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흘리 아이와 대치동 아이
06/21/21  

몇 가지 해결할 일이 있어 14박 15일의 격리생활을 감수하면서 한국을 찾았다. 격리생활을 끝내자마자 하나둘 볼일을 보면서 가끔 친구들을 만나고 있다. 다섯 사람 이상 모이는 것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어 늘 서너 사람이 만나 식사하면서 사는 얘기를 나누며 지내고 있다. 

  

지난 월요일, 제주도 와흘리에 사는 친구가 모처럼 상경했다고 연락이 와서 또 다른 친구도 불러내어 셋이 점심 식사를 함께했다. 아들네 식구들과 같이 지내고 있다는 제주도 친구는 오전에는 근처 휴양림이나 오름, 제주 올레길, 한라산 둘레길 등을 걷고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로 가서 손자를 픽업하고 있다고 했다. 5학년인 손자는 정규 수업을 마치고 방과후 교실에서 각종 특별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 주일에 한 번은 검도를 하러 검도체육관에 가고, 다른 하루는 승마를 하러 승마장에 다닌다. 이 또한 학교 특별활동 과정이기 때문에 따로 돈을 낼 필요가 없다고 했다. 참 좋은 교육환경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 친구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수도권 어느 도시에 살고 있는 친구가 입을 열었다. 자기 부인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손자를 봐주기 위해 주중에는 딸네 집에서 지내고 주말에 왔다가 일요일 저녁에 다시 딸네 집으로 간다면서 어젯밤에도 부인을 전철역까지 바래다주고 오면서 답답한 마음에 공원에서 한바탕 뛰었다고 했다. 

  

딸과 사위가 맞벌이를 하고 있어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한데 할머니보다 좋은 사람이 어디 있냐고 했다. 그래서 주중에는 친구 혼자 생활하고 있다며, 더 이상 이렇게 주말부부로 살기 힘들어 지금 살고 있는 수도권 지역의 아파트를 팔고 딸네 집 근처에 빌라를 샀다며 7월에 이사할 예정이라고 했다. 친구는 7월부터는 부인이 아침저녁 딸네 집으로 출퇴근이 가능하다며 기뻐했다. 딸이 어디 사냐고 물으니 대치동에 산다고 했다. 딸은 대치동 아파트를 매입했으나 바로 입주할 형편이 되지 않아 전세를 놓고 전세금 받은 돈으로 근처의 작은 빌라에 세 들어 살고 있다고 했다. 아이를 대치동에 있는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했고, 온 가족이 생고생을 하며 살고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대치동 손자는 학원을 7개나 다니고 있다고 했다. 아니 초등학교 1학년짜리가 무슨 학원을 그렇게 많이 다니냐고 물으니 국어, 영어, 수학, 논술에다 3과목을 더 배우고 있다고 했다. 특히 영어 학원의 경우는 시험까지 치르고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손자를 영어 학원에 입학시키기 위해 영어교사였던 친구가 지도했고, 또 친할머니도 영어교사로 은퇴한 분이라 외할아버지와 친할머니가 지도해 왔으며 그리해서 학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했다. 그 영어 학원 그룹에 끼지 못하면 다른 학생들에게 처지는 거라고 했다.

  

은행원인 딸과 회사원인 사위가 버는 수입으로는 생활비와 아이 과외비 대기에 바빠서 따로 아이를 돌볼 사람을 고용할 형편이 안 되어 외할머니가 입주해서 아이를 돌보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럼 딸로부터 어느 정도 수고비를 받는가 물으니 딸이 아직 그럴만한 여유가 없어서 일원 한 장 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두 아이가 똑 같은 2021년을 살면서 엄청나게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태권도를 여러 해 익혀 2단인 초등학교 5학년 제주도 손자는 한라산 중턱 마을의 한 분교에 다니며 특별활동으로 승마와 검도를 배우고 있으며,  학원 근처에도 가지 않고 있다. 이제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대치동 손자는 국영수와 논술 등을 포함한 7개의 학원에 다니고 있으니 달라도 한참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서울과 제주에서 각각 다른 모습으로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의 삶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다. 부모가 선택한 삶의 환경에 따른 것이다. 한 부모는 자식을 명문 학군에 있는 학교에 보내기 위해 자신의 집을 세 놓고 전세살이를 불사했으며, 제주살이를 선택한 다른 부모는 자녀를 한라산 중산간 마을에 있는 분교에 보내고 있다. 두 아이는 선명하게 대비되는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다.

  

두 아이의 삶을 보면서 어떤 것이 그 나이에 겪어야 하는 삶의 모습으로 더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답을 내릴 수 없다. 그리고 두 아이가 자신이 처한 현재의 환경과 삶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도 알 길은 없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겪고 있는 삶이 결국 그들이 미래에 누려야할 더 행복한 삶의 바탕이 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과연 전혀 다른 모습으로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있는 두 아이가 성인이 되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자못 궁금하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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