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07/12/21  

한 동안 소식이 뜸했던 친구와 연락이 닿았다. 대학 졸업 후 평생을 언론사 기자로 일하다 은퇴한 친구는 하루도 쉬지 않고 서울 시내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며 사진을 찍는 다면서 경복궁 매표소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에겐 경복궁에서 찍은 빛바랜 흑백 사진이 한 장 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와 함께 찍은 손바닥 반만한 크기의 작은 사진이다. 내 옷차림으로 보아 초등학교 1학년 가을에 찍은 사진인 듯하다. 자리를 펴고 앉은 사람들 뒤로 경회루가 보인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이 사진 한 장이 어릴 적부터 경복궁을 친숙한 곳으로 느끼게 해주었었다. 그런 내 사진에 관해 얘기한 적도 없는데 친구는 덕수궁도 아니고, 창경궁, 창덕궁, 경희궁도 아닌 경복궁에서 만나자고 했다. 친구와 약속을 한 뒤 경복궁에 대해 공부했다.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고 태조 이성계가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이 경복궁을 짓는 일이었다. ‘경복(景福)’은 시경에 나오는 말로 왕과 그 자손, 온 백성들이 태평성대의 큰 복을 누리기를 축원한다는 의미다. 경복궁은 1395년(태조 4년), 5대 궁궐 중 가장 먼저 창건됐지만 이곳에 왕들이 머문 기간은 1405년(태종 5년) 지어진 일종의 별궁인 창덕궁(昌德宮)에 비해 훨씬 짧았다. 경복궁에는 세종·문종·단종이 주로 기거했으며, 왕자의 난으로 인한 개성 천도 기간에는 빈 궁궐이었다. 왕위를 빼앗은 세조는 경복궁에 머무는 것이 편치 않았던지 창덕궁에 기거했다. 따라서 고종이 복원하기 전까지 경복궁은 임금이 살지 않는 이름만 궁궐이었다.

 

경복궁 내부는 정문인 광화문으로부터 홍례문과 근정문과 향오문을 일직선으로 배치했다. 이 사이 공간은 정사를 보고 의식을 행하는 업무공간이었다. 향오문 뒤에는 임금의 침전과 왕비와 후궁, 궁녀 등의 침소를 비롯한 제반시설이 자리한 후원이 자리잡고 있다. 여러 차례 화재가 있었고, 이에 대한 복구가 거듭되었으며 임진왜란으로 인해 모든 건물이 불탄 후 270여 년간은 폐허상태로 있다가 1865년(고종 2년) 대규모 재건공사가 시작되었다. 1868년 고종이 이곳으로 옮겨왔으나, 1876년에 일어난 대규모 화재로 다시 창덕궁으로 옮겼다가 1888년 재차 옮기는 등 여러 차례 피해와 복구가 거듭되었다. 1904년 이곳에 통감부가 들어섰고, 조선총독부 건물을 건립하면서 본래 모습을 완전히 잃었다가 1996년 12월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한 후 일부를 복원하였고, 아직도 복원 공사는 진행 중이다. 경복궁 내에는 근정전(국보 제223호), 경회루(국보 제224호) 등의 국보급 건축물과 , 자경전(보물 제809호), 자경전 십장생 굴뚝(보물 제810호), 아미산 굴뚝(보물 제811호) 등, 보물급 건축물과 석조문화재 등이 자리잡고 있다.

 

경복궁 이곳저곳을 걸으며 친구는 조선의 역사를 이야기 했다. 경복궁은 조선의 흥망성쇠, 조선의 역사 그 자체이다. 특히 친구가 을미사변을 이야기할 때에는 비분강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을미사변은 1895년 10월 8일,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이른다. 당시 일본군은 한밤중에 경복궁 내 명성황후의 침소였던 건청궁을 기습해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그 앞의 공터에서 불에 태워 죽였다. 일제는 명성왕후 시해 책임을 흥선대원군과 조선인 훈련대에 돌렸으며, 이후 약 100여 년간 이런 주장을 펼쳤으나 2005년 을미사변의 실체가 담긴 일본 측 문서가 공개되면서 그들의 만행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강대국들의 세력다툼 틈바구니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약소국 조선이 겪어야 했던 설움이 느껴지면서 저절로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경복궁을 나와 근처 식당에서 곰탕을 한 그릇 시켜 먹으며 막걸리를 한 잔 마셨다. 식사를 하면 막걸리가 무제한 공짜라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TV에서는 2021년 국력이 강한 나라 순위를 전하고 있었다. 미국, 중국, 러시아, 독일, 영국, 일본, 프랑스에 이어 대한민국이 8위라고 했다. 이 조사는 펜실베니아 대학 Wharton School과 몇몇 기관들이 협력하여 세계 78개국에서 17,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각 나라의 인구, 'GDP', 'GDP PC, PPP'에 근거한 것이다. 또, 미국의 군사력 평가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GFP)'의 발표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군사력은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일본 다음으로 6위라고 했다.

 

한국의 문화재청은 현재 경복궁 내 경회루를 비롯한 일부 건물들을 역사적 고증에 입각해서 복구 내지는 복원하기 위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2021년 대한민국의 위상처럼 경복궁이 아름답고 웅장한 조선의 궁궐로 거듭나기를 기원한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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