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er safe than sorry
04/23/18  
갑자기 전기가 나갔다. 창밖을 보니 사거리 신호등도 꺼졌다. 한낮에 사무실은 어둠에 휩싸여버렸다. 지난 금요일에도 전기가 나가 마감에 쫓기던 직원들이 발을 구르며 전기가 들어오기만 기다렸다. 다행히 두어 시간 만에 전기가 들어와 제 시간에 끝낼 수 있었다. 한주일 만에 또 전기가 나가다니. 무더위가 계속되면서 에어컨 사용이 늘어나서 전력 사용에 비해 공급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과부하가 걸려 공급이 자동 중단되는 것이다.
 
 
너무 덥다. 한낮 기온이 100도를 오르내리는 것은 보통이고 한밤중에도 90도를 넘나든다. 지금 오후 8시, 깜깜한 밤인데도 기온은 91도이다. 에어컨을 가동 중인 집안은 80도를 가리키고 있다. 밤에도 기온은 떨어지지 않는다. 온 몸에 땀이 흘러 잠을 이루기가 힘들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화요일, 라하브라와 풀러튼 접경 야산에서 산불이 났다. 퇴근길 브룩허스트 스트리트 선상 5번 Fwy 위의 다리를 넘어서면서 연기가 치솟는 광경을 보았다. 그 지역에 사는 주민들에게 대피령이 내려져 경찰관들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대피를 유도했다.
 
 
이렇게 더위, 화마 등과 싸우고 있을 때, 일본 열도는 폭우가 쏟아져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이바라키현에서는 폭 140미터의 제방이 터져 물살이 한 마을을 통째로 삼켜 버렸다. 실종자들이 20여명, 고립된 사람이 1,700 명으로 인명피해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제방 2곳이 무너진 오사키시에도 고립된 주민이 1,000여명에 달한다. 50년 만의 폭우로 인한 피해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올겨울 캘리포니아에 폭우와 폭설로 인한 피해가 많을 것이라는 예보도 나왔다. 10년 전 악몽이 떠오른다. 캘리포니아에서는 2004년 12월말부터 이듬해 1월초까지 폭설과 폭풍우가 계속되어 산사태가 발생해 사람들이 숨지고 가옥들이 파괴됐다. LA 일대에서는 정전으로 1만2,000여명이 지옥 같은 밤을 보내야 했다. 벤츄라 카운티의 해안마을 라콘치타에는 폭우로 산사태가 일어나 주택이 무너지며 주민들이 숨지거나 다쳤다.
 
 
팜데일 지역에서는 승용차를 탄 일가족 4명이 빗물에 고립된 뒤 구조됐으나 2살 난 여자 아이가 숨졌다. 이 여아는 엄마 품에 안긴 채 헬기로 끌어올려지다가 엄마 팔에서 떨어져 추락한 뒤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말리부 바닷가에서도 차량 한 대가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벼랑으로 추락해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폭우로 인해 페퍼다인대학과 샌버나디노카운티 일부 교육구 그리고 글렌데일 지역의 학교들이 수업을 중단했다. 폭설로 200명 정도의 운전자가 샌버나디노 산간지역에 갇혀있다 구조되었다.
 
 
2005년 1월, 폭설은 새크라멘토와 네바다주 리노를 연결하는 US 50번, 캘리포니아 하이웨이 88번, 미 대륙을 동서로 횡단하는 인터스테이트 80번 도로의 운행을 가로 막았다. 샌버나디노와 러닝 스프링스를 연결하는 캘리포니아 하이웨이 330번 도로도 산사태로 교통이 두절됐고 서부 해안의 주요 운송루트인 인터스테이트 5번 도로도 차단돼, 물류 운송에 큰 차질이 빚어졌다. 이스턴 시에라 맘모스마운틴에는 밤새 75cm의 눈이 쌓여 적설량이 723cm에 달했다.
 
 
베벌리 힐스와 헌팅턴파크, 빅터빌, 팜스프링스 일부지역도 폭풍우로 전기공급이 일시 중단되고 레이크 애로우헤드도 전선이 끊겨 정전사태가 잇따랐다.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도 악천후의 영향으로 파고가 2.2m에 달하는 등 평상시보다 6배나 높은 파도가 밀려들기도 했다.
 
 
2005년 1월 8일 아일랜드에서 스칸디나비아, 러시아에 이르는 북유럽 전역에 시속 180㎞의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몰아쳐 14명 이상이 숨졌다. 스웨덴에서는 전력의 절반을 공급하는 11개 핵발전소 중 5곳이 가동을 중단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스부르크에서는 일부 지하철역을 폐쇄했다.
 
 
영국 잉글랜드 북부 컴브리아주 주도 칼라일시는 이든강이 범람해 도시 전체가 침수됐다. 발트해 연안국 라트비아 정부는 1월 9일 전국 가구의 60% 가량이 정전되었고 정부는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2004년 12월 말, 태국의 휴양도시를 쓸고 간 쓰나미도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필자의 딸은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신혼여행 중이었다. 다행히 하루 먼저 그곳을 떠났기에 화를 면할 수는 있었지만 함께 지내던 사람들이 숨졌다며 오열하던 딸의 절규를 뚜렷이 기억한다.
 
 
연방정부나 시정부들도 폭우나 폭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준비하겠지만 각 가정에서도 철저히 대비해야겠다. 십년 전의 악몽이 재현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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