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질서도 선진국으로 가자
08/09/21  

고국에 도착하여 14박 15일 간의 격리생활을 마치고 5월 20일부터 공적으로 혹은 사적으로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제주도에서 생활한 6월 한 달을 제외하고는 서울에 머물면서 하루, 혹은 이틀 일정으로 충북 제천, 영동, 경기도 곤지암, 양평, 강화, 수원, 충남 대전, 천안, 강원도 동해시 등지를 다녀왔다.

 

이동할 때, 서너 번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전철, 버스, 택시 등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그 편리성을 몸소 체험했다. 내가 고국을 떠났던 1993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시게 발전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또 만나는 사람들의 행동과 말씨, 태도 등에서 선진 시민의식을 엿볼 수 있었다.

 

밖으로 드러난 모습뿐만 아니라 제도적인 면에서도 탄성을 멈출 수 없었다. 의료보험제도, 자동차 면허제도, 각종 국민복지 제도, 서비스의 완벽함에다 종사자들의 친절함까지 더해져 미국에서 만났던 불친절하기 짝이 없었던 일부 병원 의료진들이 떠올랐고, DMV와 사회보장국, 이민국 등에서 만났던 공무원들의 상냥끼 없는 눈길과 빨리 볼일 보고 가라고 재촉하는 듯한 모습과 대비되었다.

 

만나는 사람들이 '고국에서 무엇을 느꼈는가?’ 물을 때마다 '선진국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봐도 이렇게 깨끗하고 대중교통이 발달한 나라는 없다. 국민복지면에서도 손색이 없다'고 말하고 다녔다.

 

나의 이런 생각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지난 7월 2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ited Nations Conference on Trade and Development, UNCTAD)'는 대한민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유엔회원국들에 의해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축하할 만한 일이며, 1964년 UNCTAD 설립이후 지위가 격상된 최초의 국가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선진국'은 영어 'Developed Country' 혹은 'Advanced Country'를 번역한 것으로 경제가 고도로 발달하여 다양한 산업과 복잡한 경제체제를 갖춘 국가, 또는 지속적인 경제개발로 최종 경제발전 단계에 이른 국가를 가리킨다.

그러나 단순히 부국(富國)이나 강국(強國) 등 자본이 많거나 소득이 높은 나라, 혹은 군사력이 강한 나라를 선진국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IMF(국제통화기금)는 십억 명이 넘는 인구를 바탕으로 세계 2위의 GDP(국내총생산)를 자랑하는 중국이나, 오일머니로 1인당 GDP가 세계 최상위권인 카타르나 아랍에미리트 같은 나라를 선진국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선진국 분류 기준을 세계 어떤 기구나 기관도 뚜렷하게 정해 놓은 것 같지는 않으나 대체로 몇 가지를 공통적으로 참조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경제적 여건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1인당 GDP 혹은 GNI(국민총소득)를 지표로 삼고 있으며, 인간존엄성과 삶의 질을 살필 수 있는 인간개발지수(HDI), 삶의 질 지수(PQLI) 등을 고려하며, 아울러 세계 인류 공영에 이바지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개발도상국 원조 여부를 알 수 있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DAC(개발원조위원회) 가입 등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조건에 부합하여 대한민국이 당당히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한국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몇 단계로 나누어 방역수칙을 정해서 시행하고 있다. 현재 수도권에서는 거리두기 4단계가 시행 중이다. 이로 인해 오후 6시까지는 4인까지만, 그 이후에는 2명까지만 사적 모임을 가질 수 있다. 자영업자들에게는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시책을 준수하고 있다. 내가 낮에 찾았던 식당들은 6시 이후에는 세 사람 이상 함께 식사할 수 없다고 알려줬고, 모인 사람들도 6시가 되기 전에 모임을 파했다. 종로의 어느 식당에서는 낮에 5 사람 이상 모일 수 없다는 방역수칙에 따라 5사람이 일행인 경우는 아예 두 사람은 이층으로 세 사람은 아래층으로 자리를 따로 완전히 분리시켜 앉도록 하는 것도 목격했다.

 

이런 대한민국임에도 교통질서만은 아직도 선진국 수준에 못 미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빨간불 파란불이 의미가 없고 인도와 도로의 구별도 없다. 공간만 있으면 인도로 올라와서 자동차를 주차시킬 수 있고, 사람이 없으면 신호등은 큰 의미가 없다. 우선멈춤의 표시는 사람이 있건 없건 무시해도 좋다. 적당히 사람들 사이를 피해서 지나가면 된다. 앞차가 조금만 지체하거나 사람이나 자전거, 자동차가 끼어들 듯하면 경적부터 누르고 본다. 양보와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다. 택시나 버스 등의 영업용 차량만 그런 게 아니다.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그러했다. 오히려 규정 속도와 신호를 지키면서 운전하던 운전자는 내게 답답하게 운전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젠 교통질서도 선진국이란 위상에 걸맞게 개선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 당국의 규제보다 국민 개개인의 의식전환이 선행돼야 한다.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면 교통 선진국은 먼 나라 이야기에 불과하다. 거리와 도로에서도 타인을 위한 양보와 배려가 사회 보편적 가치로 확실하게 자리 잡을 때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될 것이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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