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04/23/18  
큰아들과 함께 수유리에 있는 4.19 국립묘지를 찾았다. 정식명칭은‘국립 4.19 민주묘지’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4.19탑, 4.19 국립묘지 등으로 부르고 있었다. 위령탑 앞에서 고귀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위해 잠시 머리를 숙였다. 고등학교 1학년부터 미국에서 지낸 아들은 그곳이 어떠한 곳인지 정확하게 모르는 눈치였다. 4.19혁명이 왜 일어났으며 이를 무엇 때문에 기념하는가를 설명해주었다.
 
 
아들과 헤어져 함께 한국을 방문한 일행들과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에 도착했다. 해가 막 산자락을 넘어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교직생활을 하면서 수학여행단을 이끌고 여러 차례 찾았고 보이스카우트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행사차 자주 찾던 곳이라 매우 친숙한 도시이다. 마지막으로 찾은 것이 25년 전이니 강산이 세 번쯤 바뀔 만한 시간이 흐른 셈이다.
 
 
그러나 경주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첨성대, 천마총, 불국사, 석굴암 네 곳을 순서대로 들렸다.
첨성대는 원래 약간 비슴듬히 있기는 했다지만 예전보다 더 심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서둘러 본래의 상태로 복원시켜야 하리라.
불국사는 완연한 가을 한가운데 있었다. 단풍으로 단장한 가을의 불국사는 벚꽃이 만발하여 봄의 절정에 있던 4월의 불국사와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수학여행은 거의 대부분 봄에 있었고, 보이스카우트 행사는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에 있었으니 불국사의 가을은 처음 경험한 셈이다.
 
 
서둘러 유적지들을 돌아보고 경주 시내에 있는 고색창연이라는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오랜 시간 기다린 후에 밥상 앞에 앉을 수 있었다. 급히 서둘러 움직이는 종업원들 덕분에 빨리 식사를 마칠 수 있었지만 무언가 아쉬운 감을 지울 수 없었다. 정성스럽게 밥을 먹이려는 마음은 없고 그저 빨리 먹고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만 가득해 보였다. 수학여행 왔을 때 우리 학생들도 식사시간마다 이런 기분을 느꼈으리라.
 
 
부산으로 이동하여 태종대에서 오륙도를 돌아오는 유람선을 탔다. 100여 명이 타고 50분간 유람했으나 안전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선착장에 배를 접안시키면서 배가 선착될 때 충격으로 다칠 수 있으니까 조심하라는 말과 타고 내릴 때 한 쪽 통로만 이용하면 배가 기울어져 침몰될 수 있으니까 양쪽 통로를 이용하라는 것이 전부였다.
항해 중 위험상황에 직면했을 때 구명조끼는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착용하는가에 대한 안내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오륙도 유람선에서 내려 해운대를 찾았다. 대한민국의 부자들이 많이 산다는 해운대는 아파트촌이었다. 아파트들은 누가 더 하늘 가까이 갈 수 있는지 내기라도 하는 듯 서로 키 높이를 자랑하고 있었다. 하긴 대한민국 어디를 가나 스카이라인은 아파트의 머리 끝에서 만들어진다. 땅이 좁은 탓일까?
 
 
부산을 떠나기 전에 유엔공원묘지를 찾았다. 이곳에는 극동에 있는 조그만 나라의 내전에서 산화한 16개국의 참전용사 4만여 명 가운데 2,300여 명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다. 남의 나라에서 이념 전쟁의 희생양이 된 유엔용사들의 넋을 기리며 참배했다.
 
 
모든 역사는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만들어진다. 어느 것 하나 원인이 없는 것은 없다. 원인도, 결과도 시간이 흐른 후에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역사는 현재 우리의 모습을 결정한다.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신라도 그 이전의 역사들이 모여 현재가 됐으며, 또 그런 역사들이 모여 지금의 한국을 만들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한국의 현재 모습은 수많은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4.19혁명이 그렇고, 자신의 조국이 아닌 다른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16개 나라 젊은이들의 희생 또한 그렇다.
그 결과 한국은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으며 이제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한류를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완성하지 못한 역사가 있다. 바로 통일이다.
 
 
통일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어느 때는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몇 밤만 자고나면 다시 저만큼 멀어져 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바로 우리 민족 최대의 소원이기 때문이다. 이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역사 속에 자신의 몸을 바친 희생자들처럼 우리도 대의를 위한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 그리고 그 희생은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둘이 아닌 하나이어야 한다. 남과 북이 손을 모아 통일의 문을 여는 그날을 아들과 함께 맞이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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