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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길 걷기
06/07/21  

친구와 남산길을 걸었다. 친구가 남산길을 걷자고 하자마자 신이 났다. 남산에 오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를 서울에서 다녔고, 대학 졸업 후에도 줄곧 서울에서 살았다. 심지어 남산에 있는 대학에 다녔음에도 남산에 오른 적이 없다. 기껏 남산에 오른 것이라고는 초등학교 때 당시 남산 입구에 있던 드라마센터에서 우리 반 친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화랑관창이라는 연극을 보러 왔던 것이 전부다.

 

친구는 전철 6호선 한강진역 1번 출구에서 만나자고 했다. 친구의 안내로 한강진역 1번 출구 근처에 있는 용산국제학교를 끼고 돌아 남산길로 접어들었다. 남산은 초입부터 서울타워까지 그리고 내려오는 전 구간이 말끔하고 깨끗했다. 그 어디에도 휴지 한 조각 버려져 있지 않았다. 천만이 넘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 이처럼 한적한 숲길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자동차들로 가득차고 사람들이 저마다 바쁘게 움직이는 거리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하고 걸었다. 친구는 숲속으로 접어들면서 마스크를 벗었다. 나도 따라 벗었다. 사실 나는 2차 접종까지 마친 사람이다. 게다가 미국에서 출발하기 하루 전 날, 또 한국에 도착한 바로 그날 PCR 테스트에서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게다가 14박 15일 격리생활까지 한 사람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나타나면 나는 마스크를 다시 썼다. 그러나 친구는 태연하게 마스크를 벗고 걸었다.

 

한참을 걷다가 친구가 잠시 주춤하더니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켰다. 담배를 태우면서 걷는 것이 아닌가. 나는 깜짝 놀랐으나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그 뒤에 좀 떨어져서 걸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그와 내가 일행이라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친구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정도는 본인이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조금 걷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기서 담배 피워도 되냐?" 친구는 "안 되는데 그냥 피운다"면서 계속 피웠다. 맞은편에서 사람이 오면 연기가 나오는 것이 정면에서 보이지 않도록 담배 든 손을 자기 뒤쪽으로 하지만 냄새는 그들을 자극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지나갔다. 다행히 친구는 얼마 가지 않아 담배를 끄고 꽁초를 손에 들고 걸었다. 친구는 과연 꽁초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계속 지켜보았다. 친구는 남산 서울타워 근처에 가서 휴지통에 버렸다.

 

우리는 타워 꼭대기까지 올라가지 않고 전망대에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참 깨끗하다. 멋지게 잘 해놓았다.

 

내려오는 길은 계단이 많았다. 친구는 계단이 없는 길로 가려면 한참 돌아야 하기 때문에 빠른 길을 택했다고 했다.

 

한참 내려오는 도중에 친구가 또 담배에 불을 붙였다. 참지 못하겠던 모양이다. 아까와 같이 담배 든 손을 자기 몸 뒤로 하고 피우며 내려가는데 이번에는 뒤에서 오는 사람이 그의 손에 들린 담배를 보았다. 그 사람은 우리를 지나쳐서 조금 가다가 다시 돌아와 친구에게 "담배를 피우면 안 되는 곳이니까 담배를 끄시라"고 말했다.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상대방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뒤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며 긴장했다. 만일 심하게 다투거나 물리적인 충돌이 생기면 나는 누구 편을 들어야 할 것인가. 긴장감이 감돌았다.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 사람은 고개를 돌리고 오던 길을 계속 갔다. 내가 말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그냥 가는데 그 사람은 용기가 있는 사람인데." 친구가 말했다. "내가 잘못한 것이지." 친구는 그러면서도 몇 모금 더 들이마시고, 꽁초가 다 되어서야 불을 끄고 꽁초를 들고 걸었다. 어디다 버릴 것인가 지켜보았다. 친구는 들고 있던 꽁초를 지하철 화장실 휴지통에 버렸다.

 

거기서 나는 깨달았다. 왜 남산이 그렇게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는지. 길에 휴지 한 조각 버려져 있지 않은지.

 

담배를 참지 못해 숨기면서 피우는 친구가 꽁초만큼은 아무데나 함부로 버리지 않고 꼭 휴지통을 찾아 버리는 행위, 남의 일이라고 지나치지 않고 담배 피우지 말라고 적극적으로 만류하는 시민의식이 도심 속에 깨끗하고 쾌적한 숲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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