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다
08/16/21  

뛰기 시작했다. 생애 첫 시도이다. 걷기는 여러 번 해봤지만 솔직히 러닝(Running)은 중고등학교 체육 시간에 종종 1마일씩 뛰었던 이후 처음인 것 같다. 나는 어려서부터 달리기에 젬병이라 100미터 달리기 같은 종목을 극도로 싫어했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 뛰면 그만인 오래달리기만큼은 그나마 자신이 좀 있었다. 턱밑까지 숨이 차오르고 헐떡이다가 이대로 쓰러질 것만 같지만 내가 포기하지 않으면 두 발은 멈추지 않았고 결과도 나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다 옛날 이야기, 성인이 되고 나니 지하철 놓칠까 봐 뛰는 거 외에는 뛸 일이 전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가 잠시라도 뛸 일이 생기면 맥박이 무서울 정도로 심하게 요동쳤고 다리도 내 다리가 아닌 것처럼 제멋대로 움직였다.

 

"러닝만큼 좋은 운동이 없다. 중년에 러닝은 관절에 무리가 갈 수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공복 아침 러닝은 내장지방 없애는데 탁월하다" 등등 러닝에 대한 많은 말들이 있었지만 나는 늘 그런 내용에 시큰둥했다. 달리기? 내가? 말도 안돼! 라는 생각이 머리부터 몸까지 깊이 새겨져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평소 운동을 하지 않던 남편이 먼저 "런데이"라는 러닝 앱을 휴대폰에 다운로드하더니 주 3회 달리기 시작했다. 집으로 매일같이 남편의 러닝화, 운동복, 러닝 마스크 등이 배송되기 시작했고 8주간 주 3회 러닝이라는 목표를 향해 고단하고 귀찮은 날도 몸을 움직이는 남편이 조금씩 대단해 보이기도 부럽기도 했다. 그래서 어느 날 용기를 내어 남편을 따라 뛰었던 것을 시작으로 그렇게 나도 러닝 세계에 입문하게 된다.

 

눈이 떠진다. 암막 커튼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온다. 해가 떠오르려고 한다. 평소 같으면 이불 속에서 휴대폰 삼매경에 빠지겠지만 스프링처럼 몸을 일으켜 서둘러 양치를 하고 어젯밤 미리 꺼내 놓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마스크를 챙겨 밖으로 나간다. 새로 산 운동화도 있지만 아직 적응이 되지 않았으니 평소 신던 운동화가 낫겠지 싶어 낡은 운동화를 선택한다. 그리고 종종 걸으러 나갈 때 착용하는 러닝 벨트를 허리에 둘러매고 귀에는 에어팟을 착용하고 남편이 추천해준 러닝 앱을 실행한다.  귓가에 들려오는 하이톤의 음성 "Shall we start moving?" (런데이의 시작 멘트)

 

"런데이"는 대세 러닝 앱인 나이키나 아디다스를 사용해보지 않아 비교가 불가하지만 초보 러너에게 적합하여 나름 만족하며 사용 중이다. 매주 3회씩 총 8주를 뛰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세션을 완료하면 도장을 찍어주고 달린 시간, 페이스, 칼로리 소비, GPS 지도 등의 기록이 남고 친구들과 공유도 가능하다.  초보 러너는 마음만 앞서고 몸은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쉽게 다치고 금방 지쳐 포기해버린다. 그리고 이런 부정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는 뛰고 싶지 않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런데이 프로그램은 무턱대고 내리 뛰게 하지 않고 처음에는 중간중간 호흡을 가다듬으며 걸을 수 있고 이렇게 서서히 달리는 시간을 늘려가다가 결국 오롯이 30분을 내리 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제 막 동이 튼 아침 6시, 달리기 위해 밖으로 나가면 이미 운동 나온 사람들이 가득하다. 각자의 이유로 아침 일찍 집을 나선 사람들이다. 종종 눈에 거슬리는 사람들도 있고 (턱스크 쓴 사람, 벤치에 앉아 삼삼오오 간식 먹는 그룹, 좁은 길 막고 나란히 걷는 그룹) 사람과 부딪히는 게 귀찮기도 하지만 야외 러닝은 실내 트레드밀 위를 뛰는 것보다는 확실히 덜 지루하고 다이내믹하다. 그리고 러닝 중반쯤 되어 호흡이 가빠 오면 모든 잡념이 사라지면서 오직 "나"와 "러닝"에만 집중하게 된다. 달리는 순간, 나의 모든 에너지는 오직 러닝에만 총력을 다하고 그 순간만큼은 나를 붙잡고 짓누르는 온갖 걱정과 상념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힘들다, 못하겠다, 그만하고 싶다"와 같은 심정에서 러닝 세션을 모두 마친 후 마침내 이 모든 것이 "해냈다"로 바뀌는 쾌감과 성취감은 근래에 느껴보지 못한 짜릿함을 안겨준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러닝은 그 어떤 운동보다 정직하고 꾸밈이 없다. 타고난 재능과 다양한 기술이 겸비되어야 빛을 발하는 다른 운동과 달리 러닝은 꾸준히 하면 실력이 향상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단 1분 뛰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렇게 30초씩 늘려 가다 보면 체력이 상승하고 러닝 페이스도 좋아진다. 나는 특히 터질 듯한 심장과 온몸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땀이 마음에 들어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달릴 생각이다.

 

이제 겨우 시작인 초보 러너이지만 운동에 있어서만큼은 나 자신에게 "시작이 반"이니 "잘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점수를 주고 싶다. 그리고 8주간의 프로그램을 다 끝내고 나면 실제로 30분은 가뿐히 뛸 수 있는 러너가 되어있길 바란다. 그 후엔 중급자 프로그램에 도전하고, 우리 동네가 아닌 다른 러닝 코스들도 달려보고, 좋은 의도의 달리기 이벤트에도 참여해봐야지.

Shall we start mo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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