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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10/25/21  

벌써 10월이다. 한자리 수였을 때와 달리 10월이 되면 마음가짐부터 조금 달라진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갑자기 생각이 많아지고 마음이 복잡해진다. 사람의 말과 약속들은 수도 없이 깨지고 잊혀지고 달라지지만 계절은 꼭 어김없이 찾아오니 매해 경험하면서도 그저 놀라울 뿐이다.

 

올해는 여름이 몹시 덥더니 늦더위도 꽤 오래 지속되었다. 분명 예년보다 가을이 느리게 오고 있었다. 10월이 되었는데도 여름의 끝자락을 꽤 오래 쥐고 있는 듯 새벽녘에만 서늘하고 오후에는 제법 더워서 선풍기를 집어넣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추워지더니 급기야 10월에 첫 한파 주의 경보라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최저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며 가을을 건너뛰고 바로 겨울의 초입에 들어선 것이다. 

 

아직 나무들이 가을 색으로 옷을 갈아입지도 않았는데 나뭇잎이 바싹 말라가더니 바람에 휘날리며 맥없이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집 앞을 나서며 별생각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걸쳐 입고 나온 바람막이 재킷으로는 역부족이라 자동으로 올라간 승모에 몇 차례나 옷깃을 다시 여민다. 그리고 밖에 나온 지 5분이 지나면 손끝이 시려온다. 아침마다 스산한 공기에 눈이 떠지고 본능처럼 이불속을 파고든다. 차가운 공기는 내 살갗을 맴돌아 내 안으로 스며들고 달라진 공기를 느끼는 것은 내 피부뿐 아니라 몸의 구석구석 모든 기관들이다. 

 

나는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물으면 주저 없이 가을이라 대답한다. 가을의 서늘한 공기가 너무 좋다. 덥지도 춥지도 않아서 좋다. 특히 한국의 가을은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형형색색 아름답게 물들어가는 계절, 높고 청명한 하늘을 자꾸 올려다보고 싶은 계절, 걷기 좋은 계절, 등산을 모르는 사람도 산에 가고 싶어지는 계절, 안 읽던 책을 꺼내 들고 싶은 계절... 분명 가장 좋은 계절이다. 그런데 가을을 즐기려는 찰나에 한파 주의보라니…... 이럴 수는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올가을은 너무 아쉽다. 아직 다 누리고 만끽하지 못했는데…... 충분히 놀지 못했는데…... 옷장에 간절기 재킷을 몇 번 입어보지도 못했는데 벌써 겨울 패딩과 코트의 위치를 파악해두고 있다. 특히 이제 막 등산의 매력에 푹 빠진 사람으로서 짧아진 가을이 유난히 안타깝기만 하다. 본격적인 가을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겨울 문턱에 들어서니 철석같이 믿고 있던 오랜 친구에게 뒤통수라도 맞은 것처럼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난다. 

 

나에게 10월은 언제나 정신없이 바쁜 달이었다. 가을 타는 사람들은 낙엽이 떨어지고 공기가 차가워지면 괜히 공허해지고 무기력 해진다고들 하던데 나는 가을이 되면 더욱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듯했다. 더 놀고 싶고, 자꾸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예년 사진첩을 들춰봐도 10월에는 항상 다양한 행사, 나들이, 남편 생일, 친구 생일, 회식, 캠핑, 여행, 핼러윈 파티 등으로 스케줄이 꽉 차있었다. 늘 즐겁고 풍성한 달로 기억된다. 올해도 일정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예년보다 기온이 대폭 내려가서 옷차림과 마음은 조금 더 무거워졌다. 그렇다고 주저할 수는 없지! 이 역시 내게는 소중한 가을이니까......

 

10월이면 꼭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언제 들어도 좋은 곡이지만 10월에 들으면 유난히 특별한 곡,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로 나의 가을 사랑을 대신해본다.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중략)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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