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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등산
09/27/21  

지난 한 달간 매주 산에 올랐다. 이번 주는 심지어 세 번째 산행으로 어제는 내변산, 내일은 청계산에 오를 예정이다. 평생 산이라고는 관광지 구경 가듯 주차장에 주차하고 설렁설렁 걸어서 유명 사찰 앞에서 사진 찍는 정도가 다였던 나였다. 행여 계단이 많거나 비탈길이라도 나오면 구시렁구시렁 불평하는 것이 예사였다. 내게 등산이라 하면 대학 산악부 출신의 엄마가 평생 그리워하던 청춘의 한 장면처럼 아득하고 알록달록한 등산복에 시큼한 땀냄새와 막걸리 냄새가 뒤범벅된 시끌벅쩍한 산악회처럼 눈살 찌푸려지는 것이었다. 

 

다시 내려올 산을 고생해서 꾸역꾸역 올라가는 것도 별로고, 사방에서 날아드는 곤충도, 모르는 길을 찾아 헤매는 불안한 기분도 모조리 싫었다. 산은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아름다운 뷰와 멋진 전경은 반드시 산꼭대기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믿었다. 적어도 한 달 전에는 그랬다. 산을 모르던 그때는 말이다. 

 

시작은 아주 평범하다 못해 뻔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어느 날 뜬금없이 친구 따라 산에 올라갔다가 결국 계속 오르게 되었다는 흔한 이야기. 등산은 어릴 적 부모님 따라 가보고 처음이라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었지만 요즘 파워워킹도 만보씩 걷고 주 3회 러닝도 하고 있으니 해발 4-5백 되는 산쯤이야 올라갈 수 있겠지 얕잡아 보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내가 이래 봐도 60대에도 미국의 온갖 산을 누비던 산악부 출신 엄마와 에베레스트도 다녀오신 아빠의 딸이다. 모르긴 몰라도 내 안 어딘가에 산악인의 피가 아주 조금은 흐르고 있지 않겠는가? 

 

친구의 등산화를 빌려 신고 일단 올라갔다. 첫 산은 경기도 의정부에 위치한 사패산으로 나 같은 등린이(등산 +어린이 합성어)도 오르기 수월하다고 수많은 등산 블로거들과 친구 부부가 추천을 했다. 처음에는 꽤 가벼운 발걸음을 내디디며 시작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등산 십여분 만에 나는 비 오듯이 땀을 흘리며 전력질주라도 한 사람처럼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사패산은 등산 입문자에게 적당하다고 추천한 블로거와 친구를 번갈아 원망하며 억지로 발을 움직였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고 했지만 아무리 무거운 다리를 움직여도 정상은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고 미친 듯이 차오르는 숨 때문에 당장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난 틀렸어. 나 두고 다녀들와."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거의 다 왔다."며 어르고 달래는 친구를 생각하니 어떻게든 올라가야만 했다. 

 

그리고 정말 잠시 후 나는 정상에 서있었다. 내가 정상까지 올랐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기특해서 그동안의 고생이 말끔히 사라지는 듯했다. 확 트인 전경은 산 위까지 오른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선물과도 같았다. 아파트, 타워,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뷰와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너무 좋은데 설명하기 힘든 그 무엇이 있었다. 그리고 그늘에 앉아 챙겨 온 소소한 음식을 나눠 먹는데 쌈장이 없으면 먹지도 않던 오이마저도 꿀맛이었다. 고생 끝에 맛보는 낙이란 것이 이런 것이겠지 싶었다. 

 

그러나 곧이어 다시 그 길을 내려오며 나는 생각했다. '아…... 이 산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산이로구나.' 내려오는 것은 쉽다더니 그것도 사람 나름이었나 보다. 나처럼 겁 많은 사람에게는 하산도 쉽지 않았다. 자칫 발을 헛디뎌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 어찌나 주저하며 발을 내디뎠는지 올라갈 때보다 시간도 더 걸리고 경직된 목과 어깨까지 아파왔다. 

 

첫 등산 이후 종아리에 엄청난 근육통이 와서 삼 일간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한의원에 가서 침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나를 데려가 준 친구 부부도 이대로 끝이구나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나는 그날로 바로 등산화와 등산 스틱을 주문해버리고 말았다. 첫 등산 이후 세상의 진리를 깨닫고 자연의 섭리와 가르침을 겸허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면 좋았겠지만 사실 그런 건 잘 모르겠고 그저 단순히 또 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주말마다 남편과 공유할 수 있는 취미가 생겨서 오랜만에 신이 났다. 함께 운동을 하는데 그 장소가 매번 바뀌는 것도 꽤 설레고 등산 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아직은 동네 주민들이 약수터 찾듯이 운동화 신고 날다람쥐처럼 뛰어올라가는 산도 씩씩거리며 겨우 올라가는 등린이에 불과하지만 이렇게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그 심오한 진리와 섭리에도 조금은 가까워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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