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1.5세 아줌마
홈으로 나는야 1.5세 아줌마
그리운 것은 그리운대로
09/20/21  

1959년생인 이문세씨는 환갑이 넘었다. 얼마 전 그의 콘서트에 다녀왔는데 여전히 노래 몇 곡씩 연이어 열창하고 뮤지컬 배우처럼 춤과 노래를 동시에 소화해도 끄떡없는 그의 모습에 마음 깊이 안도의 박수를 보낼 수 있었다. 언젠가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 마돈나가 나왔는데 다소 둔한 그녀의 움직임을 보며 나이는 정말 어쩔 수가 없구나 싶어서 마음 한편이 찡했던 기억이 난다. 어릴 적 기억 속에 그녀처럼 평생 나에게는 젊은 언니, 섹시한 스타로 남아주길 바랐던 모양이다. 어느새 나의 스타들이 나이를 먹는다. 내 공책에, 내 책받침에서 미소를 날리던 그들은 이제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되었고, 대학생 자녀를 둔 부모님이 되었고, 이혼 후 돌싱이 되었고, 인기 역주행을 꿈꾸는 옛날 스타가 되어 있었다.   

 

내가 가수 이문세의 노래를 듣기 시작한 것은 그가 3집 앨범을 낸 이후쯤 될 것이다. 처음 집에 LP판을 사 오신 건 아버지셨던 것 같은데 어떻게 된 일인지 나보다 세 살 위인 오빠가 더 좋아해서 즐겨 들었다. 그래 봤자 그때 오빠도 국민학교 5학년쯤 되었을 때인데 오빠는 이문세 특유의 따뜻하면서도 쓸쓸한 감정을 제법 잘 흉내 내곤 했었다. 나는 오빠를 따라 이문세가 고은희와 혼성 듀엣으로 부른 "이별 이야기"를 맹연습하기도 했었다. 둘이 나란히 앉아 고개를 숙이고 본인 파트에서 고개를 드는 퍼포먼스를 연습하며 둘이 키득키득 웃었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

 

인생을 모르던 철부지 시절, 이문세의 이별 노래들은 그저 감미로웠고 듣기 편안했으며 따라 부르기 수월했다. 하지만 산전수전이라고 하기엔 부끄럽지만 나름 인생의 쓴맛도 맛보고 나니 이제 그의 노래는 나의 가슴을 뒤흔드는 영혼의 노래가 되고 말았다. 가수의 콘서트에서 감동받아 코끝이 찡해지거나 눈물이 맺힌 적은 있었지만 이번 이문세 콘서트처럼 엉엉 흐느끼며 오열한 것은 난생처음 있는 일이었다. 눈물이 터져 나온 시점은 콘서트 세 번째 곡, 바로 "옛사랑"이었다. 

 

"찬바람 불어와 옷깃을 여미우다

후회가 또 화가 난 눈물이 흐르네

누가 물어도 아플 것 같지 않던

지나온 내 모습 모두 거짓인가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 내버려 두듯이"

아... 이문세의 노래가 이렇게까지 슬펐던가? 가사는 이렇게 가슴을 후벼 팠던가? 환갑이 넘은 나의 스타가 노래하는 옛사랑이 그 옛날 여중생때 듣던 "옛사랑"보다 더 애절한 이유는 무엇일까? 콘서트 내내 마스크 안으로 흐르기 바빴던 나의 눈물의 의미는 돌아갈 수 없는 지나온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었을까...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낸 슬픔이었을까... 

 

기억의 조각들로 이루어진 내 삶이 그의 노래로 위로 받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나를 위한 노랫말처럼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마음에 두고, 생각이 나면 생각나는 대로 내버려 두라"고 세상 최고의 위로와 조언을 건네고 있지 않은가... 깊이 없이 그저 자유자재로 기교만 부리는 나보다 한참 어린 젊은 가수가 아니라 흰머리가 자연스러운 나이 지긋한 삼촌뻘쯤 되는 가수가 불러주는 노래라 더 마음을 열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마음이 아프다고, 슬픔이 괴롭다고 억지로 밀어낼 수만은 없지. 그게 어디 내가 발버둥 친다고 떨쳐버릴 수 있는 것이던가? 가만히 내버려 두면 일부는 내 안에 스며들고 일부는 날아가버리고 또 일부는 나와 함께 늙어가겠지. 어른이 되면 알아서 현자가 되고 삶의 지혜와 요령이 생길 줄 알았지만 살면 살수록 어렵고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지금 내가 흘리는 눈물도, 나 홀로 느끼는 후회와 고독도 언젠가 결국 추억이 되겠지만 지금은 그냥 조바심 내지 말고 이대로 내 마음을 내버려 둬 봐야겠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