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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다른 비교
08/09/21  

세 살 위인 친오빠가 나보다 먼저 미국 유학길을 떠나는 바람에 오빠 없이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고 나름 예민한 시기였는데 엄마는 큰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쉴 새 없이 나와 오빠를 비교하며 해소하는 경향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싶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기분이 나빴고 알 수 없는 열등감이 나 자신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오빠는 분명 특별한 아이였다.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한 가지만 잘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 잘하는 게 너무 많네요."라며 아쉬워하실 정도로 특출난 분야가 많았다. 방학 때 한두 달 강습을 보내 놓으면 수영이고 미술이고 스케이트고 몇 년 배운 애들보다 월등히 잘해서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타고난 운동신경에 질세라 음악에도 남다른 재주가 있어서 악기도 잘 다루고 노래도 잘 불렀다. 남의 잔치, 손님 방문, 아버지 행사에서도 노래를 시키면 오빠는 아무렇지 않게 노래를 잘도 불렀다. 어쩌다가 덩달아 나까지 노래를 시키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진땀을 빼며 온몸을 배배 꼬며 괴로워했던 기억이 있다. 오빠에 비하면 나는 특출 난 게 없는 평범한 아이이긴 했다. 

 

하지만 또 오빠는 유난스럽기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인물로 다섯 살 무렵 엄마 손을 뿌리치고 혼자 찻길로 뛰어들어 차에 치인 적이 있었고, 국민학교 2학년 때 (80년대로 반공교육이 투철할 당시) 학교에서 "김일성 수령동지 만세"를 외치며 반 아이들을 선동한다며 부모님이 학교로 호출되었고, 6학년 때 가출을 경험했었고, 놀다가 친구가 다치거나 본인이 다치거나 하는 사고도 숱하게 일어나는 등 꽤나 사건 사고가 많아 자주 부모님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곤 했었다. 

 

그래서 오빠가 없으면 집이 조용했고 오빠가 집에 돌아올 무렵이면 나는 슬슬 불안해졌다. 압력밥솥이 째깍째깍 소리를 내는 해질 무렵이 되면 나는 이상하게 배가 살살 아파오곤 했었다. 그 당시 그 기분이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는데 성인이 된 이후에도 비슷한 느낌이 남아있었고 그것이 나의 불안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오빠가 집에 돌아오면 매일같이 엄마의 심기가 좋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눈치를 살펴야 했고 그 불안함이 내 안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조용하고 무난한 자식이었는가...... 기껏 해봤자 화가 났을 때 입술이 튀어나오는 것 말고는 사고를 쳐본 기억도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 특출나고 유난스럽던 오빠가 집을 비우자 엄마는 끊임없이 나를 들들 볶기 시작했다. 까딱하면 엄마 입에서 "니 오빠는 어쩌고 저쩌고"가 튀어나왔는데 나중에는 하다 하다 "오빠는 잘 먹는걸 너는 왜 안 먹냐, 오빠는 하얀데 너는 왜 아니냐"까지 들먹였다. 그럴 때면 나는 속으로 '아니 있을 때나 잘해주지 왜 이제 와서 저러나' 싶을 정도로 오빠 타령이 끔찍이도 듣기 싫었다. 맨날 사고도 많이 치던 오빠였는데...... 왜 이리 좋은 것만 기억하는 걸까......

 

그런데 나도 엄마가 되었다. 게다가 애가 넷, 나름 다자녀를 키워보니 이게 정말 특별한 의도나 악의 없이 순식간에 아이들을 비교하게 된다. 비교가 얼마나 나쁜 줄도 알고 그래서 비교를 하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지만 저절로 작동되는 자동 버튼 같다고나 할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나 자신을 남과 비교하고, 남편을 사랑하면서도 옆집 남편과 비교하고 내 자식이 더 귀하지만 친구 자식과 비교하는 그냥 습관처럼 일어나는 행위와 비슷하다. 특히 엄마가 자식을 비교하는 것은 누가 더 잘나고 누가 더 좋아서라기보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는 아주 못된 습성이 튀어나오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제대로 설명하고 다르게 표현할 줄을 모르기 때문에 "비교"라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야 가장 쉽고, 가장 강하니깐.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비교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다는 것이다. 

 

나도 큰아들이 집을 떠난 후 부쩍 남은 아이들에게 큰형아는 이랬는데 저랬는데 하며 아무 의미 없는 비교 아닌 비교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 아이들은 별 말이 없지만 곧 그 옛날에 나처럼 이런 소리를 지긋지긋해 하겠구나 짐작만 하고 있다. 이 얼마나 부당하고 야속한 일인가?  이 세상을 떠난 누군가와 비교당하는 것만큼 기가 찬 일이 또 있을까? 아무리 노력한들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을 어찌 이길 수 있겠는가? 사실 나도 입 벙끗하는 순간 후회한다. 이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자꾸 그 옛날 나의 엄마처럼 나의 애절한 그리움을 묘한 방법으로 풀어보려는 속셈이 없지 아니하다.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상하게도 그렇게밖에 할 수가 없다. 

 

우리 모두는 비교가 얼마나 쓸데없는 짓인지 알면서도 언제나 끊임없이 서로를 비교하며 살아간다. 나 역시 앞으로도 이 버릇을 고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자신이 없다.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것이면서도 왜 비슷한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지 답답하기까지 하다. 눈에 쌍심지를 켜고 덤벼드는 사춘기 자녀에게 '너도 너 같은 애 낳아서 키어봐라'라고 뻔한 멘트를 뻔한 순간에 외치는 것처럼, 나도 나의 엄마도 또 그렇게 반복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류의 역사가 반복되듯이 말이다. 그래도 나는 기회가 된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 내가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엄마의 무식한 남다른 비교는 그저 애타는 그리움이고 몸에 밴 버릇 같은 것이니 조금은 눈 감아주었으면…... 너는 그 누구와 비교해도 이 세상 유일한 유일무이한 존재이니 힘을 내라고......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고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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