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홈으로 발행인 칼럼
균형 잡힌 마음
06/01/21  

 

한국 도착 후 14박 15일간의 격리생활을 마친 다음날, 한국 비구니회관 법룡사에서 모임이 있었다. 본각 스님, 석광훈 성공회 신부, 미국에서 온 전진효 풀러턴 아가페교회 선교목사, 김종국 장로 그리고 나, 이렇게 4명이 '생명, 삶, 그리고 현재'라는 주제를 놓고 좌담의 시간을 가졌다. 중간에 불교 신도인 안영모 씨가 참여했다. 모두 필자와 인연이 있는 분들이다. 본각과 안영모, 김종국은 대학에서 만난 철학과 동창생들이고, 석광훈 신부는 중·고등학교 동창, 전 목사는 미국에서 만난 친구이다. 나의 귀국에 맞춰 만나서 뜻있는 시간을 갖자는 취지로 본각스님이 마련한 자리였다.

 

필자의 진행으로 시작된 좌담회는 시작부터 참가자들의 열정적인 발언과 경험담이 장내를 후끈 달궈 몇 시에 마칠 것인가를 미리 정하지 않고는 끝날 것 같지 않아 3시에 마치기로 했다.

 

진행자가 참석자들에게 자신의 차례를 알려주면 발표를 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가장 준비를 많이 해온 사람은 김종국 장로였다. 평소 본인이 즐겨 있던 책들 속에서 발췌한 내용과 자신이 경험했던 일들을 연결하여 '생명과 삶, 그리고 현재'를 잘 연결하고 조화시켜 가며 참석한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었다.

 

김 장로는 생존 경쟁, 적자생존의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살기 위해서는 먹는 삶이 아니라 먹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먹힘으로써 약육강식의 먹이 사슬이 이어지고 개체수의 확장으로 연결된다는 자연 법칙과 적용시켜 설명해 참석자들의 공감을 얻어내었다. 석광훈 신부도 본인의 평소 갖고 있던 신앙과 철학을 바탕으로 매끄럽게 이야기를 펼쳤다.

 

전 목사는 나와 일주일에 두 번씩 산책을 하는 관계로 그의 성향을 익히 알고 있기에 대충 어떤 얘기를 하리라는 것을 예상했는데 평소보다 더 강경하게 발언 수위를 높였다. 사람에게는 영과 혼, 육이 있는데 혼과 육은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영혼과 육신의 개념이고, 영이라는 것은 하느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이 영을 받지 못해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진정한 생명은 하느님으로부터 영을 받아야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부분에서 목소리를 높여가며 얘기해서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게다가 본각 스님을 향해 하느님의 영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한 생명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나는 잔뜩 긴장했다. 스님을 쳐다봤다. 스님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으며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거려 주었다. 그는 몇 달 전 산책길에 가톨릭 신자인 내게도 '하느님의 영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진정한 신자가 아니라고 단정지어 말한 바 있었다.

 

스님은 전 목사의 발언에 대해 아주 완곡하게 그리고 멋지게 이야기 하여 무거운 분위기를 가볍게 바꿔 주었으며 말미에는 전 목사의 생각이 결코 옳지 않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느낄 수 있게끔 이야기 했다. 그 발언에는 아무도 다치지 않고 아무도 기분 상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가 담겨 있었고, 우주 삼라만상에 적용되는 원융무애 사상이 그 바탕에 깔려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정각 3시에 좌담회를 마쳤다. 끝나고 오는 길에 전 목사가 말했다. 목사이기 때문에 자기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고. 김 장로는 목사님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나도 이해한다. 그러나 좌담회 석상에서 본각 스님을 가리키며 "스님은 하느님의 영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참 생명을 갖지 못했고 진정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발언은 지나치지 않았는가 싶다. '예수 이외의 신을 섬기는 것은 죄'라 하는 것은 그리스도 교 안에서는 통하는 진리임에는 틀림없으나 엄연히 다른 종교인들까지 싸잡아서 그리스도 교적 평가와 판단으로 묶어 가려는 태도는 잘못되었다는 생각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종교를 믿으며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상당수 있다. 나와 다른 신앙관, 종교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 혹은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자신이 믿는 종교의 교리와 신앙에 적용시켜 판단하는 것은 무례요 폭력이다. 물론 전 목사의 발언을 그리스도 교 전체의 견해라고 말할 수는 없겠다. 전 목사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 좌담회 후 답답한 마음이 계속되었다.

 

'백살에는 되려나 균형 잡힌 마음'이라는 책을 읽으며 어느 정도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일본의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다카하시 사치에가 100세 되던 해에 쓴 책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인생이란 자신의 균형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마음의 균형을 찾아갈 때는 재미있게 놀이하듯, 마치 게임을 즐기는 듯한 감각이면 충분하다. 그러한 자세가 인생을 더 풍요롭고 깊이 있게 변화시켜 준다. 100년을 살아오면서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낀다.’라고 이야기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절대적인 어떤 종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균형 잡힌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균형을 찾아내는 분별력이야말로 어른이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능력이다. 균형 잡힌 마음을 갖게 될 때 비로소 생명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으며 인생을 더 풍요롭고 깊이 있게 변화시켜 지금 현재를 즐기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