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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음식
06/14/21  

반찬가게에서 얼갈이 열무 물김치를 한 통 샀다. 보는 순간 밥에 얹어 슥슥 비벼 먹거나 비빔국수에 고명으로 넣으면 참 맛있겠다 싶었다. 배달 오자마자 먹어보니 아직 덜 익었길래 며칠 뒀다 먹어야지 했는데 그 다음 날 친구가 친정엄마가 담가주셨다며 얼갈이 열무 물김치를 한 통 들고 왔다(역시 더 맛있음). '어쩜 이런 우연이 다 있지?'하고 있었는데 내 SNS에 작년 오늘 사진이라며 열무김치에 밥을 비벼 먹은 사진이 올라왔다. 그뿐 아니라 지난주에 친정아버지가 친구가 재배한 무농약 농산물이라며 얼갈이와 열무를 잔뜩 들고 오시지 않았던가? 그렇구나, 철이구나 제철!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해서인가 유난히 제철 음식이 더 부각되는 것 같다. 1월에는 과메기, 2월은 바지락, 3월에는 달래와 냉이, 4월에는 주꾸미와 두릅, 5월에는 장어와 매실, 6월에는 감자, 참외, 블루베리, 7월에는 옥수수, 토마토, 8월에는 수박, 포도와 복숭아, 9월에는 굴, 게, 전복, 10월에는 대하, 고구마, 11월 사과, 12월 유자, 배추, 홍합 등등......  

 

뭐 그 달을 넘긴다고 난리 나는 것은 아니고 그 즈음 해서 먹으면 제일 맛있다는 것인데 특히 과일만큼은 유난히 계절을 타는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이 딸기를 좋아해서 자주 사 먹는 편인데 우리 어릴 땐(어김없이 등장하는 라떼는 말이야) 딸기의 계절을 봄이라고 배웠건만 이제는 죄다 하우스 딸기라 겨울 딸기가 제일 맛나고 4월만 되어도 끝물이라 맛이 없다. 김치를 12월에 담그는 이유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배추와 무가 이즈음 가장 맛있기 때문이다. 더 신기한 것은 겨울 철이 되면 동네 마트는 물론이며 온라인에서도 과메기를 팔기 시작하는데 평생 과메기를 못 먹어본 나 같은 사람도 얼떨결에 과메기를 구매하게 될 정도로 자꾸 눈에 띈다. 암튼 이렇게 때가 되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제철 음식들이 등장하는 것은 참 신기하고 재미있으며 이제는 왜 이렇게 어른들이 제철 음식 제철 음식하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생각해보면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제철 음식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냥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고, 눈에 보이면 사고 그런 식이었다. 물론 지금도 엄청 부지런을 떨면서 제철 재료들을 손꼽아 기다리며 산지에서 어렵게 공수한다든가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 이제 초당옥수수 나올 때가 되었구나. 이제 블루베리 주문할 때가 되었구나(친구의 친구 부모님이 농장을 하셔서 매년 잘 주문해 먹는다)' 하며 자연스럽게 반응하게 되었다. 

 

제철 음식은 맛도 있지만 계절마다 떠오르는 먹거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뭔가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먹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라지만 먹는 것이 얼마나 우리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니깐. 제철 음식은 자연스럽게 우리 몸에 가장 신선한 영양소를 공급해줄 뿐 아니라 제철이라 더 맛있고 가격도 좋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나이 들어가는 탓인지, 한국 생활에 적응이 된 것인지 이제는 나도 제법 제철 먹거리를 찾는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을 알게 되었다. 봄이 되면 벚꽃 구경, 여름에는 물놀이, 가을에는 단풍구경, 겨울이면 눈 구경을 떠나듯 아주 자연스럽게 때맞춰 제철 음식을 챙겨 먹게 된다고 할까? 올해 못 먹으면 내년에 먹으면 되지 뭘 그리 집착하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계절은 돌고 돌지만 영원하진 않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잡을 수도 되돌릴 수도 없기에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최선을 다하는 것 또한 나름 건강하게 삶을 영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순간을 만끽하고 기억하기 위해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다니고 맛있는 제철 음식을 찾아 먹으며 고단한 일상을 위로 받고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오늘도 나는 친구가 나눠준 얼갈이 열무김치를 야무지게 밥에 비벼 먹는다. 언제나 잘 챙겨주는 고마운 친구의 마음이 제철 음식만큼 귀하고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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