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잃은 부모
10/04/21  

부모 잃은 사람은 고아, 남편 잃은 사람은 미망인 혹은 과부, 아내 잃은 사람은 홀아비…... 그런데 자식 잃은 사람은 뭐라고 부르던가…... 아예 없는 것인지 내가 모르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흔히 사용하는 단어는 아닌 모양이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을 "참척"이라고 한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너무 낯선 그 단어를 풀어보자면 이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비견할 수 없는 참혹한 슬픔이라는 뜻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박완서는 다섯 자녀 중 유일하게 아들이었던 막내를 먼저 떠나보낸 후 그녀의 책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 아들이 죽었는데도 기차가 달리고 계절이 바뀌고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까지는 참아줬지만 88 올림픽이 여전히 열리리라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내 자식이 죽었는데도 고을마다 성화가 도착했다고 잔치를 벌이고 춤들을 추는 걸 어찌 견디랴. 아아, 만일 내가 독재자라면 88년 내내 아무도 웃지도 못하게 하련만, 미친년 같은 생각을 열정적으로 해본다.”  

 

또 다른 작품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지 않은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면 그게 얼마나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였는지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으시죠." "생때같은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에서 소멸했어요. 그 바람에 전 졸지에 장한 어머니가 됐구요. 그게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될 수가 있답니까. 어찌 그리 독한 세상이 다 있을까요."라고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을 대변한다. 

 

아들을 하늘로 보내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나와 비슷한 부모들이 모이는 치유 모임 같은 것을 찾고 싶었다. 그 당시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답답해 숨을 잘 쉴 수 없었다. 휴지로 눈물을 닦는 것도 힘이 들어서 틈만 나면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를 하며 엉엉 울었다. 퉁퉁 부은 눈두덩이는 좀처럼 그 부기가 가라앉을 줄 몰랐다. 그래서 큰 마음먹고 찾아간 심리 상담사는 상담 후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다며 상담비를 돌려주었다. 그 후 찾아간 정신과에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약을 처방해주었지만 내 슬픔의 고통이 약으로 무뎌지는 것은 왠지 싫었다. 그래서 나는 나와 비슷한 부모들의 사연을 찾기 시작했다. 국내외 책들을 많이도 사서 읽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이런 부모들의 모임이 있는지 검색도 해보고 종교기관에도 문의를 해봤다. 아마도 나와 같은 이들이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 나에게도 희망과 미래가 있을 수 있는지 궁금했고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모임은 없었다. 코로나 시대이기도 했고 자식 잃은 부모들이 그렇게 삼삼오오 그룹을 만들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기대하기 힘든 일이기도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식 먼저 보낸 부모는 조용히 숨죽이고 살아야 하는 죄인이었고 자식이 죽어도 장례는커녕 마치 없었던 일인 것처럼, 애초에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던 것처럼 쉬쉬하는 것이 우리 문화였으니깐. 

 

그때 한 사람을 알게 되었다. 나처럼 애가 넷인 그녀는 지난 2016년 가을, 일곱 살이던 셋째 딸 나연이를 갑작스레 하늘로 떠나보냈다. 감기인 줄 알았던 나연이의 병명은 이름마저 어렵고 낯선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이었다. 내 마음을 헤아린 친구가 직접 나연이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내 나의 사연을 알렸고 그분께서 나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을 보내주면서 우리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실제로 그녀의 이야기는 내게 그 어떤 관련 서적, 심리 상담보다 더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 후로 나는 SNS를 통해 자식 잃은 부모들을 여럿 만나게 되었다. 내가 찾아가기도 했고, 그들이 먼저 나를 찾아오기도 했다. 사는 곳이 다르고 서로 다른 사연들을 갖고 있었지만 그들의 슬픔과 그리움은 내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생판 남인 그들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가족이나 절친들의 포스트보다도 눈여겨보고 공감하고 마음을 나누게 되었다. 특히 먼저 떠나간 자식을 그리워하는 포스트는 단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하늘에 있는 아이들의 평안을 빌었고, 남은 가족들의 행복을 기원했다. 그들이 울 때 함께 울었고 그들이 온 힘을 다해 진심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용기를 냈다. 

 

우리 모두에게 자식의 죽음은 청천벽력 그 자체였다. 잘 살아가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참척의 고통에서 몸부림치며 만신창이가 되기도 한다. 세상에서 가장 참혹하고 고통스럽다는 참척의 슬픔도 사람의 일인지라 세월이 지나면 어떻게든 일상으로 돌아오고 결국은 살아지게 되겠지만 그 과정을 너무 초연하게 "시간이 약"이라는 말로 덮어두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나와 같은 슬픔을 지닌 부모들과 이야기하면서 "우리에게는 남은 생을 더 잘 살아야만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부모가 되겠다는 거창한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먼저 내 곁을 떠난 아이를 사랑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어디선가 여러 차례 그리움의 눈물을 훔쳤을 자식 잃은 부모님들을 기억하며 우리들 마음속에 평화가 깃들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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