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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어해장국
04/23/18  
출근길에 있는‘타운뉴스’가판대들을 매일 아침 살펴본다. 신문이 부족하면 채워 놓고 지나치게 많은 듯하면 빼내어 다른 곳에다 옮겨 놓는다. 어느 식당 앞 가판대에 신문을 채우며 식당 안을 들여다보니 손님이 한 사람도 없다. 어차피 아침밥을 먹어야 한다. 조용히 한 그릇 먹기로 했다.
 
 
식당에 들어갔다. 주인인지 종업원인지 아주머니 한 분이 들어오는 사람을 빤히 쳐다본다. 들어오는 손님에게 인사를 하지 않고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니 의아했다. 앉으면서 한 마디 했다.“손님이 들어오는데 반갑지 않으신가 봐요.”‘매일 아침 가게 앞 가판대에 신문을 갖다 놓고 가는 분이라 무슨 일 때문에 들어오는지 몰라서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희한한 대답이다. 밥을 먹던 먹지 않던 자기 집에 들어오는 사람이면 무조건 손님 아닌가. 신문 배달하는 사람이니까 틀림없이 아쉬운 소리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무어라 하는지 지켜보려고 그랬다는 얘긴데.
 
 
북어해장국을 시켰다. 주문을 받은 아주머니는 계산대 뒤로 가서 계속 탁탁, 덜그럭 덜그럭 소리를 내고 있다. 소리 안 내고 할 수도 있는 일을 일부러 내는 것처럼 들린다. 자신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가 보다. 일을 마쳤는지 그제야 주방 쪽을 보고 주문을 한다.“북어해장국 하나요.”주문 먼저 해도 될 것을 제 할일 다하고 주문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방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나왔다. TV를 보면서 두 사람이 큰 소리로 웃고 떠든다. 손님은 안중에도 없다.
 
 
북엇국이 나왔다. 맛있게 먹기로 한다. 음식을 먹고 있는 동안 아주머니는 TV를 보면서 박스를 뜯고 있었다. 투고 음식 담을 비닐봉지 밑에 편편하게 깔 박스 조각을 준비하는가보다. 박스 찢는 소리가 신경 쓰인다. 무슨 일이든 소리를 내면서 일하는 것을 즐기는 분인가 보다. 소리를 덜 내고 자를 수도 있고 손님이 간 다음에 해도 될 일인데.
 
 
한국 음식점들이 근처에 여러 곳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식당들은 아침을 하지 않는다. 점심과 저녁 장사 위주이다. 아침을 먹기 위해 회사를 지나쳐서 가든그로브까지 내려가지 않아도 되고 마침 손님도 없어 한 그릇 팔아주려는 마음으로 들어온 사람에게 아주머니가 보여준 태도는 무례에 가까운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이 식당만이 아니다. 얼마 전 세리토스의 한 식당에서도 비슷한 대접을 받았다. 식당에 들어서는데 계산대에 앉아 있는 화장을 짙게 한 아주머니가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가는 개 쳐다보듯이 하는 것이었다. 그냥 돌아서 나오고 싶었지만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었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식사하는 내내 유쾌하지 못했다. 그 식당의 종업원들 태도도 주인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자세는‘식당에서 일한다고 우습게보지 말라. 나도 당신들 못지않게 배울 만큼 배웠고 잘 살고 있다. 단지 돈 벌기 위해 여기서 일하고 있으니까 허튼짓 하지 마라’는 듯 보였다. 이런 태도로 일하면 본인도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 그날 그 식당에 있는 동안 서너 테이블의 손님만이 왔을 뿐이다. 장사가 안 되니까 종업원들 태도가 그런 것인지, 아니면 종업원들이 그러니까 손님들이 오지 않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장사는 안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정을 방문할 때, 집집마다 주는 느낌이 다르듯이 식당도 제 각각의 특색을 보여준다. 냄새도, 분위기도, 종업원이나 주인의 태도도.
 
 
가끔 들르는 어느 식당의 종업원들은 언제나 손님을 반갑게 맞이한다. 아무리 바빠도 모든 종업원들이 손님을 웃으면서 맞이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하다. 밥상에 밑반찬이 부족하면 종업원들이 알아서 채워준다.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도 손님이 불편하지 않도록 공손하게 한다. 그 식당에서 밥 한 그릇 먹고 나오면 배만 부른 것이 아니라 마음도 푸근해진다.
 
 
손님에게 음식을 파는 것이 식당일의 전부가 아니다. 정성껏 음식을 만들고 맛있게 조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손님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즐겁게 식사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일이다.
 
 
손님이 단 한 사람밖에 없었는데 그 사람이 편하게 먹지 못하고 각종 소리에 시달리고 신경을 쓰면서 식사하도록 한 것은 어찌 보면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식당 업주나 종업원으로서 기본자세에도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인사한다고 내 체면이 구기고 내 인격이 손상되는 것도 아니다.
 
 
음식은 감사한 마음으로 먹어야 한다. 북어해장국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나왔다. 팁은 평소보다 배로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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