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돌
07/06/21  

제주도를 삼다도라 부른다. 돌, 바람, 여자가 많다고 하여 붙여진 별칭이다.

 

6월 한 달을 제주도에 머물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바람과 여자는 잘 모르겠는데 돌은 정말 많았다. 공항에 내려서부터 산과 바다, 마을과 마을, 도시 구석구석 그 어디를 가도 눈에 띄는 것이 바로 구멍이 송송 뚫린 돌이었다. 무심코 지나치면 그냥 한낱 돌멩이, 돌덩이에 지나지 않지만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생활 속에 사용하고 있는지 알고 보면 여행이 더 재미있어지고, 무엇보다도 제주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여 이곳저곳의 돌, 특히 돌담들을 유심히 보았다.

 

제주도의 돌은 현무암이다. 현무암은 지표 가까이에서 용암이 빠르게 굳어지면서 생긴 암석으로 화성암에 속하며, 화성암은 화산과 마그마의 활동으로 만들어진 암석이다. 현무암은 검은색 혹은 회색이며 알갱이의 크기가 매우 작다. 표면은 매우 거칠고, 크고 작은 구멍이 있다. 이 구멍은 화산이 분출할 때 가스 성분이 빠져나간 자리다. 즉, 현무암은 마그마가 지표로 흘러나와 빠르게 굳어져서 만들어지는데 이때 가스가 빠져나간 자리가 메워지기 전에 굳어 버리기 때문에 구멍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돌이 지천에 널려 있다 보니 상당히 많은 영역에서 돌이 사용된다. 우선 절구나 맷돌 등의 생활도구로 이용했고, 집을 짓는데도 사용했다. 또 제주도 대부분의 집들은 담을 벽돌이나 블록으로 쌓지 않고 이 돌로 쌓았다. 특히 언제 어디서나 돌을 접할 수 있고 다른 돌보다 가벼워 쉽게 들거나 다듬을 수 있다 보니 대부분의 남자들이 직접 돌을 만지는 일을 하게 되어 '제주도 여자의 자존심은 해녀이고, 제주도 남자의 자존심은 돌챙이(돌쟁이의 제주도 방언)'라는 말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돌챙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제주도 담들에 대해 살펴보면 제주도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집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서 집둘레에 쌓아 놓은 담을 집담이라고 한다. 그리고 담을 쌓는 방법에 따라 외담과 겹담으로 나뉜다. 외담은 한 줄로 쌓는 것이고, 겹담은 두 줄로 쌓는 것이다. 집 입구에서 대문(정낭)까지 길을 올레길이라고 한다. 즉 집으로 들어가는 작은 길이 올레길이다. 따라서 집에서 나와 대문까지 이어지는 돌담을 올레담이라고 한다. 우리가 요즈음 많이 사용하는 올레길이 바로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밭의 경계를 이루는 담을 밭담이라고 한다. 제주 올레길을 걷거나 제주도 곳곳을 자동차를 타고 가다 보면 밭담을 많이 볼 수 있다. 밭의 경계를 목적으로 밭담을 쌓은 것이 아니라 소나 말이 뛰어 넘나들지 못하게 하려고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또, 돌을 쌓아놓고 필요할 때 사용하려고 만들었던 창고를 잣벽이라고 부른다.

 

제주도에서는 돌을 이용해서 물고기를 잡기도 했다. 돌로 담을 쌓아 놓고 밀물일 때 들어온 고기가 썰물 때 담에 막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했는데 이런 고기잡이를 위해 만든 담을 원담이라고 했다. 한림읍 금능리에 가면 원담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원담축제' 기간에는 원담을 이용한 고기잡이를 직접 체험할 수도 있다.

 

제주는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을 많이 쌓았는데 이런 성의 벽을 성담이라고 한다. 또 바닷가에서 바람과 파도를 막기 위해 쌓아 놓은 담을 개경담이라고 하고, 산소를 보호하기 위해 쌓아 놓은 담을 산담이라고 한다. 제주도 사람들은 산소를 밭에다 모시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밭 귀퉁이나 한가운데 산소가 있고 그 산소 둘레에 돌담이 쳐있기도 하다.

 

제주도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어 돌담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무너지지 않는다'가 답이다. 왜냐하면 그 쌓는 방식 때문이다. 외담은 바람이 솔솔 빠져 나가게 얼기설기 쌓아 놓았기 때문에 물리적 힘을 가하지 않는 한 태풍에도 잘 쓰러지지 않는다. 또 밭담을 잘 보면 직선으로 쌓지 않고 곡선으로 쌓아 놓았기 때문에 바람으로부터 직접적인 압력을 수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구멍이 뚫려있는 현무암의 특성으로 인해 바람과 맞부딪히지 않고 바람을 받아들임으로써 견디어 낸다. 거센 바람으로부터 목숨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돌들이 그 바람의 일부를 받아들여 더 튼튼한 담장이 되는 것이다. 이런 제주도의 돌은 제주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을 대변하고 있어 보인다.

 

제주도는 12세기 고려에 의해 현으로 편입되기 전까지 탐라국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 왜(倭)와 독자적으로 교류하였고 15세기 초 조선 태종 때에 조선에 완전하게 병합되었다. 하지만 제주민들은 정복자의 문화에 완전하게 흡수, 동화되지 않았다. 밀려드는 외래문화에 굴복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외래문화 가운데 막아낼 것은 막아내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 오늘날 제주 고유의 특성 있는 문화와 언어로 발전시키고 제주민만의 고유한 정신을 지켜왔다.

 

구멍이 송송 뚫리고 가벼워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은 제주의 돌이지만 그것들이 모이면 '저항과 수용'으로 거친 바람 앞에서도 끄떡하지 않는 담장이 된다. 오늘의 제주는 그런 돌을 닮은 제주 사람들의 얼굴이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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