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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대한민국
08/02/21  

대한민국이 불볕더위로 불타고 있다. 7월초에 장마가 몰려온다며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던 일기예보는 완전한 오보였다. 8월이 되도록 장마는커녕 지나가는 비조차 한 방울 떨어지지 않고 있다.

 

하루 종일 34도-35도를 넘나들어 에어컨을 틀고 선풍기를 껴안고 있어도 온몸이 땀에 젖어 있다. 한밤중에도 30도를 오르내리는 열대야가 계속되어 자다 일어나 찬물 샤워를 한바탕 하지 않고는 못 견딜 정도다. 그러나 물이 생각만큼 차지 않아 달궈진 몸은 식지 않는다.

 

이렇게 뜨거운 날씨가 낮밤을 가리지 않고 계속  되는 가운데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선 여야 후보자들간의 아군, 적군을 가리지 않는 상호 비방은 더위를 한층 더해주고 있다. 각 정당의 후보로 선출되기 위한 출마자들간의 비방전이 역겹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제 20대 대통령 선거일이 이제 불과 7개월밖에 남지 않았으니 앞으로 점점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그 열기가 식지는 않으리라 본다. 

 

상대 후보들을 정치적 경쟁자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죽여서 없애버려야 할 악마나 사탄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같은 정당, 같은 진영의 사람들끼리도 서로 경쟁자가 되는 순간, 입만 열면 상대의 잘못과 그릇된 행동에 대해 나팔을 불어댄다. 사실 여부를 차치하고 일단 소문을 내고 본다. 아니면 말고식의 홍보다. 서로가 서로를 물고 늘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그런 식의 홍보(?)와 비난이 선거판을 좌지우지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후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더라도 이미 선거는 끝난 뒤라 어찌할 수 없었다. 무조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고 보자는 막무가내식 전략전술이 먹히는 시대인 것이다. 워낙 빠르게 홍보되고 전달되는 시대다 보니 한번 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순식간에 전 세계로 알려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지지하는 사람이면 온전하지 않고 비이성적 사람일지라도 치켜올려 세우는 일이 허다하다. 아무리 바르고 옳은 사람일지라도 자기가 지지하는 사람이 아니면 그는 거짓을 일삼는 사람이며,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가짜라고 모함하여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있다.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각종 SNS를 통해 그릇된 정보를 실어  나른다. 심지어 터무니없는 음해와 공작을 통해 후보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과 일가친척들의 문제까지 들춰내어 온 집안을 다 완전히 사회에서 매장시킬 듯이 달려들고 있다. 이런 행태가 만연하고 있는 것은 대다수의 국민들이 대통령 선거를 후보자들 간의 정책 경쟁으로 보지 않고, 개인의 인기나 흠집내기에 집중하다보니 지지하지 않는 후보들에 대한 비방과 험담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다산 정약용은 노인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6가지 좋은 점에 대해 노래했다. 민둥머리(대머리)가 좋다. 치아가 몽땅 빠져서 좋다. 붓 가는 대로 아무 글이나 마구 써도 부담이 없어서 좋다. 혹은 바둑의 상대가 상수냐 하수냐 구별하지 않고 누구와 두어도 이길 수 있어서 좋다는 등의  네  가지 주장에는 동조할 수 없지만 세 번째, 눈이 잘 안 보여서 좋고, 네 번째 귀가 어두워져  잘 안 들려서 좋다는 말에는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다. 바로 요즈음 같은 시절에는 잘 보이지 않는 눈과 잘 들리지 않는 귀가 필요하지 않은가 싶다.

 

그러나 오늘날 정약용이 살던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노인들의 건강이 좋아져서 문제다. 게다가 시력에 큰 도움을 주는 다초점 렌즈가 등장하고, 젊을 적 청력보다 더 크게 잘 들리는 보청기까지 있으니 예전 노인들이 겪지 않아도 좋을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봐야하고 듣고 싶지 않아도 들으며 살아야하는 불편을 겪게 생겼다.

 

볼썽사나운 모습, 짜증나는 소리를 원천 차단하고 안 보고, 안 들을 방법이 없으니 정말 답답하다. 귀를 막고 눈을 가릴 방법이 없다. 격조 높은 언어로 서로 존중하면서 정책을 제시하고, 국민들의 희망과 꿈이 실현될 수 있는 비전을 보여주는 후보자를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이미 현재 진행하고 있는 선거의 양태가 이 시대의 정형으로 자리매김하지 않았나 싶다.

 

이런 저런 이유로 가뜩이나 더운데 올림픽 열기까지 더해져 뜨거운 한 여름의 열기를 한층 더 달구고 있다. 펜싱 남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이나 혹은 지고 있던 경기를 연장 10회에서 역전시키고 이스라엘을 누른 한국 야구의 저력을 보면서 느끼는 감동보다 태권도나 유도 경기를 끝내고 승자와 패자가 서로를 얼싸 안고 축하해주고 위로해주는 광경이 보다 더 진한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선 후보자들이 상호비방을 그만 하고 선의의 경쟁을  펼쳐 그들의 보기 좋은 모습이 우리들의 더위를 씻어갔으면 좋겠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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