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1.5세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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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두어도 괜찮아
0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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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내 키보드에 올라온 우리 집 고양이 A의 흔적이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고 하니 귀찮은 듯 꼬리를 서너 번 휙휙 젓고는 책상 밑으로 내려가버렸다. 고양이 남매가 우리 집에 온 지 6개월이 되어간다. 아직도 길들여지지 않은 길고양이와 다를 바 없지만 이제 제법 이름을 부르면 고개를 돌려 쳐다보거나 귀를 움직이긴 한다. 물론 여전히 이름을 듣고 반갑게 달려오거나 꼬리 치며 안기거나 하지는 않는다.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집에 들이며 무조건 명심해야 할 사항이기도 한데 자칫 고양이를 개랑 비교하는 오류를 저질렀다가는 크게 상심에 빠질 수 있으니 절대 주의해야 한다. '어째서 주인인 나를 따르지 않는가?' 하는 고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고양이와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불편할 수도 있다. 고양이는 고양이일 뿐이다. 개와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는 한집에서 함께 살아갈 뿐 서로 각자의 삶에 충실하다. 

 

가끔 부르면 개처럼 달려오고 내 품에 오래 안겨 있어도 좋겠구나 싶지만 그래도 지금 이 정도가 내겐 딱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 거리가 우리에겐 완벽하달까…... 삼시세끼 밥 주는 시간에는 꼬리를 지팡이 모양처럼 치켜들고 다가와 몸 구석구석을 내 다리에 성의껏 비벼대지만 밥을 먹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쌩 사라지는 그 정도. 딱 그 정도면 만족한다. 그리고 내가 외출할 때면 어딘가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눈빛이 가지 말라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이 역시 나의 착각일 가능성이 크다. 고양이들은 대체로 사람들이 나가든지 들어오든지 크게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집에 돌아왔는데도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통 모습을 보이지 않아 결국 내가 숨바꼭질하듯이 찾아가서 이름을 부르고 아양을 떨곤 한다. 하지만 반응은 역시 시큰둥하다. "응. 왔냐?" 딱 그 정도…...

 

특히 남편과 나에게는 뭔가 더 야박한 것만 같다. 우리집 어린이들은 고양이들을 수시로 귀찮게 하는데도 친구라고 생각하는지 제법 곁을 내주고 오래 안겨 있는다. 좋아하는 건지 참고 있는 건지 그 속을 정확히 알 순 없지만 그래도 분명 싫어하지는 않는 눈치다. 팔 힘도 없고 손도 조그마한 막내가 엉성한 자세로 안아 들면 아무런 저항 없이 헝겊 인형처럼 몸을 축 늘어뜨리고 안겨 있는다. 하지만 유독 남편이나 내가 안으면 뭔가 잔뜩 긴장하거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거세게 저항하거나 공격을 하지는 않지만 품에 안겨 끙끙거리기도 하고 한숨을 내쉬기도 하니 눈치 못 챌 수가 없다. 남편은 어떻게든 점수를 만회해보려고 좋아하는 간식을 후하게 줘 보기도 하지만 간식을 받아먹고 나면 다시 몸을 휙 돌려 사라져 버리기 일쑤다. 밥은 우리한테서 받아먹고 충성은 엉뚱한 데서 지키는 식이랄까? 

 

하지만 그렇다고 얘네들이 어딘가 멀찍이 가버리거나 늘상 숨어있는 것만은 아니다. 고양이들은 항상 내 주위 어딘가에 머무른다. 아무리 불러도 코빼기도 안 보이고 일부러 내가 곁으로 다가가면 굳이 몸을 일으켜 옆으로 피해버리면서도 대체로 내 근처 1-2미터 이내 어딘가에 머무른다. 내가 안방 침대에서 쉬고 있으면 침대 밑이나 내 발 밑 근방에 있고 내가 거실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하고 있으면 내 발 밑이나 책장 옆 어딘가에 있다. 어디서든 본인 시야에 나를 두겠다는 의지가 확실해 보인다. 나는 얘네들이 안 보일 망정 자기네는 나를 보고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모양이다. 경계를 하는 것인지 궁금해하는 것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우리에게서 아주 멀어지지는 않는다. 항상 근처에 머물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그 거리가 얼마나 절묘한지 마치 유행가 가사처럼 내가 한 발 다가서면 두 발 멀어지는 딱 그 정도이다. 

 

6개월을 동거하면서 가끔은 도대체 이 녀석들의 머릿속엔 뭐가 들어있나 몹시 궁금하기도 했다. 내 말을 알아듣고 말을 할 수 있다면 더 편하고 재미있었을까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아니다. 언어 소통이 가능해지면 이건 뭐 그냥 인간 아이 두 명 더 생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다른 언어를 사용해서 오해와 착각도 빈번하지만 나름 함께 살아가는 데는 별 문제가 없으니 이걸로 충분하다. 그리고 고양이들의 생각 구석구석 알 턱이 없지만 적어도 얘네들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정도는 알 것 같다. 표정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제는 웃는 얼굴, 짜증 내는 얼굴, 난감한 얼굴 정도는 대충 알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도 우리의 거리가 좁혀질 것 같지는 않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충분히 사랑하고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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