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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04/23/18  
나이 들수록 친구 사귀기 어렵다고 말한다. 어려서는 마음의 문이 활짝 열려 있기에 누구와도 곧 친구가 될 수 있었으나 살면서 여러 경험들에 의해 형성된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마음의 문이 점점 닫히기 때문이다. 친구 없이 나이 들어 버리면 소외와 고독 속에 혼자 남겨지게 된다. 쓸쓸한 여생이리라. 갈수록 친구 사귀기가 어려우리라는 생각을 하면 지금 있는 친구들이 얼마나 귀한지 모른다.
 
 
40대 후반에 한 친구를 만났다. 친구와는 산에 다니면서 가까워졌다. 일 년쯤 지나서는 의기가 투합하여 수련을 함께 하기도 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나 심신을 다스리는 공부를 했다. 주로 친구가 평생 동안 갈고 닦아온 자신의 수련 방법을 전수했으며, 산속의 일본 절을 방문하기도 하고 틱 낫한 스님이 세운 에스콘디도 디어파크(녹야원)에서 숙식을 하며 마음수련을 받기도 했다. 친구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프랑스의 플럼 빌리지로 틱 낫한 스님을 찾아가 그곳에서도 수련을 했다. 깨달음의 길을 찾아 정진한 것이다. 그러나 친구는 그때까지 깨닫지 못했다고 했다.
 
 
친구는 오십대 중반에 예수를 만났다. 이 세상에 단 한 사람 완전히 깨달은 사람이 예수라는 것을 믿고 신학교에 입학했다. 60이 되던 해에 목사가 되었다. 교회를 짓고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그즈음 투병 생활을 하는 한 친구를 그에게 소개했다.
 
 
이 친구는 초등학교 6학년 때 한 반이었다. 맨 뒤에 앉아 있었던 친구다. 별로 말이 없었고 함께 어울린 적도 없는 친구다. 그러나 미국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한 눈에 알아보았다. 친구는 6학년 2학기에 전학 와서 단 6개월 밖에 다니지 않았는데 어떻게 자기를 기억하냐며 깜짝 놀랐다. 초등학교 동창생이기는 하지만 단 한 번도 말을 섞거나 어울린 적이 없었으니 생판 남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리라. 우린 가끔 만났고, 때때로 소식을 주고받았다. 그 친구가 지난해 백혈병이 발병하여 투병 생활을 시작했다.
 
 
목사님은 투병 중인 친구를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친구는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간간이 소식을 전해왔다. 발병한 지 일 년이 되어가는 2주 전에 친구가 항암치료를 다 끝냈다며 만나자고 했다. 다소 살이 빠지기는 했지만 건강한 모습이어서 기뻤다
 
 
친구는“소개해 준 목사님의 기도가 자신의 병을 낫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지금 그 교회에 다니냐고 물으니 처음 만난 그 후로 한 번도 간 적이 없다고 했다. 본래 자기가 다니던 교회에 계속 나가는데 그 목사님의 기도 덕분에 자기가 나았다고 믿는다는 것이었다.
 
 
며칠 후에 두 사람을 점심에 초대했다. 목사님은 친구를 만난 후로 아침기도 때마다 그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해 왔다고 했다. 친구는‘자신도 목사님 기도의 힘을 느끼고 있다’며“언제 기회가 되면 목사님이 드리는 예배에 참석하여 헌금찬송을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목사님은 기꺼이 허락했다.
 
 
지난 일요일, 추석이 바로 그날이었다.
 
 
예배 끝난 후에 나눠 먹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하게 떡을 맞춰 교회로 갔다. 친구는 부인과 함께 이미 와 있었다. 설교가 끝나고 드디어 친구부부가 헌금찬송을 불렀다. 친구는 기타를 치면서 화음을 넣었고 부인이 노래했다. 뜻 깊은 찬송이었다. 병으로 고생할 때 목사님의 기도가 준 힘을 느끼며 그 힘으로 병을 이겼노라고 힘차게 찬송하는 두 사람을 감동스럽게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나이 들어 만난 두 친구가 삶 속에서 정신과 육체의 가는 길을 동행해 준다는 깨달음에 감사했다. 내면을 수련하며 같이 정진하던 친구는 목사님이 되어 영혼을 인도하고 있고, 나이 들어 병을 얻었지만 믿음을 가지고 투병한 친구는 이제 병이 나아 감사의 찬송을 드리고 있었다. 다른 것 같지만 결국엔 같은 그 길을 두 친구는 다른 방향에서 함께 걷고 있었던 것이다. 귀하고 소중한 관계이다.
 
 
친구들은 삶의 여러 갈래 길을 함께 가 준다. 즐거운 길은 웃으며 가고 슬픈 길은 위로하며 가다가 결국 마지막 길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게 된다. 모르는 길을 안내하는 친구도 있고 잘못 된 길을 바로 잡아 주는 친구도 있다. 마음만 활짝 연다면 어느 길이든 항상 동행할 친구가 있다.
나이 들어 친구 사귀기가 힘들다는 말을 하기 전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다시 둘러봐야겠다. 이미 많은 친구가 있는데 마음에 빗장을 채워놓고 있지는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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