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04/23/18  
9월 12일 북가주 레이크 카운티에서 발생한 산불로 주택 400채와 여러 채의 건물이 소실되고 사상자가 발생했다. 제리 브라운 주지사는 13일 레이크 카운티와 나파 카운티에 비상사태를 선포했으며, 이 지역 학교들은 14일 휴교했다.
 
 
지난 6월 13일 인명 피해와 불에 탄 가옥은 없었지만 필자가 자주 찾는 마운틴 산 골고니오에도 큰 불이 났다. 산불은 한 달 가까이 계속되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헬기로 물을 퍼다 부었으나 불은 꺼지지 않았다. 소방대원들이 각종 장비를 동원해 나무를 베어내고 더 이상 번지지 않도록 작업을 했으나 산불을 잡지 못했다. 불을 끈 것은 하늘이 내려준 비였다. 한 달여를 끌며 우리를 애타게 했던 화마를 잡은 것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었다.
 
 
3개월이 지난 9월 13일 산 골고니오를 찾았다. 몇 걸음 옮기지 않아 불에 타버린 처참한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탄내가 온산에 진동하고 있었다. 계곡에서는 아직도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듯했다.
 
 
검게 타버린 나뭇더미 속에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있다. 도마뱀이다. 검은 색이다. 검게 타버린 숲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도마뱀의 변신이 놀랍다.
 
 
울창한 숲에 가려 모습은 보여주지 않고 물소리만 들려주던 산타아나 강이 흐르는 물길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동안 감춰져 있던 여인네의 속살을 보는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하고, 처참한 몰골을 하고 처분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여겨져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처참한 산의 형상, 나무와 흙과 심지어 검게 변색되어 버린 도마뱀까지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우리 삶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화려하고 다양해 보이는 인간들의 삶이 진짜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화마 속에서도 살아남은 생명은 있었다. 검게 타버린 나무 밑에서 솟아오른 파란 잎과 줄기, 그리고 검은 잿더미 속을 뚫고 올라와 피어난 야생화, 생명의 신비다.
 
 
한 사람이 뜰채를 갖고 올라온다.“입산금지인데 어디를 가느냐?”물으니 자신은 이곳의 상수도원을 관리하는 사람인데 정화조로 보내기 전에 웅덩이에 고여 있는 물을 깨끗이 하기 위해 올라간다고 했다.
 
 
물웅덩이에 도착해서 그가 하는 일을 지켜보았다. 그는 겉옷을 벗고 장화를 신었다. 웅덩이에 떠다니는 나뭇가지와 잎 등을 뜰채로 걷어 내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번 정도 왔다갔는데 산이 불타고 있는 동안에는 올 수 없었다. 한 동안은 식수를 공급할 수가 없었다. 산불이 꺼진 후에는 웅덩이를 깨끗이 청소하기 위해 하루에 서너 번씩 왔다간다고 했다. 그는 산골마을에 공급되는 상수도원을 깨끗이 하는 자신의 일에 긍지를 느끼고 있었다.
 
 
그도 가버리고 혼자 산을 오른다. 길이 다 없어져 버렸다. 기억을 더듬어 길을 찾거나 길을 만들며 올라야 했다. 냇물은 소리를 내며 변함없이 흐르고 있지만 산을 감싸고 있는 전체적인 불의 기운은 어쩔 수가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검은 색이거나 회색의 재뿐이다. 푹푹 빠지며 잿더미 위를 한동안 걸었다.
 
 
스산한 바람은 허공을 가르고 태양은 고요와 적막을 강렬한 빛으로 녹이고 있다. 한편에서는 한낮의 고요를 깨고 살아남은 자들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내밀고 있는 파란 싹과 예쁘게 핀 꽃들, 죽음을 뚫고 일어선 자들의 함성이 들린다. 물소리, 새소리, 발자국 소리가 장엄한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되어 골짜기를 가득 채운다. 메시아를 찬미하는 장엄한 연주가 들린다. 죽음의 사도들은 고개 숙이고 엎드려 있다.
 
 
모든 것들이 타버린 그 속에 평화가 있었다. 천국의 열쇠는 마음의 평화에 있다고 했던가. 눈물이 흐른다. 누군가가 뒷덜미를 잡는 것 같다. 더 이상 오를 수가 없었다. 돌아서기로 한다.
 
 
지금도 캘리포니아주 12곳에서 대형 산불이 나서 산림을 태우고 있으며, 소방관 1만 1천여 명이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대형 산불은 인력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산불이 번지지 않도록 노력할 뿐이다. 캘리포니아의 모든 산불이 꺼질 만큼 많은 비가 내리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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