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법 개정안
09/07/21  

과거에는 입법·사법·행정의 삼권이 분립되어 서로 견제하는 나라가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국가이며 바로 민주주의 국가라고 배웠다. 그러나 현대는 언론이 추가되어 사권분립 시대라고 한다. 언론기관들은 정부기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크며, 언론의 힘이 그만큼 강화되었다는 뜻이리라.

 

정권을 잡은 이들에 의해 행정부가 장악되더라도, 국민이 선출하는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입법기관, 국회는 행정부의 기능을 어느 정도 제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여당이 국회 내에서 다수를 차지하게 되면 국회는 행정부의 시녀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사법부의 수뇌부들을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들로 채워버린다면 삼권분립이 아니라 삼권통합을 하게 되어 거침없이 나라 전체를 한 집단이나 무리들이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만일 언론까지 그들 손에 들어가게 되면 4권 통합이 이루어져 겉으로는 공정과 정의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정권을 장악한 이들이 마음대로 주무르는 민주주의를 가장한 괴물 국가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8월 19일과 25일, 각각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과반이 넘는 의석수를 가지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법안 통과를 낙관했지만 국내외 많은 기관이나 단체들로부터 여당 단독으로 통과시키려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잘못된 법안이라는 지적에 부닥쳐야만 했다.

 

한국언론인회, 한국신문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회의, 한국기자협회, 한국여기자협회, 한국인터넷신문협회, 관훈클럽 등 언론 7개 단체는 언론중재법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나라 밖에서는 국제언론인협회(IPI), 세계신문협회까지 나서서 법안 통과에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UN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해당 법안이 대한민국의 언론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내용의 서한을 한국 정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이처럼 빗발치는 비판에 직면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결국 8월 31일, 국민의힘당과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본회의 상정을 9월 27일로 연기하기로 합의하면서 이 법안을 논의할 8인 협의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사실 ‘불순한 목적을 갖고 의도적으로 잘못된 기사를 써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언론인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이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몰지각한 기자들을 가리켜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겠는가. 본래 언론중재법은 이런 몰지각한 언론인과 언론사들에게 제재를 가하기’ 위한 아주 좋은 의도에서 시작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왜 언론 7개 단체가 언론중재법 자체의 폐기를 주장하고,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조차 언론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하는 것일까?

 

기존의 언론중재법을 토대로 한 개정안의 핵심은 첫째, 보복, 반복적 허위 조작 보도를 언론사의 고의 중과실로 추정한다. 둘째, 허위 조작 보도에 대해 언론사에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 셋째, 인터넷에서 기사를 사라지게 하는 열람차단청구권을 실시한다. 이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법안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개정안의 내용이 너무 모호하고 규제 대상과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 즉 기사가 허위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 한편에서 허위로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 볼 때는 허위조작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즉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또 단순한 실수로 잘못된 기사를 쓸 수도 있는데 이것이 고의적인 것인지 아닌지를 누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그리고 언론중재법이 아니더라도 현행법상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서 언제든지 정정보도 요청이 가능하고, 손해배상, 명예훼손 등으로 소송을 걸 수도 있다. 현행법으로도 얼마든지 피해규제 방법이 있는데 여기에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추가하면 처벌을 이중으로 받을 수도 있다. 가짜뉴스를 막기보다 정당한 보도를 위축시키는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법안의 내용 가운데 고의, 중과실 추정 조항은 매우 모호하며 불균형적이기 때문에 광범위하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어 보인다. 즉 허위 사실을 금지하기 위하여 표현의 자유 자체를 제한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조처인 것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국회와 정부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언론 자유 제한에 대한 우려와 정보의 자유에 대한 견해를 신중히 검토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8인 협의회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합리적이고 만인이 납득할 수 있는 개정안을 만들어 본회의에 상정해야 한다. 설령 그 법이 아무리 옳고 타당한 법이라 할지라도, 또 제정 과정이 합법적이라 할지라도 충분한 논의를 거치려 하지 않고 다수의 힘으로 밀어 붙이려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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