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친구
08/30/21  

어릴 적 친구와 만나기로 했다. 한국에 갈 때마다 만나는 나보다 세 살이 위인 동네 친구다. 종로의 한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친구는 약속시간이 30분 이상 지나서 나타났다. 친구는 늦은 것이 자기 잘못이 아닌 듯 얘기했다. 식당이 대로변에 있지 않고 비좁은 골목에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식당을 찾느라고 40여분을 헤매게 한 것은 완전히 식당의 잘못이었다.

 

불고기와 냉면을 시켰다. 친구는 자신의 불행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2년 전 만났을 때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자신이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얘기로 시작해서 올해 97세가 되신 어머니와 형제들 이야기로 바꾼 후 한동안 가족들 이야기를 한없이 이어갔다. 이야기 속의 중심은 언제나 병든 자신이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고 있으며, 배려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형제들은 언제나 자기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얘기가 끝날 듯하면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도 그는 그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불행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과거와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등장인물도 똑 같고 심지어 표정, 손짓, 몸짓도 똑같았다.

 

그런데 친구들 얘기를 하는 대목에서는 눈을 반짝이며 신이 나서 그들이 자기에게 베풀고 있는 배려를 하나하나 옮기려고 애썼다. 캐나다에 살면서 자기 가족들 선물까지 챙겨서 보내주는 친구, 자기가 아플 때 직접 음식을 해다 주며 보살펴 줬던 고교 동창생, 2년 전에도 들었던 얘기다.

 

얘기는 끝날 줄 몰랐다. 도저히 더 참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 식당을 나왔다. 커피를 마시면서도 그는 여전히 자기는 불행하다고 했다. 그가 좀 불편해 할 것을 알면서 말을 끊었다. 그리고 말했다. 당신의 불행은 남과 비교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당신처럼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냐? 어머니가 장수하셔서 좋고, 4명의 형제들과 아옹다옹하면서 살고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조실부모하고, 형제자매 하나 없이 평생 사는 사람들도 꽤 많다. 세상에 100% 만족한 삶은 없다. 석가, 예수, 공자, 소크라테스도 참 힘들게 살았다. 남들이 보면 꽤 불행해 보일지 몰라도 나름대로 가치 있는 삶을 살았기에 죽어서도 따르는 무리들이 세상을 덮고 있지 않은가? 주변을 돌아보면 어렵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냐? 당신은 대궐같이 넓고 좋은 집에서 부인과 아들, 며느리, 그리고 손자손녀와 잘 살고 있지 않은가?

 

만나면 가능한 한 빨리 헤어지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 친구가 바로 그 사람이었다. 커피를 마시는 둥 마는 둥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와 헤어졌다. 지하철을 타러 터덜터덜 걸어가면서 그가 한 말들 속에 내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이 있는지 곱씹어봤다. 그리고 마침내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처럼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남의 불행을 듣는데 2시간이나 허비한다는 것은 정말 큰 불행이었다. 기다리는 시간까지 합하면 2시간 30분.

 

한국에서 돌아와 일주일쯤 지나서 자주 만나며 지내는 초등학교 동창생에게 전화했다. 받지 않았다. 메시지를 남겼다. 7~8년 전에 심각한 병에 걸려 투병생활을 하다가 병상에서 일어난 지 3~4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은 친구이기에 걱정부터 앞섰다. 제발 별일이 없기를 바라며 전화를 기다렸다. 3시간쯤 지나서 전화가 왔다. 친구는 척추수술을 하고 병원에 누워있다고 했다. 문병을 가겠다니까 오지 말란다. 내일이나 모레 퇴원한다면서. 그러면서 하는 말이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이 아프다고 나 같은 보살핌을 받았겠는가? 초현대식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고, 눈을 뜨니 간호사, 의사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점검하고 도와주고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법, 서서 걷는 방법까지 연습을 시키고 있다”면서 정말 감사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항상 도움을 주기 위해 나를 바라다보고 있는 간호사, 의사, 그리고 아내가 옆에서 지키고 있으니 어찌 행복하지 않겠는가? 정말 산다는 게 감사할 일이다. 수술을 준비하면서 수술을 하고, 마친 지금까지 전 과정을 거치면서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는 마음을 굳게 갖게 되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친구와 통화하는 동안 나도 행복한 마음이 되었다. 수화기를 놓고 싶지 않았다. 밤새도록 얘기하고 싶었다. 친구는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난 뒤에 아주 심한 통증과 싸우고 있었는데 너랑 얘기하는 동안 통증을 잠시 잊었다.”며 “행복한 마음이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구는 병마와 싸우며 여러 해를 보냈고 이제 병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척추수술을 받아야 했다. 왜 자신에게 이런 시련을 주냐며 신을 원망하고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오히려 친구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위로해주었다.

 

늘 자신이 불행하다고 외치는 친구와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기처럼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냐며 행복을 노래하는 친구, 자신의 상황을 전하는 두 친구의 각각 다른 방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행복도 불행도 모두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갖느냐에 달려 있음을 또 다시 깨닫게 된다.

 

극명하게 대조되는 두 사람 모두 평생 만나야 할 오래된 친구다. 두 친구를 위해 기도한다. 모두 다 건강을 회복해서 건강한 모습으로 오래오래 만나기를.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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