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06/28/21  

요즘 매일 비가 내렸다. 여름에 매일같이 비가 오면 흔히 장마라고 생각하는데 장마가 아니라고 한다. 국지성 호우였다. 해가 쨍쨍하다가 별안간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지는데 동남아에서나 만날 법한 스콜 현상과 매우 흡사하다. 장마처럼 하루 종일 며칠 내내 비가 오는 것이 아니고 소나기가 내렸다가 개었다가를 몇 차례 반복하는 식이다.

 

요 며칠 비가 쏟아지는 순간 이틀 연속 나는 밖에 있었다. 하루는 SNS로만 가끔 소식을 전하던 분을 처음으로 만났다. 내가 브런치에 올린 글을 읽고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통해 처음 연락을 주셨는데 인근에 살고 계셔서 언제 한번 함께 걷고 차 한잔 하자고 약속했던 터였다. 맛있는 점심을 사주셔서 배불리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공원을 산책하던 중 갑자기 두두둑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늘을 보니 아뿔싸 벌써 파랗던 하늘은 시커먼 구름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1-2 분도 채 되지 않아 천둥까지 동반하며 삽시간에 폭우가 쏟아졌다. 공원 산책로에 있었기에 마땅히 비를 피할 장소도 없어 나무들을 우산 삼아 이동해야만 했고 주차장까지 걸어오는데 결국 홀딱 젖고야 말았다. 오늘 일기예보에서 늦은 오후에 비 올 확률이 40%라고 했지만 하늘이 너무 화창해 우산을 챙길 생각도 못하고 집을 나선 것이 화근이었다. 첫 만남이었는데 소나기 속에서 정신없이 아쉬운 작별을 청해야만 했다. 

 

그 다음 날은 큰 이모부의 발인이었다. 지난주 엄마 동기간들 모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참석하셨다는 여든여섯의 이모부는 그 다음 날 갑자기 가슴 통증과 호흡 곤란을 호소하셨고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폐가 손을 쓸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망가져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틀 만에 폐렴으로 숨을 거두셨다. 갑작스러운 이별에 큰 이모는 슬픔보다 분노와 원망이 더 크신 듯했다. 유족들의 마음과 달리 고즈넉하고 평온하던 장지에 고인을 모시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바로 조금 전까지 내리쬐는 뙤약볕에 작은 그늘을 만들어주던 양산이 고맙기만 했는데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았다. 자동차 와이퍼는 미친 듯이 바삐 움직였지만 선명한 시야를 확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도로에 물이 차면서 차선이 잘 보이지 않자 앞차들의 움직임도 불안해졌다. 나도 운전 경력 20년이 훌쩍 넘지만 비가 잘 오지 않는 캘리포니아 출신 드라이버라 폭우 속 운전은 다소 긴장이 되었는지 이날은 집에 돌아와 일찌감치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아들의 장례가 진행되던 작년 여름에도 참 많은 비가 내렸다. 정작 나는 내내 실내에 있어 비 맞을 일이 없었지만 비에 홀딱 젖어 들어오는 조문객들을 볼 때마다 몸들 바를 모르게 죄송한 마음이었다. 그때도 비가 쏟아지다 말다를 반복했었는지 우산을 두고 간 조문객이 몇 명 있었다. 누구의 우산인지 몰라 연락이 오길 기다리며 보관하고 있었는데 아마 앞으로도 연락이 안 오지 싶다. “저 그때 장례식장에 우산을 두고 갔는데요.”하고 연락하기 아무래도 민망할 테니깐……(그래도 혹시 연락하신다면 제가 밥도 사고 차도 사고 우산도 돌려드릴게요).

 

우리네 인생에도 예기치 못한 소나기가 들이닥치는 순간이 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이라 생각하면 아등바등 고단한 삶이 허무해지기도 하고 으스대며 살았던 순간이 겸손해지기도 한다. 소나기를 기다리며 사는 사람은 없다. 우리 인생에 우산도 없이 마주하는 갑작스러운 소나기는 감당하기 힘든 시련을 건네주기도 한다. 아니, 우산을 준비했다 한들 쏟아지는 폭우 아래서 솔직히 우산도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 아무리 애를 써도 속수무책으로 젖어드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순간인 것이다. 하지만 소나기는 소나기다.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던 비가 멈추고 순식간에 구름을 비집고 태양이 고개를 내밀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이 젖은 몸을 털어내며 가던 길을 재촉할 것이다. '다음번엔 일기 예보를 더 꼼꼼히 챙겨야지, 우산도 잊지 말아야지.'하고 부질없는 다짐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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