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보는 재미
08/02/21  

올림픽 경기가 한창이다. 본래 2020년에 열렸어야 하는 도쿄 올림픽은 코로나19로 말도 많고 탈도 많다가 결국 우여곡절 끝에 2021년 7월 그 막이 올랐다. 무관중에 마스크 착용, 불안과 걱정 속에 개최된 만큼 그냥 나는 의도적으로 관심조차 갖기 싫었다. 개회식이 열리던 밤도 온 가족이 TV 앞에 앉아있는데 나만 혼자 안방 침대에 누워있었다. 남편 손에 이끌려 TV 앞에 앉았지만 얼굴 표정부터 마음 구석구석까지 여전히 심드렁했다. 텅 빈 관중석에 마스크 쓴 선수들을 보고 있자니 이렇게까지 하면서 꼭 행사를 해야만 하나 싶기까지 했다. 

 

그런데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나는 돌변하고 말았다. 마치 오랫동안 손꼽아 올림픽을 기대하고 있었던 열성팬처럼 요즘 나는 올림픽 경기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 원래 나는 스포츠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평소 즐겨보는 스포츠도 없고 경기 규칙도 겨우 기본적인 것들만 습득한 수준이다. 하지만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고 대한민국의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경기에는 이상하리만큼 푹 빠져서 열광하는 편이다. 전에 없던 애국자가 되어 간절한 마음으로 승리를 기원하고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치며 응원하는 때도 오직 국가 간의 스포츠 경기가 있을 때인 것 같다. 

 

올림픽 같은 경우 모든 경기를 만사 제처 두고 일부러 챙겨보는 수준은 아니지만 막상 보기 시작하면 눈을 못 떼는 타입이랄까? 게다가 이번 올림픽은 옆 나라 일본에서 개최되어 시차가 없다 보니 실시간으로 바로 볼 수 있어서 얼마나 편리한지 모른다. 중요한 경기를 보기 위해 미리 알람을 맞춰놓고 새벽에 일어날 필요도 없고 올림픽 기간 동안 좀비처럼 눈밑 다크서클을 달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또 우리나라 선수들이 나의 기대보다 선전해주고 있어서 자랑스럽고 대견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다. 

 

예전 내가 어렸을 때 우리나라 대표 선수들은 외국 선수들에 비해 체격 자체가 굉장히 왜소했다. 그래서 체급이 정해져 있는 종목이나 복싱, 레슬링, 마라톤 같이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종목에서만 두각을 나타내곤 했었다. 그렇게 사활을 걸고 경기에 임했는데도 패하게 되면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훔치는 얼굴이 종종 스크린에 잡히곤 했는데 그 모습은 어린 내가 봐도 참 처량하고 불쌍해 보였다. 그런데 이제는 올림픽 경기를 보는 내내 '대한민국도 이제 살만한 나라가 되었구나. 선수들도 여유가 생겼구나. 덩치 큰 외국 선수들과 겨뤄도 전혀 위축되지 않는구나' 싶은 것이 국가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깨닫는다. 일단 보기에도 세계 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체격이나 실력이 정말 대등해졌다. 30여 년 전 국가 경기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죽을힘을 다해 가까스로 이기는 것 같았다면 이제는 월등히 경기를 리드해 나가는 느낌이랄까? 

 

특히 이번 올림픽에서 나는 태권도 종목 이다빈 선수에게 유독 눈길이 갔는데 여자 67kg 초과급 결승전에서 이다빈은 세르비아 선수에게 지며 은메달을 획득했다. 아쉬움이 말도 못 했을 텐데 경기에서 패하자마자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승자를 향해 엄지를 들어 올리며 축하를 건넸다. 경기 끝에 승자가 패자의 어깨를 토닥이거나 미소를 건네는 모습은 자주 볼 수 있었지만 이렇게 눈부신 패자의 품격을 보는 것은 거의 처음이어서 완전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쉽게 패한 후 돌아서는 그녀의 뒷모습이 조금도 불쌍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번 올림픽 스타로 떠오른 수영 괴물 황선우 선수의 눈부신 활약도 눈에 띄었다.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수영 역사를 새로 쓴 그가 금메달을 획득한 미국 선수와 겹쳐서 화면에 잡힌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체격 차이가 엄청나서 조금 놀라웠다. 수영 괴물이라고 불리기에 황 선수는 고작 열일곱 살이었고 그의 체격은 매우 야리야리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1등인 미국 선수와 고작 1초도 채 되지 않는 차이로 뒤졌던 황 선수는 비록 메달을 걸지 못했지만 이미 나에게는 승자나 다름이 없었다. 이런 젊은 선수들의 남다른 패기와 여유를 보니 승패와 상관없이 마음이 참 흐뭇하고 속이 다 시원해진다. 

 

펜싱, 양궁, 야구, 축구, 여자 핸드볼과 배구 경기도 굉장했다. 보는 내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집중해야만 했고 대한민국 대표 선수들의 활약은 부족함 없이 훌륭했다. 스포츠 찐팬들과 비교하면 부끄러울 정도로 국제 경기에나 관심을 갖는 나이지만 요즘 올림픽 덕분에 하루하루가 기대되고 즐겁다. 매일 아침 날씨를 확인하듯 올림픽 일정을 확인하는 것이 나의 일과가 되어버렸다. 코로나 거리두기 4단계의 답답함, 37도를 육박하는 무더위와 여름방학의 돌밥돌밥 (돌아서면 밥 차리고 돌아서면 밥 차리고)에 치여 쉽지 않은 여름을 보내고 있지만 그래도 올림픽이 주는 즐거움이 결코 작지 아니하다. 승패를 전혀 모른척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올림픽에 참가하는 모든 선수들과 응원하는 우리 모두에게 즐거움이 넘치는 여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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