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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미안했다
10/25/21  

대학 졸업 후 다른 도시에서 일하고 있는 딸과 만나 식사를 하면서 옛날 얘기를 하게 되었다. 별 생각 없이 나는 언제나 자식들의 의사를 존중하는 아빠였노라고 말했다. 그러자 딸이 고개를 흔들면서 아니라고 했다. 아빠는 동생과 자기에게 늘 지시하고 명령했다는 것이다. 자기들은 남들이 다하는 친구 집에서의 슬립오버조차 하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아이들이 18살 넘을 때까지는 밖에서 자고 오지 못하게 했었다. 단 친구들이 우리집에서 자는 것은 허락했었다. 딸은 또 교회에서 가는 캠핑도 못 가게 하지 않았냐고 불평했다. 교회 오빠 만날까봐 그랬다고 하자 딸은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 하는 듯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그리고 딸은 “아빠가 매달 수입의 10%를 아빠 엄마에게 내라”고 한 것도 납득할 수 없었다고 했다. 왜 자기가 번 돈의 일정액을 부모에게 의무적으로 드려야 하느냐고 물었다. 내가 “그것은 상호 동의에 의한 것”이었다고 말하자 딸은 “아빠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한 약속”이라며 억울하다고 했다.

 

딸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으로 떠나기 전에 가족여행을 떠났다. 첫날 저녁식사를 마치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대학 진학 때문에 집을 떠나더라도 최소한 일 년에 세 번은 집에 와야 한다. 언제가 좋은 지는 너희들이 정해라.” 아이들은 여름 휴가 기간에 한 번, 추수감사절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렇게 일 년에 적어도 세 번은 꼭 집에 오겠다고 결정했다.

 

나는 또 이렇게 말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둘 다 일을 하게 되고 돈을 벌게 된다. 첫 봉급을 받을 때부터 매달 너희들은 수입의 10%를 아빠 엄마에게 주어야 한다. 결혼을 하게 되면 그 비율은 5%로 낮아진다. 오늘은 그 약속을 하는 날이다. 모두 손을 내밀어라.” 테이블에 손을 다 얹고 약속을 확인하는 의미로 약속이라고 크게 외치자고 했다. 모두들 힘차게 '약속'이라고 외쳤다. 그런데 딸은 그 동의가 내 강요로 이루어졌으며, 얼떨결에 한 약속이었다고 주장했다.

 

대학 졸업 후 딸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나는 채근하거나 독촉하지 않았다.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아무 말 하지 않았다. 1년이 지나서 딸은 그동안 대학 다니면서 빌려 쓴 학자금을 갚느라고 돈을 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졸업할 때 약 $15,000의 빚이 있었는데 모두 갚았다면서 다음 달부터 보내겠다며 구좌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다. 그 후 보름에 한 번씩 일정한 금액을 입금하고 있다. 정확하게 10%인지는 모른다. 딸이 제가 번 돈을 매달 일정하게 준다는 것으로 만족한다.

 

딸이 보내는 돈을 함부로 쓸 수가 없었다. 적금을 들었다. 그리고 지난달 만기가 돼 돈을 찾았고 이번에 그 돈을 딸에게 주려고 했다. 그런데 딸로부터 자의에 의한 선택이 아니라 아빠의 강요에 의한 약속이었다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내가 아무리 좋은 의도로 아이에게 봉급의 일정액을 내겠다는 약속을 받고 그 돈을 모아 목돈을 만들어 아이에게 줄 생각이었다 해도 내가 한 행동은 잘못된 것이다. 아이가 선택하도록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봉급의 10%라는 고정비율을 정해주고 무조건 내라고 한 것은 잘못이다. 자발적으로 한 약속이 아니고 강요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난 사실 그 돈을 모아 아이들이 결혼 등의 일로 목돈이 필요할 때 줄 생각이었다. 따라서 강하게 반발하거나 저항하면 그만 둘 생각이었다. 꼭 아이들에게 돈을 받으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어쩌면 장난이 섞인 약속이었다. 설령 아이들이 실행에 옮기지 않더라도 야단을 할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내가 그런 제안을 했을 때 아들은 자기는 20% 드릴 생각이었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딸은 아무 말이 없었다. 아빠의 제안을 따르면서도 딸은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빠의 강요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대로 따랐던 것이다. 하기 싫다고 말했다면 나는 그대로 받아 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딸은 저항하지 않고 나의 제안을 따랐던 것이다. 딸과 이런 시간을 갖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아이들의 자발적인 의도로 이루어진 것으로 착각하고 살았을 것이다. 딸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준비해두었던 적금 찾은 돈을 딸에게 내밀었다. 딸은 왜 돈을 주느냐며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극구 사양하는 딸에게 나의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네가 필요한 일에 사용하라”며 손에 꼭 쥐어 주었다.

 

대화가 이어지다 보니 어느덧 날이 저물어 저녁때가 다 되었다. 딸은 자기가 저녁식사를 대접하겠다며 식당으로 안내했다. 점심을 배불리 먹은 탓에 밥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맛있게 먹었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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