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국적
08/16/21  

 

96일간의 고국방문을 마치고 지난 8월 10일 귀국했다. '어디에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에 역점을 두고 살았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 '어디에 사느냐'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어떻게'가 중요하겠지만 '어디에'도 무시해서는 안 되는 요소라는 얘기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특정 지역에 모여 사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조국의 발전된 모습을 보면서 고국에 돌아가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했다.

 

성인이 되어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하다가 이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국생활을 꿈꾸었으리라. 더군다나 4~5년 전부터 한국정부는 65세 이상자에게 복수국적을 허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복수국적을 지닌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지고 있으며 복수국적 취득 후에 한국에 돌아가 사는 사람들도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이민자들이 고국으로 다시 돌아가 사는 것을 가리켜 '역이민'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한 친구는 아예 캐나다 생활을 정리하고 영구 귀국(역이민)하여 살고 있다. 그가 역이민을 결정한 것은 100% 건강상의 문제였다. 상당히 심각한 질병으로 캐나다에서 장기간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고 있었다. 캐나다의 의료보험은 환자들이 한푼도 내지 않는 그야말로 의료천국이다. 그럼에도 한국행을 택한 것은 그만큼 병도 병이지만 언어 문제의 심각성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고국생활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부동산과 재산을 소유하고 있음도 한몫했으리라 짐작한다.

 

미국에 살다가 역이민한 어떤 친구는 전 재산을 처분하고 전남의 한 도시에 자리를 잡았다. 땅을 사서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살기 시작한지 4년이 다 되어간다. 일이 있을 때마다 미국 사는 자녀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부모가 자녀들을 방문하기도 하면서 살고 있다. 부부가 미국에서 25년 이상 일을 했기 때문에 매달 일정금액의 사회보장연금을 받고 있어 생활에는 큰 불편 없이 살고 있다.

 

이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복수국적을 취득해서 고국과 사는 곳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사는 것도 괜찮지만, 아예 고국으로 돌아가 정착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적 회복을 신청하여 한국 국적을 취득하자마자 동사무소에 가서 신고하면 주민등록증과 '어르신교통카드'를 발급 받게 된다. 이 교통카드를 손에 쥐는 순간, 전철을 이용하는 한 수도권에서의 교통비는 1원도 들지 않는다. 버스나 택시 등에는 적용되지 않지만 수도권 전 지역에 전철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어 거의 교통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뿐만 아니라 의료보험에도 자동 가입이 된다. 주민등록증을 갖고 거주 지역 국민의료보험 사무소에 가서 신청하면 담당자가 자격여부를 검토한 후 승인이 되며, 신청한 그날부터 바로 의료보험 혜택을 받게 된다.

 

한국의 의료보험제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은 주치의를 만난 후에 주치의의 소견에 따라 전문의를 만나게 되고, 그 예약과 방문 등에 소요되는 시간이 꽤 긴 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주치의를 만날 필요도 없이 내가 필요할 때 전문의를 직접 방문할 수 있으며 예약할 필요도 없다. 물론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 등은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하지만 동네 의원들의 경우는 예약할 필요가 없다. 그냥 내가 편한 시간에 방문하면 된다. 물론 보험료는 반드시 납부해야 하며 보험료 액수는 재산 상태에 따라 1만 원이 조금 넘게 내는 사람부터 수십만 원을 납부하는 사람들까지 천차만별이다.

 

65세 이상자로서 아래 사항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복수국적을 취득해서 영구귀국(역이민) 해서 살거나 한국과 자기가 사는 곳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사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건강상의 이유로 병원을 자주 다녀야 하는데 비용이 많이 드는 사람(참고로 일부 병의 경우는 자신의 부담이 많은 경우도 있으나 의료비 자체가 미국보다는 저렴하다) 둘째, 언어 문제, 교우 관계, 경제 문제 등이나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미국살기에 지친 사람, 셋째, 친구나 일가친척들이 한국에 많이 거주하여 많은 사람들과 교류가 가능한 사람.

 

미국과 한국을 왔다 갔다 하는 경우는 굳이 한국 국적을 회복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한국인들과 똑같은 혜택을 받기를 원한다면 복수국적을 갖는 편이 좋겠다. 그리고 복수국적자가 유념해야 할 것은 만일 범죄에 연루되어 미국 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미국정부는 그 사람을 해당 국가로 추방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어디에 살 것인가’라는 물음은 행복한 삶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그 물음이 노년의 행복을 전제로 자신에게 던지는 것이라면 그 답을 내리기란 더욱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자신뿐만 아니라 성년 자녀 등 다른 가족들의 행복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온 가족이 모여 이마를 맞대고 심의(審議)하여 결정해야 할 것이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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