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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정원 이야기
09/20/21  

지난해 6월 타운뉴스는 26년의 가든그로브 시대를 마감하고 산타페스프링스로 이사했다. 새로 이사한 타운뉴스 건물 앞에는 작은 화단이 있다. 사람들은 그 화단을 맥도날드와 세븐일레븐을 잇는 통로로 이용하고 있었다. 앞에 멀쩡한 인도를 두고 잔디를 지나 화단을 넘어가면 한 5~6초 정도 빨리 갈 수 있기에 이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남의 화단을 밟고 가면서도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지나 다녔다. 잔디가 깔려 있는 부분 말고는 흙바닥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필자가 미국 와서 처음 한 일이 가드닝 비즈니스였다. 잔디를 깎거나 나무를 돌보는 일은 종업원들이 했지만 명색이 가드닝 비즈니스를 업으로 했던 사람이 까짓 손바닥 보다 조금 더 큰 화단을 돌보지 못한다고 해서야 말이 되는가? 바닥이 들어난 부분에 비료가 섞인 흙을 사다 뿌리고 꽃을 심었다. 예쁜 꽃들을 밟고 지나가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예쁘고 작은 꽃들을 무시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다녔다. 어떤 사람들은 '왜 내가 다니는 길에 이 따위 꽃을 심어 통행을 방해하느냐'는 듯이 노골적으로 성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꽃을 그대로 밟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맥도날드로 넘어가는 지점에 집에서 키우던 알로에를 7그루 옮겨 심었다. 그리고 유채를 심었다. 알로에가 버티고 있고, 키가 어느 정도 큰 유채가 한들거리다 보니 사람들의 통행이 뜸해졌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아침 그 작은 정원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물을 주고 한 그루 한 그루 들여다보면서 정성스럽게 돌본다. 알로에는 성장이 빠르지는 않지만 그 가지들 속안에서 작은 가지가 나오고 그것이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생명의 신비가 느껴진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식물들을 돌보며 아침을 시작하니 하루 온종일 즐겁다.

 

타운뉴스 화단에는 잔디와 꽃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개미들이 하루 종일 움직이고 있고, 이름 모를 작은 벌레들과 지렁이들이 한데 어울려 산다. 달팽이들도 살고 있다. 그뿐 아니라 참새들도 매일 아침 잔디밭과 화단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으며 쉬지 않고 쪼아대며 짹짹거린다. 이 작은 화단에 펼쳐지는 하루하루가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우리가 사는 세상과 한 치도 다를 바 없다.

 

가장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것은 민달팽이(slug)이다. 민달팽이 네 마리가 스프링클러 조절기가 들어있는 작은 통 안에 살고 있다. 민달팽이는 집이 없는 달팽이이다. 껍데기는 퇴화되어 없어졌고, 등에 연한 갈색의 외투막이 그 흔적으로 남아 있다. 뿔처럼 생긴 두 쌍의 더듬이가 있는데 짧은 한 쌍은 후각기관이고, 긴 한 쌍은 명암을 판별하는 눈이다. 이 더듬이는 늘었다가 줄었다 할 수 있다. 위험을 느꼈을 때는 몸 전체를 둥그렇게 말기도 한다. 어째든 이 달팽이는 작물에 피해를 주기 때문에 퇴치 대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매일 아침 스프링클러를 틀 때마다 만나는 녀석들을 어쩌지 못하고 일 년째 지켜보고 있다.

 

8월의 어느 날 알로에 7그루 중 한 그루를 누군가가 뿌리채 뽑아 가버렸다. 알로에가 뽑혀 나간 빈자리를 보면서 마치 내 마음이 뻥 뚫린 듯 허탈했다. 하루 종일 슬프고 우울했으나 계속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은 내게도 좋지 않다는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누군가가 옮겨 심어서 잘 가꾸고 돌볼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날 뽑혀져 나간 빈자리에 먼저 것보다 더 크고 가지가 무성한 알로에를 한 그루 새로 갖다 심었다. 그런데 며칠 뒤 화단에 나갔더니 가장 크게 잘 자라고 있던 알로에의 가지들이 싹둑싹둑 잘려 사라진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가지가 굵고 크게 잘 뻗어나가 예쁜 모습을 하고 있던 녀석이 아주 흉측한 몰골이 되어 있었다. 내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잘려 나간 듯 가슴이 아팠다.

 

9월에 들어서서 화단을 새로 만들었다. 맥도날드와 경계 부분에 보기 흉하지 않게 약간 위로 솟은 플라스틱 담을 설치했다. 또 화단 귀퉁이에 심었던 꽃들이 시들어 없어진 뒤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을 다 뽑아 버리고 흙을 한 포 사다 뿌렸다. 거기에 지난여름 제주 5일장에서 사온 보리씨앗을 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싹이 나오고 2주가 지난 지금은 바람에 보리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마침 그 동안 잡초 속에 가려 햇빛을 보지 못해 싹을 키우지 못하고 땅속에 묻혀 있었던 유채 씨앗들이 발아하고 그 싹이 흙을 뚫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보리와 유채가 화단 한 귀퉁이를 차지해 바람 불 때마다 물결치듯 흔들린다.

 

추석이 가까워지면서 활짝 핀 코스모스가 바람 따라 흔들거리는 고국의 들판을 그린다. 쑥쑥 커 올라오는 파란 보리들이 바람이 부는 대로 물결처럼 출렁인다. 고국에서 봄을 상징하는 보리와 유채가 캘리포니아의 가을을 어떻게 장식할 지 기대가 크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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