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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대란
10/18/21  

2주 전 타운뉴스 이웃에 있는 한 업체를 방문했다. 그 업체는 코스트코를 비롯해 미 전역의 마켓 등에 납품하는 커다란 식품 가공 판매업체이다. 한국의 공장에서 직접 가공 생산하고, 산타페스프링스의 커다란 창고가 딸린 회사에서 미 전역에 공급하고 있다. 그 업체 대표는 ‘매일 16개의 컨테이너가 물건을 쏟아 놓았는데 최근 몇 달째 하루에 불과 3대의 컨테이너가 들어올까 말까하다’면서 걱정에 휩싸여 있었다. 코스트코와 각 업체들이 물건을 달라고 아우성인데 보낼 물건이 없다고 했다. 커다란 대형 창고가 거의 비어 있었고 한쪽 구석에 하역 작업을 위해 직원들 다섯 명이 언제 올지 모르는 컨테이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산한 물건을 부산항에 잔뜩 쌓아 놓고도 선박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었다. 사실 물류대란으로 인한 부산항 장치장 혼잡 문제는 청와대 국민청원에까지 등장할 정도이다. 항만당국도 화물 반입 제한을 완화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단기간에 해결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부산항에 장치장 점유율이 높아진 이유는 중국 수출 기업들이 단기계약 운임으로 30% 이상의 프리미엄을 얹어 선박을 대량으로 확보함으로써 한국 수출 기업들이 배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미국이나 유럽행 컨테이너선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먼저 선적하고 부산항에 들어온다. 하지만 최근에는 글로벌 물류 대란으로 인해 중국에서 이미 만선이 돼 부산항에 들르지 않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물동량 수준을 보여주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달 25일 3,785.40을 기록했는데 이는 2010년 7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부산항의 한 터미널은 최근 장치율(야적장에 컨테이너가 쌓인 비율)이 94%에 달했다. 터미널이 원활하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장치율이 70% 수준이어야 하고, 90%를 넘어서면 정상 운영이 불가능해진다.

 

실제로 요즈음 미국에서는 생필품 대란으로 곤욕을 치렀던 코로나 사태 초기 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 당시에는 소비자들의 사재기가 문제였다면, 이번에는 물류 대란의 여파가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기저귀에서 자동차에 이르기 까지 품귀 현상이 미국 전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대형 마트인 월마트에 화장지 진열대가 아래위로 텅 비어 있고, 주방용 타올도 많이 부족하다. 냉동식품이 군데군데 비어 있고, 중국산이 대부분인 문구류도 마찬가지이다.

 

진열대가 비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우선 델타 변이의 기승으로 중국의 많은 생산 공장들이 문을 닫아 생산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미국 내 항구에 도착한 화물을 내리고 옮기는 항만 노동자와 트럭 운전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한 요인이다. 글로벌 투자기업 ‘RBC캐피털마켓’에 따르면 LA와 롱비치항의 인력은 코로나19 사태 이전 보다 30% 가량 줄었다. ‘RBC캐피털마켓’은 이처럼 인력이 급감한 것은 코로나 사태로 일감이 줄어 벌이가 신통치 않고 또, 실업수당과 코로나 지원금만으로도 가계를 꾸려나갈 수 있어 힘든 항만 노동을 회피하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화물선들이 하역을 기다리며 며칠째 바다 위에 떠 있는 이유치고는 참으로 어이가 없으나 이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오늘도 LA 앞바다에는 화물선 수십 척이 하역을 기다리고 있다. 이로 인해 물량이 부족하니 당연히 가격이 뛴다. 지난달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5.4%로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휘발유는 42%나 치솟았고, 중고차 24%, 소고기 18%, 계란은 12% 올랐다.

 

급기야 백악관이 개입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미국 내 물류의 40%를 담당하는 LA와 롱비치항을 연말까지 24시간 체제로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물류업체들도 근무시간을 연장하기로 했고, 삼성전자도 동참한다고 소개했다. 삼성전자 관계자에 따르면 하역한 화물을 받는 데에 이틀 걸리던 게 최근엔 보름까지 늦춰져서, 앞으로는 컨테이너 운송량을 60% 늘릴 예정이라고 했다.

 

이런 난리 속에 타운뉴스도 '2021-2022 업소록' 때문에 한바탕 법석을 떨었다. 인쇄는 7월에 끝났으나 부산항에서 출발할 때부터 문제였다. 예년보다 운송 가격이 10배 가까이 오른 것은 둘째 치고, 배를 구하지 못해 속을 태웠다. 게다가 간신히 일정을 잡았으나 몇 번이나 해운회사 사정으로 출발 일자를 늦출 수밖에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LA 항에 도착해서는 꽤 오래 하역을 기다려야 했다. 업소록이 도착했던 당일에도 항구에 실으러 갔다가 물건을 찾지 못해 허탕치고 그냥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며 크게 기대하지 말라고 했으나 그날 오후 운 좋게 짐을 찾아 타운뉴스로 떠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하루 16개의 컨테이너가 짐을 쏟아 놓다가 3개의 컨테이너 밖에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대표의 시름에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그래도 서너 달 걱정 속에 보내다가 업소록이 도착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곧 다가올 추수감사절에서 크리스마스로 이어지는 연말 쇼핑 시즌이 생필품 사재기 소동으로 얼룩지지 않기를 바란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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