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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인사
06/14/21  

한국에 올 때마다 친구 K와 함께 성남시의 한 납골당을 찾는다. 대학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 L이 있는 곳이다. 셋이 잘 어울렸었는데 L이 제일 먼저 세상을 떠났다.

 

세상 살면서 후회스러운 일이 어디 하나둘일까마는 평생 후회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다. 그렇게 후회할 일은 갑자기 생겨난다. 예측할 수 없다. 그럼에도 만일 그 일이 내가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면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넘길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이 관계된 일이라면 회한의 감정을 평생 동안 갖고 살아야 할 수도 있다. 이미 엎지른 물이라 주워 담을 수도 없고 혼자 끙끙댄다고 어떤 해결책이 나올 리 없는 줄 알면서도 사무친 회한의 감정을 가슴속에 새긴 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 아련한 아픔이 되기도 한다. L은 바로 그렇게 가슴속에 남아있는 친구다.

 

내가 미국살이를 시작하면서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가끔씩 국제 전화를 해오곤 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인지라 지금처럼 카톡 등 메신저를 이용해 소통할 수 없어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누지 않는 한 오직 편지와 전화만이 소통의 수단이었다. 국제전화 요금이 만만치 않았음에도 친구들은 전화를 걸어 내 안부를 묻어오곤 했다. L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L은 늘 술에 취해 전화를 했다. L은 공군 장교로 군복무를 마치고, 내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 통일주체국민회의 부의장 등을 지낸 사람의 보좌관, 비서관 등으로 근무하다가 그 사람이 은퇴하면서 함께 공직을 떠났다. 그리고 농사를 지었다. 해보지 않던 일을 하려다 보니 힘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로 인해 술을 가까이 하게 되었고, 결국 알코올 중독이란 늪에 빠지고 말았다. 그런 L이 전화를 해 올 때마다 ‘생활이 고달프고 힘드니까 한잔하고 전화했으려니’ 라고 생각했다. 그는 통화하는 동안 늘 횡설수설하고 중언부언 했다. 그러다보니 어떨 때는 내심 짜증이 나기도 했다. 더구나 힘들게 일하고 들어와 쉬거나 자고 있는데 전화를 걸어와 취한 목소리로 한 말을 하고 또 하는 L에게 마지못해 건성건성 대꾸했을 수도 있다.

 

그날도 L은 취한 목소리로 횡설수설했다. 그런 그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몹시 나를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L은 몇 번이고 “보고 싶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보고 싶다. 같이 한 잔하고 싶다." "무슨 일이 있냐?" "아니, 아무 일 없어. 그냥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 "아 그래 한국에 곧 갈 텐데 그때 한 잔 하자." "그래. 한국 오면 꼭 연락해라." "당연하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저마다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친구 간에 나눈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대화였지만 끝내 그날의 통화는 가슴속에 회환으로 남고 말았다. L은 그날 이후 더 이상 나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아니 전화할 수 없었다. 그는 그날의 통화를 마치고 이틀 뒤에 세상을 떠났다. 알코올 중독에 의한 여러 가지 합병증이 원인이었다.

 

L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가슴 한편이 저려왔다. 그때 좀 더 따뜻한 말을 해 줄 걸. 더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로 그의 삶을 달래줄 걸. 가슴속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회한이 밀려왔지만 땅을 치고 후회해도 더 이상 L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다음이었다.

 

인간은 홀로 태어나 홀로 죽는 존재이다. 하지만 살면서 외로울 때면 친구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질 때가 있는 법이다. 대학시절 4년을 함께 보냈고, 사회에 나와서도 자주 만나던 친구, 등산도 함께하며 많은 추억을 함께 간직한 친구, 그런 L이 전화를 걸었는데 건성으로 일상적인 대꾸만 했던 것이다. 그가 그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날 줄 몰랐다고, 그때 나는 일을 마치고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고 스스로 변명해 보려고 하지만 그런 나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그날의 통화는 지금까지도 가슴속에 상처 자국으로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미 한 줌의 재가 된 L이 머물고 있는 곳을 찾는다고 상처 자국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도 또, 상처 자국을 지울 그 어떤 방도가 있지 않다는 것도, 아니 분명하게 해결해야 할 어떤 일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번 한국 방문에서도 14박 15일의 격리가 풀리자마자 서둘러서 K와 함께 L을 찾았다. 그리고 셋이 술잔을 나누었다.

 

어느 날 누군가로부터 온 전화가 작별인사가 될 수도 있다. 평생 후회하며 살지 않도록 성심성의껏 따뜻하게 받아 주자.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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