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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11/01/21  

가끔 아주 가끔, 라면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 늦은 점심을 먹고 저녁 한 끼를 걸러 보자고 마음먹은 날 밤, 9시쯤 되면 라면의 유혹을 견디기 어렵다. 이런 날은 물을 안치고 끓기를 기다리지도 못한다. 찬물에 그대로 라면과 스프를 넣고 함께 끓인다.

 

처음 라면이 나왔을 때(1960년대 초)는 라면이 고급요리였다. 아들 하나에 딸이 다섯이나 되는 큰댁에 가면 점심으로 라면과 국수를 함께 넣고 끓여 먹었다. 비교적 간편하게 양을 불릴 수 있는 방법이었다. 국물은 걸쭉하고 면은 면대로 불어터져 요즈음 사람들은 먹기 어렵지만 식량이 부족했던 그 시절에는 그저 배곯지 않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그렇게라도 먹어야만 했다. 찬밥이 조금 남았을 때는 밥에 물을 넉넉하게 넣고 라면과 함께 끓여 먹기도 했다. 당시 우리나라가 얼마나 어려운 시절이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밤늦은 시각에 라면을 먹다보니 라면에 얽힌 옛 일화들이 떠오른다. 신병 훈련소에서 어느 일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교회에 갔다가 식사시간이 한참 지나서 내무반에 돌아 왔는데 식판에 내 라면이 땡땡 불은 채로 있었다. 날달걀 하나와 함께. 정말 그렇게 불은 라면은 내 인생에서 처음 봤다. 도저히 입으로 넣기 어려울 정도로 보였다. 그러나 난 너무 맛있게 먹었다. 달걀을 깨서 불은 라면에 비벼 가면서 정신없이 먹었다. 무엇을 얻어먹을까 하고 교회에 갔다가 허탕치고 돌아와 심하게 허기진 상태라 더 맛있었을 거다. 내 몫을 남겨준 내무반 동료 훈련병들에게 감사하며 신나게 맛있게 먹었다. 라면은 불어도 맛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라면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일화가 하나 더 있다. 교사 시절 숙직할 때였다. 당시 고등학교와 중학교 교사 각 1명이 함께 숙직을 했는데 중학교 선생님이 라면을 끓이는데 학급에서 사용하는 대형 주전자에 5개를 넣고 끓이는 것이었다. 다섯 개를 주전자에 넣기에 나와 함께 먹자고 하거나 누군가가 와서 함께 먹나 보다 했다. 그런데 내게 먹어 보란 말도 하지 않고 혼자 다 먹는 것이었다. 라면 다섯 개를. 그 이후로 그 선생님을 똑 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지냈다. 난 예나 지금이나 라면을 1개 이상 먹어 본 적이 없다. 밥을 말아 먹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라면을 좋아 하면서도 멀리 하려는 경향이 있다. 라면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과연 라면은 인체에 해로운 것인가?

 

어떤 사람은 라면이 방부제 덩어리라고 하는데, 라면에는 방부제가 들어가지 않는다. 라면은 튀긴 후 건조한 면과 분말 형태의 수프를 조합했기에 수분이 거의 없어 방부제를 넣지 않아도 충분히 장기 보존이 가능하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대략 120g 정도인 라면 1개의 칼로리가 국물까지 전부 먹었을 경우 대략 500kcal를 좀 넘는다. 삼겹살 200g(1인분)의 칼로리가 600kcal를 좀 넘는다는 걸 생각해 보면 그리 높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세 끼를 먹으면서 간식으로 라면을 먹는 것이 아니라면, 하루 1끼, 라면을 주식으로 한다면 절대 살이 찔 리가 없다. 라면을 많이 먹어 살쪘다는 사람들은 주식이 아니라 간식으로 먹는 식습관 때문에 살이 찌는 것이다.

 

라면을 끓이면 라면 속의 기름이 국물로 우러나 국물의 칼로리 함유량이 많기 때문에 국물을 안 마시면 살이 찌지 않는다는 속설도 있다. 하지만 라면은 그 안에 있는 기름이 모두 우러날 정도로 오랫동안 끓이지 않는다. 조리 시간이 3분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제 면에서 국물로 우러나는 기름은 1/3 미만에 불과하다. 다만 라면 국물에는 나트륨이 많고, 포화지방이 많으니 이를 알고 섭취해야 한다.

 

사실 라면에는 나트륨(염분, NaCl)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라면의 나트륨 문제는 국물을 다 먹는 습관에서 생긴다. 어떤 사람들은 스프를 적게 넣기도 하는데 적게 넣으면 맛이 없어지니 국물을 덜 먹거나 안 먹는 것이 좋다. 국물만 안 마셔도 섭취 나트륨을 30% 이상 줄일 수 있다.

나트륨 함량은 비단 라면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인들이 주로 먹는 김치, 찜, 국이나 탕 등의 나트륨 함량은 라면을 웃돌기 때문에 오히려 나트륨만 비교하면 라면은 중위권 정도에 속한다.

 

이렇게 본다면 라면을 먹으면 건강을 해친다는 생각은 기우에 불과해 보인다. 다만 영양소 면에서 식사대용으로 자주 먹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라면 1봉의 평균 영양소는 한 끼 권장 영양소 기준치 대비 단백질 56.3%, 탄수화물 71.6%, 지방 97.6% 수준이고 비타민과 식이섬유처럼 꼭 필요한 영양 성분은 빠져 있어 지속적으로 섭취하면 건강을 해칠 수 있다. 그러므로 가끔 기호식으로 즐긴다면 입맛 전환과 함께 추억 소환의 즐거움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뉴스에 의하면 지난 8월에 오른 라면 값이 또 들썩이고 있다. 모든 물가들이 오르는데 라면 값만 올리지 말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배고픈 사람들이 큰 부담 없이 쉽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 언제 먹어도 간편하고 맛있는 정다운 간식, 라면만이라도 가격이 많이 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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