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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10/04/21  

모처럼 집에 다니러 온 딸이 넷플릭스의 새로 시작한 TV쇼를 봤냐고 물었다. 나는 영화나 드라마, 아님 어떤 장르라도 가면 쓴 사람들이 나오는 영상에는 별 관심이 없다. 아니 거부감이 있다는 말이 더 적당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가 좋아할 거’라는 딸의 한 마디에 TV 앞에 앉았다. 그저 게임에 졌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무참하고 잔인하게 죽이고 있었다. 나는 빈부 격차나 계층 간의 갈등을 다룬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이런 성향 탓인지 아카데미상을 받은 우리 영화 '기생충'에도 높은 평점을 주지 않았다. 이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딱지 치기'. '구슬치기' '뽑기', '오징어 게임' 등 어릴 적 놀이를 드라마로 옮겨 온 상상력이나 지극히 비현실적인 상황임에도 연속적인 사건을 통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감독의 역량과 열정,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는 높이 사나 드라마 자체를 놓고 잘 되었다 못 되었다는 평가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전 세계가 난리 법석을 떨고 있는 것을 보면 뭔가 있음에 틀림없다.

 

글로벌 OTT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Flix Patrol)'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이 10월 1일 기준 전 세계 83개국에서 'TV 프로그램(쇼)' 부문 1위를 기록했다.

 

오징어 게임에 대한 외신들의 찬사도 엄청나다. CNN은 ‘오징어 게임은 한국 영화인 '기생충'과 비슷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면서 주목할 만한 TV 쇼라고 추켜세웠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와 방송계 소식을 다루는 전문매체 데드라인은 "오징어 게임이 한국 오리지널 드라마의 이정표를 세웠다"며 ‘미국 시청자들 사이에서 비영어 콘텐츠 인기가 커지면서 '오징어 게임'이 혜택을 보고 있다’는 진단을 내 놓았다. 앞서 영국 일간지 가디언 또한 오징어 게임의 매력을 '지옥의 호러쇼'라고 평가하면서 문화적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CEO) 겸 최고 콘텐츠 책임자(CCO)인 테드 사란도스는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가 선보인 모든 작품 중 가장 큰 작품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실적 발표 기간이 아닌 때, CEO가 한 작품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라며’ 오징어 게임이 역대 최고 수준의 흥행이 될 가능성을 보일 정도로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 사회는 선택과 노력을 통해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공정한 기회를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능력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의 능력과 선택, 노력만으로 성공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운이 성공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심지어 부모의 행, 불행이 자식에게로 이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지닌 부모에게서 태어나느냐는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철저히 개인의 운에 달려있지 않은가. 결국 기회의 평등, 능력주의 등은 한낱 현대 사회가 만들어 놓은 허상에 불과하다.

 

오징어 게임 속 인물들은 게임의 공간에서만큼은 공평했다. 아니 공평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 힘이 센 사람과 약한 사람, 내국인과 외국인, 젊은이와 늙은이 등 대립적인 조건을 가진 사람이 죽음을 조건으로 같은 게임을 하는 것은 결코 공평하지도, 공평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이런 조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없다. 보이지 않는 차별과 실질적 불평등은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오징어 게임은 돈에 쪼들리다 망가질 대로 망가져 더 이상 사람들과의 교류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게 된 사람들이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줄거리로 하고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빈부격차와 인간 탐욕의 문제를 한국의 놀이를 통해 데스게임 포맷으로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돈을 위해서, 살기 위해서 형제애, 우정, 신의, 약속 등을 헌신짝 버리듯이 버리지만 변하지 않는 인간적 가치에 대한 물음도 잊지 않는다. 자신과 게임을 하는 상대방의 말을 믿다 결국 죽음을 맞이하거나 더 큰 인간적 가치를 위해 게임에서의 승리를 포기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인물, 그리고 부모와 자식, 형제 관계 등 선천적인 그리움의 대상을 통해 인간 본질의 문제를 끊임없이 묻고 있다.

 

첫 회를 보고 난 뒤의 느낌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주말 내내 TV 앞을 떠나지 않았다.

 

비행기 탑승 직전 돌아서는 남자 주인공 기훈의 모습을 보면서 시즌2에 대한 예고임을 느끼지 않는 시청자는 단 한 사람도 없을 거다. 과연 시즌1에서 무너질 대로 무너져 버린 인간의 본성을 회복시켜 놓을지, 아니면 인간이 어디까지 파괴될 수 있는가를 시험하듯 계속 극한 상황을 펼쳐나갈지 시즌2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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