례를 기다렸다 해도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듯한데 왜 이렇게 하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못했다. 순식간에 머리는 돌아가고 있었다. 기사는 일분일초라도 내 검사가 빨리 끝나야 호텔로 돌아가 또 다음 사람을 데리고 또 다른 보건소에 가야하니까 그로서는 어쩔 수 없을 거라는 변명 아닌 변명을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운전을 하고 왔다갔다하는 동안에도 기사는 수십 번의 위반과 끼어들기를 했다. 심지어 무리하게 끼어드니까 뒤에 오던 차가 경적을 올린 적도 여러 차례 있었다. 자기는 서슴지 않고 끼어들면서 다른 차가 끼어드는 것은 용서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앞차에 바짝 붙어 운전했다.

 

특히 위험했던 순간은 올림픽대로로 오다가 잠실대교와 만나는 지점에서 성남시 방향으로 우회전한 후에 1차선으로 들어가자마자 바로 또 좌회전한 다음 다시 1차선으로 차선을 변경하기 위해 달려오는 차량들 사이로 차머리를 들이밀면서 끼어들 때였다. 속력을 내고 차들이 달려오는데도 차 앞머리를 밀어 넣을 공간만 있으면 무조건 디밀어 넣는 것이었다. 몇 번인가 부딪칠 뻔 했으나 기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운전했다. 순식간에 일차선에 자리를 확보하고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번(5/6, 5/19)의 송파보건소에 다녀오면서 목격한 그리고 그 한 패가 되었던 경험, 새치기와 운전기사의 운전 태도가 어쩌면 대한민국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 목표, 내 목적을 이루면 된다는 생각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정신이라고 생각하기는 정말 싫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에 이 사회가 돌아가는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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