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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클럽
04/23/18  
교황의 미국 방문으로 전 세계가 떠들썩할 때 중학교 동창생들의 방문으로 남가주도 소란스러웠다. 한국에서 오고 샌크라멘토에서 오고 캐나다에서도 왔다. 동창생 집에 묵으며 멕시코에도 다녀오고 LA와 샌디에고 등을 유람하다 돌아갔다. 그들과 하루 저녁 식사를 하며 함께 어울렸다.
 
 
친구들 집이 있던 문화촌, 성북동, 쌍문동 등지에 몰려다니며 놀던 얘기, 눈이 엄청나게 오던 날 행주산성으로 야영 갔던 얘기, 학교 선생님들 얘기, 악동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한 친구가 말했다. 자기들이 촛불클럽 멤버였다고. 그런 클럽이 있었냐고 묻자 선생님들이 붙여준 것이라며 그 유명한 클럽을 모르냐고 되물었다. 요약하면 악동들 다섯이 모여 촛불을 켜놓고 쌍문동 배추밭에서 화투놀이를 했다. 말이 화투놀이이지 학생들로서는 거액의 현금을 주고받는 도박판을 벌였다. 이 사실을 학교에서 알게 되어 유기정학을 받았다. 그때 함께 모여 놀던 아이들을 선생님들이 촛불클럽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한 학년이 6학급밖에 되지 않는 작은 학교에서 다섯 명이 유기정학을 받았던 꽤 큰 사건이었다. 어찌 잊는단 말인가. 단지 필자에게는‘배추밭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었을 뿐이다. 배추밭 사건을 얘기하며 한바탕 웃음꽃을 피운 뒤에 촛불클럽 멤버 다섯 중에 빠진 한 친구는 왜 오지 않았는가 물었다. 친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친구의 근황을 상세히 알려주었다. 한때 사업이 잘 되어 돈도 꽤 많이 벌었던 친구가 일을 뒷전으로 하고 도박에 빠져 많은 돈을 잃고 사업체까지 말아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차라리 묻지 말 것을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버릇 못 버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도박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 주위에서 가끔 보기도 하고 듣기도 했지만 중학교 동창생이 그 중에 한 명이라니 마음이 아팠다.
 
 
필자는 화투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촛불클럽에 끼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필자도 그때 화투를 치고 있었다. 도리짓고땡을 담임선생님 댁에서 쳤다. 선생님이 따면 호떡을 사다 먹었고 우리들이 따면 그냥 갖는 식이었을 뿐, 노름판의 형식은 갖추고 있었다. 액수는 작았지만 돈을 주고받았으니까.
 
 
배추밭 사건 얘기 도중에 이 기억이 떠올랐지만 입을 굳게 다물었다. 거의 반세기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정학 받은 입장에서 보면 판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선생님과 쳤다고 처벌 받지 않았다니 속이 상할 것이고, 형평성에도 위배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교직생활을 할 때도 화투 때문에 학교가 발칵 뒤집어진 적이 있었다. 숙직을 하면서 화투를 좋아하는 교사들이 모여서 밤새도록 화투를 쳤다. 그 교사들 부인중에 한 분이 학교에 신고를 한 것이다. 집에도 안 들어오고 학교에서 며칠째 근무하고 있다며 어떻게 된 일이냐고. 해당 교사들이 경위서를 쓰고 징계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그 중에 한 분이 경마에 빠져 50도 되기 전에 교직을 그만두고 퇴직금을 고스란히 경마장에 갖다 바쳤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장인을 모시고 리노에 간 적이 있다. 노인회에서 대절한 버스를 타고 갔다. 젊은 사람은 필자 한 사람 밖에 없었다. 가는 버스 안에서 금일봉을 드리면서 재미나게 노시라고 했다. 그러자 장인은 큰 소리로 말했다.“나는 거기 가도 노름은 안 해. 그냥 바람 쐬러 가는 거야. 그리고 내게도 돈이 있어. 자네 내가 좀 보태줄까?”내민 봉투를 슬며시 안주머니에 넣으며 민망해 하고 있는데 말씀을 덧붙였다.“내가 한 때는 잘나가는 타자였지. 그러나 결국은 쫄딱 망해 가족들 평생 고생시키지 않았는가. 그 후로 절대로 도박은 하지 않아.”
 
 
장인의 이야기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개성상인의 아들이었던 당신이 종로 한 동네에 싸전을 열었으며 제법 돈벌이도 괜찮았는데 그만 도박에 빠져 다 날렸다는 이야기였다. 도박이 무섭긴 무서운 병인가 보다.
 
 
최근 LA 올림픽 길에 정차해 놓고 근교 도박장으로 사람들을 태우고 가던 버스들을 단속한다는 뉴스를 들었다. 노인들이 웰페어를 다 날리고 힘들게 살고 있기에 이들을 태우고 갈 버스를 원천봉쇄하겠다는 LAPD의 발표도 있었다.
 
 
그러나 도박에 빠진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도박장으로 향한다. 문제는 버스가 아니라 그들이 즐겁게 여가를 보낼 수 있는 놀이문화를 보급하고 계도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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