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견디는 지각
10/18/21  

오늘 초등학교 1학년인 막내가 지각을 했다. 9시까지 등교해야 하는데 9시 정각에 학교 정문을 통과했으니 교실까지 가려면 아무리 빨라도 최소 2분은 늦었을 것이다. 사실 아이는 오전 7시 전에 기상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쌀쌀해진 기온에 간절기 재킷을 찾다가 내가 그만 엉망진창인 옷장을 보게 되었고 아이는 그 옷더미들을 치워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곧이어 오늘 아이에게 제출해야 할 숙제가 있고 심지어 받아쓰기 시험이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냈다. 그동안 나도 까마득히 잊고 있었으면서 아이에게 왜 주말에 미리 준비하지 않았냐고 호통을 쳤다. 아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옷장을 치우다 말고 숙제를 하고 받아쓰기 공부를 했다. 

 

사실 아침밥을 포기하거나 아주 간단히 대체할 수도 있었다. 아니 애초에 숙제나 받아쓰기를 포기하는 수도 있었겠지. 초등학교 1학년이 숙제 한번 안 했다고, 받아쓰기 한번 망쳤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오늘따라 고집을 피웠다. 나쁜 습관이 자리 잡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걸까? 버릇을 고쳐주고 싶었을까? 모조리 잊고 있었던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던 걸까? 아무튼 그래서 오늘 우리 막내는 사 남매 중 처음으로 학교에 지각한 학생이 되었다.

 

우리 아이들은 하나같이 일찍 일어난다. 비결은 간단하다. 일찍 잔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줄곧 모두 9시에 취침해왔다. 일찍 자는데 오래 자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굳이 내가 깨우지 않아도 아침 7시면 모두 깨어있다. 한 번도 아이들의 아침 기상 문제로 스트레스 받은 적이 없을 정도로 아이들은 알아서 아침형 인간이 되어주었다. 물론 아주 가끔은 7시가 넘어도 안 일어나는 일이 있긴 하지만 그럴 때도 내가 방문을 열어두거나 이름을 부르면 지체 없이 바로 일어난다. 

 

이는 필시 나를 닮았을 것이다. 나는 초중고에서 단 한번도 지각을 해본 적이 없다. 부지런을 넘어서 불안증, 조급증이 있어서 혹시라도 늦을까 봐 늘 서둘렀던 탓에 오히려 항상 일찍 등교하는 학생이었다. 평생 늦잠 때문에 지각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가끔 중요한 날 알람을 맞춰놓고 잠이 들긴 하지만 거의 대부분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진다. 조금만 늦을 것 같아도 불안이 온몸을 지배하고 식은땀이 삐질삐질 나기 시작하고 신경이 곤두서 애꿎은 주변 사람에게 화살이 돌아간다. 차라리 확 늦어버리면 긴장감이 사라지고 마음을 내려놓기도 하지만 시간이 아슬아슬할수록 더욱 마음을 졸이게 되다 보니 그게 신체에도 영향을 미쳐 실제로 아랫배가 아파오기도 한다. 

 

그렇게 초, 중, 고 12년 개근했고 평생 지각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였지만 가족이 생기고 아이가 줄줄이 늘어나니 변수들이 없지 않았다. 아무리 일찍부터 미리 준비해도 집을 나서기 직전에 갓난아기가 분수 토를 하면 별수 없었다. 다시 들어가서 아이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혀야만 했다. 그러면 그날은 지각인 것이다. 이런 삶은 내게 스트레스였다. 나는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고, 적어도 10분은 먼저 도착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인데 가족이 생긴 후 시간을 내 뜻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니 참으로 괴로웠다. 특히 남편은 나와 달리 약속 장소에 미리 도착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어서 외출할 때마다 부딪혔다. 나는 서둘렀고 남편은 느긋했고 결국 우리는 서로 스트레스 받아야만 했다. 지금은 조금씩 맞춰가며 살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외출 전 둘 다 신경이 예민해진다.

 

지각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좀 늦어도 절대 서두르는 기색 없이 한숨 돌리며 여유를 부리는 사람은 분명 있다. 나와는 거의 상극의 유형인데 이런 사람을 보고 있으면 참기 힘들 정도로 답답해서 내 주위에는 이런 사람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한 때 한 시간 동안 알람이 울려도 끄지 않고 알람이 울리는 채로 자는 사람이 내 옆방에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어쩌다 한번 있는 일이 아니고 매일같이 있는 일이었다. 매일 아침 알람이 한 시간 이상 울렸다가 꺼졌다가 또다시 울려도 그녀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그 옆방에서 생활하는 내내 정말 끔찍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종종 이런 상황에도 잠에서 깨지 않는 그 사람을 진심으로 부러워하기도 했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는 일이니깐. 

 

그런 의미에서 오늘 막내의 지각에도 약간의 대리 만족과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것 같다. 늦었다며 불안해하는 아이에게 "괜찮아, 늦어도 괜찮아. 학교 한번 늦었다고 큰일 안 나!"라고 말하는 나 자신에게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나는 시간에 있어 약간의 강박을 갖고 있지만 솔직히 평생 시간에 쫓기며 허덕이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는 시간을 잘 다루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하루 24시간이지만 분명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여유롭고, 또 누군가에게는 야박하리만큼 부족한 것이 시간이다. 시간을 귀히 여기지만 시간에 쫓기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충분히 누리고 다루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는 게 많지도 않으면서 종일 종종거리는 하루가 너무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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