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1.5세 아줌마
홈으로 나는야 1.5세 아줌마
짝 잃은 양말
05/24/21  

 

빨래를 갤 때마다 끊임없이 짝 잃은 양말이 나온다. 분명히 빨래통에 두 짝씩 넣었을 텐데 세탁기가 집어삼키는 건지 바닥 밑으로 꺼지는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실제로 구글에서 검색하면 "왜 세탁기를 돌리고 나면 양말들이 사라지는가?"에 대한 질문과 연구들이 꽤 많이 올라와있고 나 역시 정말 궁금해진다. 분명히 빨래통 앞에서 양말 두 짝을 벗어 넣었고 나는 세탁기를 돌릴 때 그대로 세탁기로 옮겼다. 그리고 세탁기에서 건조기, 건조가 다 끝나면 개기 위해 소파로 이동한다. 몇 번의 이동을 거듭하긴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단 한 번도 빠짐없이 10-20%씩 짝 잃은 양말이 생겨나는 것일까? 이 물음 앞에 나는 정말 매우 진지하다. 특히 식구가 많은 우리 집의 경우 식구 모두가 외출하는 날이면 기본적으로 매일 양말이 최소 다섯 켤레 10피스씩 나오니 며칠이 모이면 양말 숫자가 어마어마해진다. 

 

며칠 전 아이들의 두꺼운 옷들을 집어넣고 여름옷들을 꺼내는 대대적인 옷 정리에 돌입했다. 서랍장과 옷장을 홀딱 뒤집어야 하다 보니 하루 꼬박 걸리는 일이었고 나름 큰마음을 먹고 시작했다. 막상 시작하고 보니 이참에 속옷과 양말 서랍도 정리하자 싶었는데 서랍 안에는 짝 잃은 양말들이 무수히 나뒹굴고 있었다. '오늘 내 기어이 이 짝 잃은 녀석들을 해치우리라'고 다짐하며 양말을 모두 꺼냈다. 일단 그 안에서 1차 짝 찾기 돌입, 그러고 나서 평소 온 가족의 짝 잃은 양말만 모아두는 서랍에서 양말을 모두 꺼내 2차 짝 찾기 돌입, 장작 한 시간 이상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바닥에 철퍼덕 앉아서 짝 잃은 양말들을 쫙 펼쳐놓고 그 짝을 맞추고 있자니 민화투 그림 맞추기도 아니고 나 스스로도 웃음이 나서 남편한테 사진을 찍어 보냈다. 남편은 다짜고짜 짝 찾느라 버리는 시간이 아깝다며 차라리 짝 없는 양말들은 몽땅 버리는 것이 낫겠다고 했다. 누가 대기업 출신 아니랄까 봐 효율성부터 따지고 드는 모양이다. 짝 없는 싱글들이 더 많긴 하지만 오늘만 30 커플 이상 맺어줬는데 버리긴 왜 버려~~

 

한참 동안 짝을 찾지 못한 채 남아있는 양말들을 보면 나 역시 버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매번 고민을 하게 되긴 한다. 이는 새로울 것도 없는 오랫동안 반복되는 고민 중 하나이다. 하지만 언제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양말들을 그대로 다시 서랍에 넣어두곤 했고 그렇게 쌓인 양말 더미가 어마어마했다. 서랍 한 칸을 오롯이 짝 잃은 양말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볼 때마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었지만 그래도 막상 몇 번 신지도 못한 멀쩡한 양말들을 볼 때면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당장이라도 짠하고 제 짝이 나타나 줄 것만 같고 이대로 포기했다가 뒤늦게 제 짝이 나타나면 어쩌지 싶기도 했다. 이게 뭐 그리 대수인가 싶지만 집 안에서 한참 살림에 몰두하다 보면 세계관의 범위가 좀 좁아진다고 해야 할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 뭐 먹지?"이고 최대 미션은 냉장고 야채칸에서 시들어가는 야채 해결이고 그렇게 되어버린다. 하지만 이번엔 이미 너무 작아져버린 양말들만큼은 포기하기로 했다. 이제 보내줄 때가 되었지 싶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의 글을 남편에게 보낸 사진과 함께 내 SNS에 올렸더니 공감 댓글이 무수히 달렸다. 우리집 양말만 행방불명되는 것은 아니구나, 나만 빨래에 소질이 없는 형편없는 주부는 아니구나 싶어서 안심도 되고 짝 잃은 양말 활용법도 얻을 수 있어서 꽤 유용했다. 몇 가지 팁을 소개하자면 아예 짝짝이 양말을 신는다, 애초에 양말은 늘 같은 컬러로만 구입한다, 짝 잃은 양말들은 손에 껴서 창문 틈이나 블라인드 청소 시 사용한다 등이었다. 수북이 쌓여있는 짝 잃은 양말 서랍을 보면서 늘 한숨이 절로 나왔는데 이제 더 이상 너무 나 자신을 자책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어서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리고 확실히 귀찮은 일이긴 하지만 이렇게 양말에게 제 짝을 찾아주고 나면 뭔가 찜찜한 마음이 후련해진다. 그나저나 대체 어디들 있었니? 아직도 서랍 속에 짝 잃은 양말이 잔뜩 남았지만 이상하게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콧노래가 흘러나오는 날이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